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소기업 격차는 외환위기를 경과한 1998년 이후 본격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단적인 사례가 임금 격차다. 2017년 기준 중소기업 임금이 대기업의 절반밖에 되지 않을 정도다. 상식을 벗어난 격차에 분노한 사람들은 그 원인이 대기업 중심의 하도급 시스템에 있다고 간주하며, ‘대기업에서 벗어난 업체’ 중심의 새로운 산업생태계를 만들자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이런 분노와 반성이 자칫 현재 우리 사회가 지닌 역량을 해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서는 곤란하다. ‘대기업에서 벗어난 기업’ 중심의 새로운 산업생태계는 이론적으로 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이를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실증적 근거가 박약하다.

부경대학교 산업생태계연구팀의 ‘기업간 거래 네트워크 분석’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연구팀은 해당 산업의 거래관계에서 매입만 있고 매출이 없는 대기업을 선도기업으로 정의하고, 선도기업과 거래관계가 있는 협력기업과 거래관계가 없는 비협력기업(독립기업)을 비교 분석했다.

ⓒ연합뉴스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가운데)이 지난해 12월 창원시의 자동차 부품 기업을 살펴보고 있다.


독립기업은 유형자산 규모가 1차 협력기업의 4분의 1, 2차 협력기업의 3분의 2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부가가치 또한 1차 협력기업의 3분의 1, 2차 협력기업의 3분의 2 정도에 불과하다. 상시근로자 수 역시 협력기업의 절반 수준이다. 기술역량을 의미하는 총요소생산성 역시 협력기업보다 낮다. 한마디로 선도기업과 관련 없는 독립기업은 규모가 작고 영세한 업체라는 의미다. 독립기업은 한국의 발전 경로에서 변방에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는 세계 선진 메이커와 경쟁하는 대기업과 이를 지원하는 협력기업을 중심으로 형성되어왔다. 좋든 싫든 이들이 우리 사회의 가장 선진화된 부문으로 경제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다.

수출 대기업은 세계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메이커와 경쟁해야 했기 때문에 가장 선진화된 기술을 개발할 수밖에 없었다. 거래관계를 유지하려면 수출 대기업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하는 협력기업은 선진 기술을 빠르게 습득해야 했다. 반면 독립기업은 내수시장을 중심으로 존재했기 때문에 약한 경쟁에 노출되어 있었다. 최신 기술을 경험할 수 있는 경로 또한 부족했다.

대기업은 협력기업 성장 이끈 게 사실

결론적으로 독립기업을 중심으로 한 발전전략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수출 대기업은 한편으로 협력기업을 수탈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최신 기술 개발을 통해 협력기업의 성장을 추동한 것도 사실이다. 독립기업을 중심에 두는 전략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부문을 약화시켜 그나마 유지해온 역량마저 해체해버릴 수 있다. 선진화된 환경이 존재할 때 상대적으로 뒤처진 기업의 기술 학습이 강제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대·중소기업 관계의 정상화가 독립기업의 발전을 촉진할 수는 있지만 그 반대의 경로는 불가능하다. 결국 새로운 산업생태계에 대한 구상은 그동안 공공연히 자행된 대기업의 잘못된 관행을 해체하여 대·중소기업이 동반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작업에서 시작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기자명 송영조 (부경대 경제사회연구소 연구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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