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
대형서점 한의학 코너를 즐겨 찾았던 적이 있다. 도움이 될 만한 책이 별로 없어 갈 때마다 실망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 이종대 상태의학연구소장(73)의 저작이 눈에 띄었다.

이 소장은 2012년 127년 전에 출간된 〈방약합편〉을 지금 시각으로 자세하게 설명하고 실제 처방한 사례를 묶어 〈새로 보는 방약합편〉을 펴냈다. 〈방약합편〉은 구한말 서울 배오개에서 찬화당약방을 하던 황도연 선생이 지은 책이다. 그가 사망한 지 1년 후인 1885년 아들 황필수가 간행했다. 〈동의보감〉에 수록된 4000여 개 처방 중 사용 빈도가 높고 잘 듣는 처방 473개를 골라내 실은 한약 처방집이자 편람서다. 〈동의보감〉이 우리 의학을 집대성한 의학 대백과 사전이라면 〈방약합편〉은 바로 그 정수이자 ‘수백 년간 이어져온 우리 의학계의 핵심’인 것이다. 그러나 초심자가 이용하기에는 난점이 있었다. 병증에 대한 처방은 일목요연한데 해제가 없어 응용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이종대 소장의 이름이 한약업계 내지는 한의학계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2004년 〈빈용 101 처방〉과 그 이듬해 〈빈용 202 처방〉이라는 책을 펴내면서였다. 그조차 한약업에 처음 입문할 때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중국 의학서들은 음양오행론이라는 이론에 치우쳐 치료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동의보감〉은 임상을 중시해 치료 효과가 뛰어났지만 용어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치료 경험을 정리하고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이론 체계를 개발하는 데 몰두했다. 1980년대 말 시작한 이 작업은 1990년대 들어 사재를 털어 세운 동의학연구소 연구원들과의 공동 작업으로 확대됐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약 30명의 고령 한약업사들에 대한 임상 채록 사업은 그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2000년대 들어 〈태극〉이라는 잡지를 만들어 치료 사례를 공유하고 잇단 서적 발간으로 자신감이 생기자 좀 더 큰일에 도전할 용기가 생겼다. 임상가들이 가장 많이 애용하는 〈방약합편〉을 중심으로 30여 년간 축적해온 임상기록을 재정리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뼈대만 전해져온 〈방약합편〉에 현대적인 옷을 입히고 살을 붙이는 작업이었다. 각 처방의 해제를 달고 한약업계가 그동안 이 책의 처방으로 치료해온 임상 사례를 빼곡히 실었다. 하나의 처방이 다룰 수 있는 질병의 범위가 크게 확장된 것이다.

〈방약합편〉의 백미는 ‘활투침선’에 있다고 한다. 응급 상황에서 쓸 수 있도록 병증과 처방전을 실과 바늘처럼 쉽게 찾을 수 있게 한 일종의 핸드북이다. 〈새로 보는 방약합편〉에는 활투침선의 21세기판이라 할 ‘병증 도표’를 실었다. 현대에 유행하는 각 질병에 어떤 처방을 쓰면 되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한의사·한약사·한의대생 등 그의 강의를 들은 인원만 2000여 명, 그가 조직한 학회에서 활동하는 이도 300~400명이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그들도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가 모은 30여 년의 처방전이 〈새로 보는 방약합편〉을 낳았다면 언젠가 그 후학들에 의해 또 다른 〈방약합편〉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