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협상의 끝은 아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하노이 회담이 성공이었으며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고 말한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수주 안에 평양에 협상팀을 보낼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북한의 대응도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3월15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평양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볼턴 보좌관을 비난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는 각별히 예우한 것만 봐도 그렇다.
지금까지 공개된 사실만 종합해보면, 요컨대 미국의 빅딜(big deal)과 북한의 스몰딜(small deal) 사이의 큰 간극이 결렬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평양이 핵·생물화학무기·미사일을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방식으로 폐기(FFVD)하는 작업을 선제적으로 단행하면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관계 정상화, 평화선언, 북한 경제의 밝은 미래를 보장하겠다는 게 미국 측 빅딜 제안의 요체다. 반면 북한은 지난해 9월 평양 공동선언 제5조에 언급했듯 영변 핵시설을 완전히 영구 폐기하면 민수경제와 민생에 영향을 주는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의 일부(2016년 4차 핵실험 이후 5개 결의)를 해제하고, 이를 통해 신뢰가 쌓이면 다음 단계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스몰딜을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
회담 직전과 달라진 미국 측의 ‘빅딜론’
다만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회담 직전의 기류를 감안하면 북측이 내놓은 제안은 예측 가능했던 반면, 미국의 카드는 예상 밖이었다는 사실이다. 1월 스티브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스탠퍼드 대학 연설에서 거론했던 점진적 이행,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병행 추진, 협상을 위한 로드맵 구상 등에 비춰보면 미국 측이 제시했던 빅딜론은 돌연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왜 미국의 태도가 돌변했을까?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선택은 물론 미국 내 정치 동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두 정상의 만찬이 끝난 직후인 2월27일 밤 워싱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에 대한 하원 청문회가 열리고 있었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극도로 불리한 증언이 쏟아져 나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의 제안을 활용해 북측이 수용할 수 없는 빅딜을 제시함으로써 결국 ‘노딜(no deal)’로 가는 것이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하노이 결렬을 오로지 이 같은 미국 내 정치 변수로만 설명하는 것에는 무리가 따른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 측은 여전히 ‘선 해체, 후 보상’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라는 정책 노선을 유지하는 반면, 북측은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른 단계적 동시교환’이라는 개념을 고수하는 데서 생기는 필연적인 충돌이다. 실무협상 과정에서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과 ‘우주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로켓 발사 권한’ 문제를 두고도 북·미 사이에 이견이 컸다고 알려져 있다. 북측은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는 사안이 미국이 갖고 있는 ‘완전한 비핵화’에는 위배되는 요구이기 때문이다.
남는 질문은 하나다. 해법은 무엇인가. 미국과 북한이 일괄 타결(all for all)에 대한 포괄적 합의를 만들고, 이를 동시교환 원칙에 의거해 단계적으로 이행해나가는 것만이 간극을 좁히는 유일한 길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쌍방이 수용할 수 있는 비핵화와 상응조치 이행의 로드맵을 만드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이를 만들어내는 작업에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촉진자 역할이 필수적인 이유다. 김정은 위원장을 조속히 만나 심층적인 현안 협의를 진행하고, 이를 토대로 트럼프 대통령과 해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중국, 일본과의 긴밀한 협의도 간과할 수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국과 북한 양측이 모두 자제력을 발휘해 대화와 협상의 동력을 유지하는 일이다. 2016~2017년의 계속된 위기 상황을 딛고 어렵사리 마련된 대화 트랙을 일탈하는 일은 모두에게 최악일 뿐이다. 그 관건은 나비효과를 피하는 신중함이다. 사소한 언쟁과 자극적 행동 하나가 엄청난 파국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놓치지 않는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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