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위기설의 실체
  • 남종석 (부경대학교 경제사회연구소 연구원)
  • 호수 602
  • 승인 2019.04.01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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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제조업 위기설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은 추격형 산업화에 성공했지만, 지금은 선두주자가 되었다. 이 성격을 제대로 파악해야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

‘2018 블룸버그 혁신 지표’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국가다. 지난해뿐 아니라 최근 5년 동안 연속 1위를 차지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투자 비중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다. 1인당 특허 건수도 가장 많다. 한국은 2000~2013년, OECD 국가 가운데 노동생산성과 총요소생산성 상승률이 가장 높은 나라였다.

이런 지표를 보면 한국 산업은 승승장구하고 있어야 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조선업 붕괴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 여러 언론에서는 지속적으로 ‘현대자동차 위기설’을 보도한다. 현대자동차그룹은 한국 자동차 산업의 총산출에서 80% 정도를 점유하고 있다. 철강 산업과 기계 산업도 상황이 좋지 않다. 혁신지표 1등인 국가에서 제조업 위기설이 꾸준히 흘러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인은 명확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세계무역의 성장이 정체되었기 때문이다. 불황으로 주요 국가들에서 수요가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심지어 뒷걸음을 치면서, 해외 상품에 대한 수입 규모도 성장하기 힘들었다. 그 결과, 한국 제조업의 산출 증가 역시 멈추게 된다.



오른쪽 위 그림 둘을 비교해보면, 이런 상황을 곧바로 파악할 수 있다. <그림 1>을 보면, 글로벌 차원의 총소득 가운데 무역의 비중이 1990년대 이후 급속히 증가하다가 2008년 이후 뚝 떨어지고 만다. <그림 2>는, 한국 제조업들이 2010년에 산출한 가치를 기준으로 각 연도별 산출을 나타낸 그래프다.



예컨대, 2013년 ‘자동차’의 값이 120이라면, 자동차 산업의 2013년 산출이 2010년의 1.2배라는 의미다. 전자를 제외한 다른 수출산업의 성장이 2011년에 정점을 찍은 뒤 정체되고 있다. 특히 글로벌 무역의 정체에 가장 민감한 조선 산업은 2017년의 산출이 2008년의 60%밖에 안 될 정도로 무너졌다.

한국은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이 세계 2위 국가다. 제조업의 주력은 자동차·전자·철강·석유화학 등 수출 주도 산업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유럽연합, 일본의 경제는 붕괴되었고, 중국의 성장률은 6%대로 하락했다. 자연스럽게 주요국의 수입 수요가 줄어들었고, 이에 따라 한국의 주력 수출산업 역시 예전만큼 많은 제품을 만들어 팔지 못하게 된 것이다. 조선업은 ‘붕괴되었다’고 평가해야 마땅할 정도이고 기계와 철강, 석유화학 부문에서도 적자 기업이 속출했다. 전자와 자동차 부문은 그럭저럭 버텼지만, 2015년 이후 자동차 산업의 산출도 크게 하락하기 시작한다. 이제 전자 업종만 승승장구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 주력 제조업의 ‘매출액 성장률(매출액이 늘어나는 속도)’이 대폭 하락했다. 심지어 주요 기업 매출액이 줄어든 경우도 많다. 수출 주도 대기업의 매출액 성장률 하락은, 대기업에 납품하는 협력기업들의 매출액 감소로 이어졌다. 매출액 성장률이 둔화되면서 영업이익률(매출액에 대한 영업이익의 비율로, 기업의 수익성을 나타내는 대표적 지표)도 지속적으로 감소한다.

2008년 이후 해외 수요 감소로 수익률 악화


오른쪽 <그림 3>을 보면, 선도기업(대기업)의 매출액 성장률이 2010년을 기점으로 그야말로 폭락한다. 2015년 이후에는 마이너스로 돌아선다. 단지 매출액의 성장 속도가 늦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매출액이 아예 줄어들게 되었다는 의미다. 2015년은 한국 제조업이 역사상 최초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해다. 선도기업 이외에 협력기업(대기업 납품업체)과 독립기업(대기업에 납품하지 않는 업체)의 매출액 추이도 비슷하다.



<그림 4>는 2006~2016년의 영업이익률 추이다. 2011년 이후 선도기업의 영업이익률이 협력기업이나 독립기업에 비해 크게 떨어지고 있다. 선도기업은 협력업체들로부터 납품받은 부품으로 최종재를 생산해 판매하는 업체다. 글로벌 불황의 충격을 직접 감당할 수밖에 없다. 선도기업에 비해 협력기업의 영업이익률은 큰 변화가 없다. 이는 선도기업이, 협력기업들이 납품하는 중간재 단가를 호황기보다는 덜 후려치거나 배려하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선도기업이 협력업체들에게 일정한 수익률을 보장함으로써 경기변동에 따른 위험을 일부 감당해주는 관행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경제의 주력은 제조업이다. 제조업 산출에서 수출의 비중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매우 큰 편이다. 그리고 2008년 이후 해외 수요의 감소가 한국 주력 제조업의 산출 및 수익률을 악화시켰는데, 이는 투자율 감소로 이어진다. 투자율 감소는 장기적으로 기업의 기술 경쟁력을 낮추고 생산성 상승을 정체시키게 된다. 지금까지 한국 제조업 부문 대기업들의 장점 가운데 하나였던 ‘공격적 설비투자’가 이뤄지지 못하게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 제조업의 여러 지표들이 나빠졌다고 해서 한국 기업만 그렇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현재의 정체 상황은 세계자본주의의 저성장 국면에서 모든 나라의 모든 기업이 직면하게 된 현상이다. 주요 선진국의 지표들은 더 나쁘다. 다만 한국 제조업은 지금까지 매우 빠르게 성장해왔기에 2010년대 이후의 저성장 국면이 더욱 민감하게 느껴질 뿐이다.

최근까지 한국 경제는 세계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하며 급속히 성장해왔다. 이제는 그런 확장의 시기가 지나가고 말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한국은 ‘추격형 산업화’로 성공한 나라지만, 지금은 선두주자가 되어버린 상태다. 역엔지니어링(개도국이 선진국의 제품을 분해하는 방법으로 설계 방법을 이해한 뒤 복제하는 공학)으로 선진국의 기술을 빠르게 습득하면서 시행착오를 줄이며 급속히 성장해왔지만, 일단 선두주자의 지위에 오른 이상 다른 나라의 상품을 베끼는 게 불가능하다.

한국은 스스로 혁신적이어야 하는 단계까지 왔다. 혁신 능력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앞으로 한국 제조업은 시행착오를 견디며 느릿느릿 전진할 수밖에 없다. 그런 가운데 어떤 나라는 한국이 점유한 지점을 찬탈해갈 것이고, 다른 나라는 더 멀리 도망갈지도 모른다. 한국 제조업이 직면한 위기다. 한국 제조업은 실패를 통해 몰락한 것이 아니라 성공으로 인해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그 성격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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