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할 예정이던 3월7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2차 본위원회가 3월6일 돌연 취소되었다. 여성·청년·비정규직 대표로 경사노위에 들어간 3명이 불참을 통보하면서다. 경사노위 본위원회는 노동 대표 5명, 기업 대표 5명, 정부 대표 5명으로 구성된다. 각 부문 대표의 2분의 1 이상이 출석해야 열릴 수 있다. 노동 측 대표는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나지현 전국여성노조 위원장(여성 대표), 김병철 청년유니온 위원장(청년 대표),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비정규직 대표) 등 4명이다(5명을 채우지 못한 이유는,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참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노동 대표 4명 가운데 여성·청년·비정규직 대표 3명이 빠져 회의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다.

대통령 참석 행사가 그 전날 취소된 것은 심각한 일이다. 대통령 직속인 경사노위는, 사회적 대화를 통해 어떤 계층이든 동의할 수 있는 노동정책을 설계하기 위한 기구다. 지난해 11월의 첫 본위원회부터 문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힘을 실어주었다.

ⓒ연합뉴스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앞)이 3월11일 여성·청년·비정규직 대표 3명이
3차 본위원회에 불참한 것과 관련해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지난 2월19일에는 경사노위 산하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가 ‘첫 사회적 합의’를 도출했다고 발표했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시사IN〉 제599호 ‘탄력근로제 합의 그것을 알려주마’ 기사 참조). 문재인 대통령은 탄력근로제 합의를 두고 “이해관계가 대치될 수 있는 문제들을 타협하면서 합의를 이룬 것”이라며 “내용 자체도 굉장히 중요한 합의이고, 나아가서는 그런 문제를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해결한 첫 사례”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문제는 탄력근로제 합의가 한국노총과 한국경영자총협회, 정부 사이에서만 이뤄졌다는 데 있다. 다른 계층의 대표들이 사실상 배제되었다.

당초 1998년 출범한 한국의 사회적 대화기구 명칭은 줄곧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 이 기구는 좀 더 폭넓은 계층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편되었다. 기존 노사정위원회에서 상대적으로 대변되지 못했던 청년·여성·비정규직과 중견기업·중소기업·소상공인을 노사 대표로 포괄한 것이다. 명칭을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바꾼 이유다.

새로 출범한 경사노위에서 비로소 본위원회 위원 자격으로 의결권을 갖게 된 여성·청년·비정규직 대표들이 정작 탄력근로제 합의 과정에서 빠졌다. 비정규직 대표인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탄력근로제 합의를 언론 보도를 보고 알았다. 경사노위 안에서 우리는 유령이었다”라고 말했다(36쪽 기사 참조).

무노조 사업장엔 효과 없는 안전장치

여성·청년·비정규직 대표 3명은 지난해 11월22일 경사노위 1차 본위원회에서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를 꾸릴 당시 자신들도 참여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경사노위 관계자는 “경영계가 명시적으로 반대해서 논의를 더 진전시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탄력근로제 합의가 나온 직후인 2월27일에도 계층별 대표 3명은 합의 반대 의견과 수정안을 경사노위에 제출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연합뉴스여성·청년·비정규직 대표가 3월11일 탄력근로제 합의안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이어 무산된 2·3차 본위원회는 바로 이 탄력근로제 합의를 의결하는 자리였다. 여성·청년·비정규직 대표들로서는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하지도 못한 탄력근로제 확대 방안에 거수기 노릇을 하라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더욱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는 조직된 노동자들보다 미조직 노동자들(여성·청년·비정규직이 많은)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사안이다.

탄력근로제란 사용자가 자신의 필요에 따라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제도다. 현행법상 노동시간은 아무리 길어도 1주에 52시간을 넘기면 안 된다. 그러나 탄력근로제를 도입할 경우 ‘단위기간’의 평균이 ‘1주 52시간’이면 된다.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단위기간’이 2주인 경우에 한 주는 62시간, 다음 주는 42시간 일을 시킬 수 있는 것이다(1주당 평균은 52시간으로 계산된다). 이렇게 되면 법상 ‘연장노동시간(통상임금의 1.5배 지급)’이 줄게 된다. 사용자 측은 노동비용을 줄일 수 있다. 노동자로서는 특정 기간에 지나치게 많은 일을 감당해서 건강을 해치거나 임금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번 합의가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단위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는 대신 근무일 사이에 11시간은 연속으로 쉬어야 한다는 ‘11시간 연속휴식제도’를 도입했다. 밤 12시에 퇴근했다면 다음 날 오전 11시 전에는 업무를 시킬 수 없게 하는 내용이다. 사용자들이 특정 기간의 노동시간을 무한정 늘리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조항이다. 진보 성향 노동법 학자들도 의미 있는 안전장치라고 평가한다. 합의안에는 임금 삭감을 방지하기 위한 흔적도 보인다. 기업이 임금 보전 방안을 고용노동부에 신고하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이런 안전장치가 여성·청년·비정규직이 많은 무노조 사업장에는 별 효과가 없다. 기업 측이 탄력근로제를 시행하려는 경우 먼저 노사합의를 해야 한다. 노조가 없다면 ‘근로자 대표(근로자 과반수를 대표)’와 합의하면 된다. 그 합의 사안에는 노동자에게 불리한 조건도 포함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근로일 사이 11시간 연속 휴식’의 경우, 근로자 대표와 서면 합의하면 지키지 않아도 된다. 임금 보전 방안 역시 근로자 대표와 서면 합의하면 고용노동부에 신고하지 않아도 된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2017년 말 기준 10.7%다. 비정규직 노동자 중 노동조합에 가입한 비율은 3.1%에 그친다. 근로자 대표를 어떻게 선출해야 하는지 법에 명문화되어 있지도 않다. 노동조합이 없는 대부분의 사업장에서는 근로자 대표와의 협의나 합의가 매우 형식적이거나 심지어 기만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경사노위는 ‘근로자 대표’ 문제를 별도의 다른 위원회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계층별 대표들로서는 이런 우려가 해소되지 않은 채 본위원회 의결에 참여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일단 참여하면 반대 의사를 표시해봤자 표 대결에서 이기지 못한다. 이미 한국노총은 탄력근로제 확대에 합의했고, 민주노총은 경사노위에 참여하지 않고 장외에서 단식·점거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계층별 대표 3명은 이런 상황에서 1700만명을 웃도는 미조직 노동자(2017년 말 기준 1747만7000명)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할 수 없다는 절망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계층별 대표 3명은 ‘사회적 합의 1호’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가 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지난해 11월 정치권(여야정 상설협의체)에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그해(2018년) 내에 확대한다’고 이미 결정해버린 뒤 경사노위에 공을 넘긴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주장이다. 이주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는 “한국은 사용자 단체가 중소·영세기업을 거의 대변하지 못하고, 노동조합도 여성·청년·비정규직은 잘 대변하지 못한다. 가뜩이나 사회적 대화가 잘되기 어려운 조건인데, 국회나 정부에서 빨리 합의해오라고 (경사노위에) 압박까지 했다”라고 말했다.

모처럼 경사노위 참여가 허용된 청년·여성·비정규직 대표들이 정작 발언권을 제약당하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기존 노사정위원회 개편 논의에서 청년·여성·비정규직을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현재의 경사노위)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정부 측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의중이었다고 알려졌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청년·여성·비정규직 대표가 양대 노총과 동등한 권한으로 사회적 대화기구에 들어오는 데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모호한 타협이 이뤄졌다. 여성·청년·비정규직 등을 본위원회 위원으로 참여시키되 운영위원회에서는 배제한다는 내용이었다. 운영위원회는 안건 상정 등 강력한 권한을 가진 조직이다. 계층별 대표들이 운영위에 들어갈 수 있었다면 이번 탄력근로제 합의안에도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다(이들이 활동하는 주요 통로가 될 ‘계층별 위원회’는 아직 꾸려지지 못했다). 현재 계층별 대표들은 자신들의 계층과 밀접한 제도를 논의하는 ‘의제별 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 중이다. 운영위원회에 대해서는 3명 중 1명이 ‘참여’가 아니라 ‘참관’이라도 할 수 있게 허용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경사노위에서 우린 유령이었다”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본위원회를 두 차례 무산시킨 것은 다름 아닌 여성·청년·비정규직 대표들이다. 비정규직 대표로 경사노위에 참여하는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사진)을 3월13일 만났다.

본위원회에 두 차례 불참했다.

기로에 섰다. 정말 고심했다. 셋 다 힘이 없으니 갈대처럼 흔들렸다. 양쪽(정부·한국노총과 탄력근로제 확대에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에서 끌어당기는 힘이 너무 강했다. 미조직 노동자 대표라면서 불참하는 게 말이 돼? 탄력근로제 확대가 1호 합의안이 되는 게 맞아? 미조직 노동자들이 처한 위치가 우리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입구는 있는데 출구는 없었다. 미조직 노동자가 1800만명에 가깝다. 대표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을 많이 했다. 미운털도 많이 박혔지만, 우리가 대변하고자 하는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우리가 있다는 것을 알렸다고 생각한다. 민주노총에도 ‘들어와서 얘기하라’고, 한국노총에도 ‘우리 없이 합의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냈다.

정부는 주 52시간 상한제 안착을 위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가 사회적 대화를 도구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법 개정 때는 2022년까지 이행결과를 보고 논의하겠다고 했다. 지금은 2019년이다. 이렇게 서둘러 확대할 필요는 없었다고 본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노사가 ‘윈윈’할 수 있는 의제를 고심했어야 한다.

안전장치를 마련했다고 하는데?

11시간 연속휴식제도 등 괜찮은 것들이 들어가기는 했다. 노조 없는 사업장에서는 무력화된다는 것이 문제다. 양대 노총 소속 노동자들은 보호라도 받지만 미조직 노동자들에게는 심대한 피해를 줄 수 있다. 그럼 최소한 우리의 의견을 물어는 봐야 하는 것 아닌가? 대통령이 위촉했고 미조직 노동자 대표로 들어와 있는데. 한국노총과 경총이 합의한 것을 언론 보도를 보고 알았다. 그 과정에서 전혀 협의도 안 했고, 통보조차 없었다.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라 했는데 막상 들어갔더니 유령이 된 것이다.

양대 노총과는 대표성에 차이가 있다.

양대 노총의 대표성을 부정한 적 없다. 대신에 계층별 대표와 합의까지는 아니라도 협의를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조직 노동자와 관련해선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 힘이 다른데 역할을 어떻게 나눌지는 면밀히 검토되어야 하지만, 현재 같은 구도 속에서는 대단히 한계가 있다. 지금은 경사노위 출범 정신을 살리는 게 중요하다. 사회적 대화는 더디더라도 따져가면서 해야 한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