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레트, 멋지고 당당한 그녀
  •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 호수 602
  • 승인 2019.03.29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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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Richard(리처드에게 이 영화를 바칩니다).” 영화가 끝난 뒤 스크린에 새겨지는 이 한마디가 이 글의 첫마디여야 한다. <콜레트>를 소개하기 전에 리처드를 먼저 소개해야 한다. 작가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의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영화감독 리처드 글래처의 마지막으로 돌아가야 한다.  

1999년의 어느 날, 리처드가 콜레트의 전기를 읽었다. 100년 뒤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현대적인 삶을 살다간 그에게 금세 매료되었다. 그때부터 콜레트의 소설을 차례로 찾아 읽고는, 언젠가 책을 손에 들고 말했다. “이 안에 이미 영화가 있다”라고. 리처드의 작업 파트너이자 인생의 단짝, 워시 웨스트모얼랜드가 곁에서 그 얘기를 들었다.

2001년의 어느 날, 두 사람이 열흘 만에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콜레트의 삶과 소설 안에 ‘이미 영화가 있’었으므로, 영화 만드는 일은 어려울 게 없어 보였다. 투자자들이 보기엔 달랐다. 100년도 전에 태어난 인물의 삶이 ‘시대를 너무 앞서간다’며 지갑을 닫았다. 시기상조라는 말만 하면서, 그놈의 적절한 시기란 게 대체 언제인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리처드에게 일명 루게릭병이 찾아왔다. “스스로 먹거나 옷을 입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태”로 악화된 2014년 초, 영화 <스틸 앨리스>의 촬영을 시작했다. 글을 말로 바꿔주는 애플리케이션과 공동 연출자 워시의 조력으로 현장을 지휘했다. 아름답고 가슴 벅찬 영화 <스틸 앨리스>의 주인공 줄리앤 무어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고 보름 뒤, 리처드는 세상을 떠났다.

왜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서 빠졌지?

마지막 순간, 워시가 물었다. “다음 영화는 뭘 만들면 좋을까?” 리처드는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던 발가락 하나를 꼼지락거리며 간신히 쓰기 시작했다. C-O-L-E-T-T-E. 그렇게 시작된 영화다. 어느 영화감독이 꼭 만들고 싶었지만 끝내 자기 손으로 만들지 못한 영화. 늘 함께 일하던 파트너가 혼자 힘으로, 하지만 둘의 마음으로 완성한 영화. <콜레트>에는 ‘강인한 여성’이면서 ‘당당한 LGBT(성소수자)’로 살다 간 작가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키라 나이틀리)의 선택과 결단의 순간들이 담겨 있다. 고 리처드 글래처가 바로 지금, 바로 이 시대를 사는 현대의 모든 관객에게 널리 알리고 싶어 한, 정말 끝내주게 멋진 사람의 전기 영화다.

C-O-L-E-T-T-E. 삶의 마지막 순간, 한 글자 한 글자 유언처럼 새겨넣은 리처드의 간절함을 이제 나는 이해한다. 콜레트는 혼자 알기 아까운 사람이다. <콜레트>는 혼자만 보기 아까운 영화다. 시기상조를 들먹이는 사람들이 말해주지 않는 적절한 시기란 언제나 바로 지금이라고, 멋진 연기와 촘촘한 만듦새로 입증해 보이는 영화다. 왜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서 빠졌는지, 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는지, 나는 그저 의아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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