세 번째 ‘김학의 성폭행 의혹 사건’ 수사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스스로 불을 댕겼다. 3월22일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밤늦은 시간, 그는 선글라스와 모자를 쓴 차림으로 인천국제공항에 나타났다. 타이 방콕행 비행기(3월23일 0시20분 출발)를 현장 발권한 다음, 3월22일 밤 11시께 출국심사대를 무사히 통과했다. 김 전 차관의 출국 시도는 비행기 탑승 직전에 좌절됐다.

출입국관리본부-검찰과거사위원회(검찰 과거사위)-법무부로 이어진 발 빠른 긴급 출국금지 조처 덕이었다. 김 전 차관은 “왕복 비행기 표를 끊었다” “64세 나이에 어디로 도피한다는 말이냐” 따위 주장을 폈다. 하지만 도주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강제수사에 힘이 실렸다. 3월25일 검찰 과거사위는 김학의 전 차관의 출국 소동을 비판하며 재수사를 권고했다.

ⓒ연합뉴스2008년 3월 김학의 당시 춘천지검장이 취임식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김학의 성폭행 의혹 사건은 2013년 3월 처음 불거졌다. 그가 검찰 고위 간부 시절 건설업자 윤중천씨와 함께 강원도 원주 별장에서 여성들을 성폭행했다는 의혹이었다. 당시 해당 동영상과 피해자들의 진술, 성 접대를 받은 일부 남성들의 진술도 있었지만 김 전 차관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는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취임 엿새 만에 차관 자리에서만 물러났을 뿐이었다. 2013년과 2014년 각각 검찰의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 과정이 미심쩍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2013년 7월 경찰은 김 전 차관에게 특수강간 혐의를 적용해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검찰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피해 여성들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해 불가한 검찰의 김학의 불기소 결정문 참조). 검찰이 ‘고위직 검찰 선배’를 봐준 게 아니냐는 의혹이 당시에도 불거졌다. 이 처분은 지금도 검찰의 기소독점권 문제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꼽힌다.

김학의 성폭행 의혹 사건에 대한 핵심 질문은 두 가지다. 첫째, 그를 형사처벌할 수 있나? 둘째, 김 전 차관을 형사처벌할 수 있다면 2013년과 2014년에는 왜 그렇게 하지 못했나? 검찰 과거사위는 김 전 차관에 대한 뇌물 혐의를 우선 적용해 재수사를 권고했다. 검찰 과거사위는 윤중천씨가 김 전 차관에게 돈을 주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던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과 민정비서관이던 이중희 변호사도 수사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둘은 모두 검찰 출신이다. 경찰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경찰청 수사국 사람들 청와대로 불려가

두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2013년 첫 수사 당시로 돌아가볼 필요가 있다. 2012년 하반기 서울 서초경찰서는 윤중천씨의 별건 사건을 수사했다. 당시 이미 서초동을 중심으로 김학의 전 차관의 성 동영상이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 경찰청 수사국 소속 범죄정보과 등을 통해 세평을 수집한 청와대 민정수석실도 접한 정보였다.

2013년 3월 인사 검증 국면에서 걸러지지 못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한 검증 자료가 청와대 윗선으로 올라가자 ‘이렇게 하면 큰일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사람이다’라며 깨졌고 경찰청 수사국 사람들이 청와대로 불려 들어갔다”라고 말했다. 당시 인사 검증을 맡았던 박관천 전 경정은 검찰 과거사위에 “당시 청와대는 김학의 동영상 관련 의혹을 알았고, 김 전 차관 임명 배후에는 최순실씨가 있다”라고 진술했다고 알려졌다.

2013년 3월13일 법무부 차관 내정이 발표되자마자, 다음 날 언론은 김 전 차관이 찍혔다는 성 동영상 관련 보도를 시작했다. 3월18일 경찰청 특수수사과에서는 김 전 차관에 대한 내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수사에 속도가 붙지 않았다. 경찰이 신청한 강제수사 관련 영장이 계속 검찰에서 반려되었다. 특히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한 검찰의 영장 반려가 집중됐다. 소환에 응하지 않은 김 전 차관에 대한 체포영장은 두 차례, 출국금지 요청은 두 차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검찰은 이 밖에도 경찰이 신청한 통신사실 조회 4회, 압수수색 영장 2회 등을 각각 반려했다. 보강 수사가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당시 경찰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이 사건을 방해한 것은 검찰이다. 수도 없이 영장이 기각됐고, 직원들에게 이런 수사를 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할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김 전 차관은 윤중천씨의 강원도 원주 별장에 간 적도 없고 성관계도 없었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문제의 동영상 원본에 김 전 차관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기에, 김 전 차관에 대한 대면 조사가 중요했다. 하지만 제대로 진척되지 않았다. 당시 검찰은 경찰 수사가 부족하거나 무리해 보강 지시를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시사IN 이명익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한 윤중천씨의 별장 전경.

이러한 상황에서 경찰 수사팀은 2013년 7월 김 전 차관을 특수강간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당시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뇌물 혐의를 적용하지 않은 것은 피해자가 강제로 성관계를 맺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뇌물죄를 적용하려면 피해자가 순순히 따랐어야 하는데 그렇게 진술하지 않았다. 또한 성관계 이야기가 처음 나온 게 2006년이고 수사 착수는 2013년이다. 공소시효가 몇 개월 안 남은 상황에서 혐의를 적용한다면, 검사가 기소하지 않을 개연성이 크다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검찰로 사건이 넘어간 지 4개월 후인 2013년 11월11일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검사 윤재필)는 김 전 차관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김학의 전 차관과 함께 특수강간 혐의로 송치된 윤중천씨도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대신 윤씨는 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이마저도 검찰이 윤중천씨에게 가벼운 죄를 적용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윤씨는 그해 7월 마약 혐의 등으로 사전 구속된 상태였다. 그런데 검찰은 마약 혐의와 관련해 윤씨를 최종 기소하지 않았다. 당시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하며 범죄 혐의가 소명됐다고 밝힌 사안인데도, 검찰은 마약 판매 및 알선을 했던 이들이 말을 바꿔 기소할 수 없다고 밝혔다.

김학의 성폭행 의혹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과 이를 지휘했던 검찰의 이후 상황이 갈렸다. 2013년 3~4월 경찰 수사 초기 지휘 라인이 줄줄이 인사 조치되었다. 임기가 1년 이상 남았던 김기용 경찰청장이 옷을 벗었다. 이세민 경찰청 수사기획관은 경찰대 학생지도부장으로, 반기수 경찰청 범죄정보과장은 경기 성남 수정경찰서장으로 전보 조치됐다. 강일구 팀장은 수사가 끝난 뒤 박근혜 정부 동안 수사팀 내 비수사 부서인 KICS(형사사법포털) 담당에 머물러야 했다(아래 〈표〉 참조). 당시 경찰 안에서 “불이익 안 받고 끝나면 다행이다”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반면 2013년 수사를 지휘했던 서울중앙지검 강력부 윤재필 부장검사는 현재 서울고검 소속이다. 2014년 재수사를 맡았던 강해운 부장검사는 2017년 후배 검사를 성추행해 면직됐다.

ⓒ김은지·최예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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