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에 나오는 균형발전의 딜레마
  • 천관율 기자
  • 호수 601
  • 승인 2019.03.26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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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조원짜리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가 용인에 들어서는 것은 ‘서울 집중’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헌법이 명령하는 균형발전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를 보여준다.

120조원짜리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은 구미로 가지 않는다. 한때 전자산업의 중심지였던 경상북도 구미는 반도체 클러스터 유치에 민관이 전력투구했으나 실패했다. 이 사업을 주도할 SK하이닉스는 경기도 용인을 택했다. 이로써 구미 외에도 청주, 천안, 이천 등이 유치전에 뛰어들었던 반도체 클러스터는 서울과 가장 가까운 용인으로 가게 됐다. 이 소식이 여론에 준 충격은, 아주 작았다. 구미의 실패는 공론장에서 아무런 논란을 만들어내지 않았다. 대구·경북 밖의 여론, 특히 수도권 여론은 당연한 소식이라는 듯 조용했다.

그러나 당연한 일만은 아니었다. 익숙한 기존 문법이 완전히 멈췄다. 고도성장기에는 지역 간 분업이 일종의 표준 모델이었다. 서울은 행정·경영·회계·법률 등 고급 서비스 기능을 담당하고, 지방은 대규모 제조업 생산을 담당했다. 수도권은 공장건축 총허용량제 등의 규제로 제조업 진입을 제약한다. 제조업은 땅값과 인건비가 싸고 혜택도 많은 지방으로 간다. 그렇게 지방에 대규모 고용을 창출한다. 울산·창원·거제 등 경남 공업벨트가 대표 사례다.

ⓒ독자 제공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유치를 기원하는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참여한 구미 시민들.

120조원이 들어가는 제조업 벨트가 서울 턱밑으로 온다는 것은 지역 간 분업 모델이 더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여론이 조용하다는 것은 그것이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니라는 의미다. 고도성장기 이후 한국에서 지방 발전의 핵심 동력은 제조업의 대규모 고용창출이었다. 이 모델이 멈췄다는 것은 균형발전이라는 헌법 가치가 실제 현실과 충돌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구미의 실패는, 너무나 조용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는 사실 때문에 진정으로 시끄러운 사건이 된다.

SK하이닉스는 구미를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로 고려한 적이 사실상 없었다. 용인도 일종의 ‘남방한계선’에 걸려 있었는데, 용인보다 더 아래로 내려가면 서울과의 거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멀어진다. 서울과의 거리는 왜 중요한가? 인재를 획득할 가능성이 거기 달려 있다. SK하이닉스는 부지 선정 보도 자료에서 용인의 장점을 열거했는데, 첫 번째로 “국내외 우수 인재들이 선호하는 수도권에 위치”했다는 점을 꼽았다. 반도체는 기술 경쟁이 치열한 산업이다. 시간이 갈수록 제조업 속성은 옅어지는 반면 지식 기반 기술기업 속성은 짙어진다.



SK하이닉스는 소속 직원을 ‘생산직’과 ‘기술사무직’으로 분류한다. 생산직은 제조 과정을 맡는 현장 숙련공과 일반 노동자다. 기술사무직은 대부분 연구직이다. 생산직 고용 인력은 제자리걸음인 반면 기술사무직 숫자는 매년 크게 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013년에 생산직은 1만2597명(60.7%), 기술사무직은 8159명(39.3%)을 고용했다. 그러던 것이 2018년 3분기에는 생산직 1만3035명(50.3%), 기술사무직 1만2854명(49.7%)으로 거의 차이가 없어졌다(위의 <표> 참조). 2016년과 비교하면 2018년 석사급 채용 인원은 4.3배, 박사급 채용은 2.3배 늘어났다. 연구인력이 생산인력을 넘어서는 지식 기반 기술기업 구조로 빠르게 나아가고 있다.

반도체 산업의 경쟁 양상이 인재 확보 경쟁으로 바뀌면서 ‘입지’의 개념이 바뀐다. 서울에서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 안쪽에 자리를 잡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반도체는 가혹한 기술 경쟁이 작동한다. D램 시장은 10여 년 전만 해도 주요 업체 10여 개가 경쟁했다. 지금 살아남은 주요 업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빼면 마이크론 정도다. 기술의 승자가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패자는 말 그대로 사라지는 이런 시장에서, 수도권의 비싼 땅값 정도는 기업의 고려 사항이 되지 않는다.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일도 아니다. 주요 반도체 기업은 최대한 대도시에 근접해 자리를 잡는다. 미국 인텔은 피닉스·보스턴·포틀랜드 등 대도시와 차로 30분 거리 안쪽에 공장을 둔다. 마이크론의 싱가포르 공장은 수도인 싱가포르와 직선거리로 겨우 14㎞ 거리에 있다. 반도체 산업의 고급인력은 선택할 수 있는 회사가 많은데, 인재 영입 경쟁이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 제공SK하이닉스는 2015년 완공한 경기도 이천의 M14(위) 근처에 새 공장인 M16을 건설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은 대공장 제조업이기도 해서 도심에 들어오기는 어렵다. 이런 제약조차 없는 기술산업은 대도시에서 당기는 힘이 더 강하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구동할 수 있도록 구동 소프트웨어를 함께 개발한다. 이 연구소는 성남시에 있다. 본사가 있는 이천과 떨어뜨려놓는 불편을 감수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의 노동시장은 서울과 성남에 집중되어 있다. 그 경계를 벗어나면 고급인력을 구할 가능성은 급격히 떨어져서, 공장을 끌고 들어갈 필요가 없는 IT 기업들은 기를 쓰고 경계 안쪽에 자리를 잡는다.

20세기 산업에도 집중이 주는 혜택은 있었다. 금속공업 생태계는 울산과 거제와 창원 등 경남 서부권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20세기형 집중’은 효과가 제한적이었다. 혜택 못지않게 비용이 올라간다. 토지 가격이 올라가고, 임금도 뛴다. 교통체증이 발생해서 수송비용도 는다. 그런데 21세기 지식 기반 산업은 이런 ‘집중의 비용’을 뛰어넘을 만큼 집중의 효용이 크다.

엔리코 모레티는 집중의 힘을 연구하는 경제학자다. 책 <직업의 지리학>에서 그는 “더 싼 지역으로 갈 수 있는데도 왜 혁신 기업들은 비싼 지역에 모이는가?”라고 묻는다. 더욱이 이 실시간 통신과 초연결의 시대에, 통신망만 연결된다면 어디에 있어도 상관이 없을 것 같은 IT 기업이, 왜 굳이 그 비싼 월세를 물며 실리콘밸리로 모여드는가? 부산이 중요한 항구가 된 이유는 거기 바다가 있고 항구를 만들기 좋은 지리 환경이 있으며 해상운송의 요충지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식 기반 산업은 대체 왜 거기에 있어야 하는지를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다. 실리콘밸리의 인터넷망이 유난히 빠르다거나 거기서만 컴퓨터 성능이 갑자기 높아질 리는 없다.  


ⓒEPA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2018년 8월30일 집회에서 환호하고 있다.


시애틀을 ‘임계질량’ 초과 도시로 만든 MS

모레티의 설명은 이렇다. 첫째, 거기에 고급인력이 많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거기에 일자리가 많기 때문이다. 첫눈에 이것은 순환논증처럼 보인다. 기업과 구직자가 둘 다 많다면 둘 다 적은 곳이나 마찬가지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중요한 것은 기업과 구직자의 비율이 아니다. 둘이 만나는 노동시장의 ‘두께’가 중요하다.

데이트 앱을 예로 들어보자. 남녀가 10명씩 가입한 앱과 1000명씩 가입한 앱이 있다. 두 앱의 성비는 1대 1로 같다. 하지만 사람들은 후자로 몰려들 것이다. 자기 취향에 맞는 데이트 상대를 발견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서다. 노동시장도 같은 원리로 돌아간다. 기업과 구직자들은 더 많은 기회를 탐색할 수 있는 두꺼운 노동시장을 더 좋아한다. SK하이닉스는 소프트웨어 개발기지를 본사인 이천까지 못 가져가고 성남시 분당구에 둘 수밖에 없었다. 강남과 분당 소프트웨어 노동시장의 ‘두께’가 고급인력을 거기 묶어두기 때문이다.

지식 기반 경제에서 대도시의 두꺼운 노동시장은 마치 구글이나 네이버처럼 작동한다. 구글이나 네이버는 이용자가 몰릴수록 그것으로 정보 생산자를 끌어들이고, 정보 생산자가 몰릴수록 그것으로 이용자를 끌어들인다. 이것을 ‘네트워크 효과’라고 부른다. 플랫폼이 갖는 힘이 여기서 나온다. 지식 기반 경제에서 대도시는 플랫폼처럼, 집중될수록 더 많은 자원을 끌어들인다.

둘째, 지식은 한군데 모여서 상호작용을 할수록 커지고, 흘러넘친다. 엔리코 모레티는 흥미로운 자료를 보여준다. 특정한 도시에 대학을 졸업한 노동자의 비율이 10% 늘어나면, 그 도시 고졸 근로자의 수입이 7% 늘어난다. 이 희한한 현상을 모레티는 지식이 말 그대로 ‘흘러넘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주위에 숙련도가 높은 고급인력이 늘어날수록 그에 둘러싸인 노동자도 숙련도가 올라간다. 그 결과로 수입이 늘어난다. 이런 효과를 ‘인적자본 외부효과’라 부른다. 하버드 대학 경제학과 에드워드 글레이저 교수는 비슷한 맥락에서 도시의 ‘인접성’을 강조한다. 인접성은 상품과 아이디어가 흘러 다니도록 만들어 준다. 도시는 한데 모여 살기 때문에 인접성이 높다. 작고 모험적인 기업과 숙련도 높은 시민이 많고, 이들의 인접성이 높다면 혁신을 만들어내는 최적의 환경이다. 지식은 모일수록 커지고, 지식 노동자들이 한데 모여 일하면 큰 시너지가 난다.

ⓒ연합뉴스최근 플랫폼 효과를 내는 창조적 대도시가 지방에 있어야만 21세기형 균형발전이 작동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아래는 서울 강남의 야경.


이제 ‘21세기형 집중’이 과거와는 차원이 다르게 위력적인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지식 기반 산업에서는 노동자도 기업도 한데 모여 있기를 원한다. 어느 한 도시가 집중의 ‘임계질량’을 일단 돌파하면, 그때부터는 플랫폼처럼 네트워크 효과가 작동한다. 몰려드는 힘이 몰려드는 힘을 낳는다. 집중은 거대한 초과수익을 만들어낸다. 지식은 모일수록 증폭한다. 20세기형 제조업에서도 이런 효과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21세기형 지식 기반 산업에서 이 효과의 위력이 극대화된다.

1979년 1월, 창업한 지 갓 4년이 된 미국 신생 소프트웨어 기업 하나가 앨버커키에서 시애틀로 본사를 옮겼다. 당시 시애틀과 앨버커키의 노동시장은 비슷했다. 시애틀의 대졸 근로자 비율은 앨버커키보다 5%포인트 높았고, 연봉은 4200달러 더 높았다. 하지만 이 기업이 시애틀로 이주하고 30여 년이 지나자, 두 도시는 거의 미국과 그리스만큼 격차가 벌어졌다. 2010년대가 되자 시애틀은 대졸 근로자가 앨버커키보다 45%포인트 많고, 연봉은 1만4000달러 더 많은 도시가 되었다. 이 소프트웨어 기업의 이름은 마이크로소프트다.

국가의 시대에서 글로벌 대도시의 시대로


공동 창업자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이 시애틀에서 태어났다는 우연, 그리고 기업이 궤도에 오르자 두 창업자가 고향으로 회사를 가져갔다는 우연이 결정적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시애틀을 ‘임계질량’을 넘기는 도시로 만들자, 이후로는 혁신 기업들이 줄줄이 인재와 지식을 찾아 시애틀로 몰려 들어왔다. 그중에는 월스트리트에서 잘나가던 금융가로 일하다가 인터넷 서점을 차리겠다고 시애틀로 온 제프 베조스도 있었다. 그가 만든 인터넷 서점 아마존은 훗날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회사로 성장한다. 베조스는 역설적이게도 앨버커키가 고향이다. 그는 고향이 아니라 인재가 많은 시애틀을 택했다.

구미시는 공장 부지를 10년간 무상임대하고 직원 사택을 공급하겠다는 조건을 SK하이닉스에 제시했다. 기업의 비용편익 계산이 토지비용, 생산비, 물류비 등 물리적 비용에 달려 있던 시절에는 이런 제안이 유효하고 적절했다. 하지만 지식 기반 기업들의 계산법은 전혀 달랐다. 이런 기업이 원하는 지식은 표준화되고 안정된 옛 지식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찾아내는 역동적 지식이다. 이런 지식은 사람이 들고 움직이며, 한 장소에 모여야 만들어진다. 민주주의 정부는 도로를 깔고 아파트를 올릴 수는 있지만 사람들을 구미에 가서 살게 할 수는 없다.

집중의 힘은 거세다. 이것을 교육 정책이나 공공기관 이전 정책과 같은 정부 정책이 실패해서라고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 힘은 그보다 뿌리 깊은 곳에서 나온다. 물리학자인 제프리 웨스트는 도시를 일종의 복잡계로 본다. 물리학 법칙이 관철되는 시스템이라는 의미다. 도시는 커질수록 도로, 수도관, 전선 등 물리적 기반시설도 따라 커져야 한다. 하지만 도시가 커지는 비율만큼 커지는 것은 아니다. 도시가 1만큼 성장할 동안 물리적 기반시설은 0.85만 늘어난다. 도시가 커지고 집중도가 올라갈수록 더 효율적으로 기반시설을 쓸 수 있어서다. 즉 도시는 커질수록 물리적으로 더 효율적이고 자원 절약이 된다.

도시의 사회경제적 효과는 그 반대다. 도시가 1만큼 커질 때, 사회경제적 측정치들은 1.15 늘어난다. 도시가 커지면 인접성이 높아지면서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이 더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웨스트가 측정한 사회경제적 효과에는 창의적 전문가 숫자, 특허 건수로 측정한 혁신 등이 들어가 있다. 즉 도시가 커질수록 혁신 역량은 도시보다 더 빨리 커진다(그리고 범죄도 사회경제적 결과이므로 더 빨리 늘어난다).

이쯤 되면 집중이 집중을 만들어내는 대도시의 힘은 거의 물리법칙처럼 다가온다. 균형발전은 헌법에 명시된 국가 원칙이다.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도 포함되어 있다. SK하이닉스가 용인을 지목했을 때, 균형발전론을 내걸며 반대하는 목소리는 정부·여당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다.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려면 수도권의 공장건축 총허용량제 심의를 통과해야 하는데, 이에 정부가 적극적이다.

20세기에 균형발전론은 지방에 대규모 제조업 단지를 전략적으로 조성하고, 토건 예산을 지역에 배분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정부는 균형발전을 위한 정책 옵션을 잃어가고 있다. 수도권 규제는 지식 기반 산업에 드는 칼이 아니다. 반도체 사업 정도가 되면 협상력의 역전도 일어난다. 국가 경제 전체가 반도체의 수출 역량에 달려 있다시피 한 상황에서, 반도체 사업이 수도권 규제 완화를 요구할 때 정부가 수용하지 않을 방법은 사실상 없다.

이런 맥락에서 하나의 매력 있는 대안이 떠오른다. 아예 경쟁력 있는 대도시, ‘임계질량’을 이미 넘겨서 플랫폼 효과를 누리는 대도시, 그러니까 서울에 집중하는 전략이다. 수도권 집중을 일종의 물리법칙으로 보고, 그것을 거스르는 대신 집중의 편익을 극대화하자는 의미다. 이것은 헌법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이기는 하지만 보수적인 학계와 언론에서 꾸준히 주장하는 의제다. 그리고 이 노선은 시대가 불가피하게 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에서 명분을 얻는다. 수도권 집중의 편익을 극대화하고, 거기서 나오는 초과수익을 지방에 배분하면 된다.

그런데 정말 될까? 국제관계 연구자인 파라그 카나는 세계경제포럼이 선정한 ‘미래 지도자’이자 <뉴리퍼블릭>이 지목한 ‘가장 과대평가된 사상가’다. 그는 외교관과 지식인 등 영국 엘리트들과의 저녁 자리에서, 그들이 런던 이외의 영국을, 런던 금융산업의 혜택으로 먹고사는 부담으로 인식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이 자리에서 나온 “런던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라는 발언이 기사화되기도 했다.

런던은 대도시 집중과 혁신의 대표적인 수혜 도시다. 집중의 수혜 도시는 나머지 배후지에 혜택을 돌려주기보다는 배후지를 갈수록 거추장스러워한다. 이것은 정치적으로 ‘집중되고 국제화된 대도시’ 대 ‘뒤처지고 소외된 나머지 지역’의 갈등을 만들어낸다. 영국은 2016년 6월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의 손을 들어주었다. 집중과 연결의 수혜 도시 런던은 반대했으나, 소외된 나머지 지역의 분노가 결과를 뒤집었다.

국제화된 대도시들은 자신들의 연결망을 형성하고, 소외된 나머지 지역들은 뒤처진다. 사회학자 사스키아 사센은 세계화 이후 등장한 거대도시들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서킷’이라고 불렀다. 경제는 성장하고 혁신은 증폭한다. 하지만 서로 연결되고 역동적으로 이륙하는 세계는 나라 전체가 아니다. 이 서킷이다. 서킷의 배후지는 느리고 정체되고 소외된 세계다. 이제 국경이라는 경계보다, 글로벌 도시와 배후지라는 경계가 실제 현실에 더 가까워진다.

서울에 맞설 지방 거점 대도시권 필요

서킷의 이륙을 지켜보던 배후지가 표를 무기로 역습을 택할 때, 정치는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그게 브렉시트였고, 그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이었다. “트럼프와 브렉시트는 둘 다 ‘새로운 도시 위기’라는 심층구조에서 비롯된다.” 도시경제학의 슈퍼스타이자 유명한 도시 낙관주의자 리처드 플로리다는, 최신작인 <도시는 왜 불평등한가>에서 그의 낙관주의를 약간 후퇴시켰다. 도시의 집중화라는 강력한 힘은 대도시와 배후지를 불평등하게 만들고, 도시 안에서도 창조적인 노동자와 그렇지 못한 노동자를 불평등하게 갈라놓는다.

배후지의 고용은 20세기형 제조업이 지탱해주던 시절이 한때 있었다. 지식 기반 산업은 기존 제조업 일자리를 자동화의 힘으로 없앤다. SK하이닉스의 매출액은 2013년 14조원에서 2018년 40조원으로 세 배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생산직 고용은 1만2597명(2013년)에서 1만3035명(2018년)으로, 사실상 늘지 않았다. 지식 기반 산업은 창조적인 대도시를 살찌우는 동시에 제조업 일자리를 쪼그라들게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불평등과 분열에 분노한 유권자들은 위험한 대안에 매력을 느낀다. 21세기 정치의 핵심 전선은 서킷과 배후지의 갈등으로 재편되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브렉시트와 트럼프 대통령 등장은 극단적인 예외라기보다는 징후적 사건이 된다.

이렇게 해서 20세기형 균형발전론도, 그 대안으로 제시되는 대도시 집중 전략도 딜레마를 극복하는 데 실패한다. 20세기형 균형발전론은 21세기형 집중의 힘이 정부 정책으로 되돌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문제를 넘어서기 어렵다. 대도시 집중 전략은, 우리가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한, 서킷과 배후지의 균열을 안정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최근 정부·여당과 학계, 혁신산업계 등에서는 ‘임계질량’을 넘는 지방도시, 서울에 맞설 자생 가능한 대도시가 적어도 하나 더 필요하다는 논의를 종종 들을 수 있다. 플랫폼 효과를 내는 창조적 대도시가 지방에 있어야만 수도권 집중화 문제가 풀리고 21세기형 균형발전이 작동할 것이라는 구상이다. 고한석 민주연구원 부원장 등이 이런 아이디어를 다듬고 있다.

김태일 영남대 교수는 대구·경북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학자인 동시에 민주당 당직을 맡기도 했던 정치인이다.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노무현 정부 시절에 지방에 공공기관을 하나씩 나눠주지 말고, 집중의 힘이 작동하도록 클러스터를 만들어 보내자고 제안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역에서 보면 사람을 잡아놓을 힘이 모자라기 때문에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결국 서울로 다시 빠져나간다. 서울이 당기는 힘에 버틸 만한 지방 거점 대도시권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 전략은 그 수혜 지역 외의 나머지 모든 지방을 적으로 돌리기 때문에 집권세력이 결단하려면 더 높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역시 험난한 길이다.

또 다른 접근법도 있다.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 한종호 센터장은 “대안들이 지나치게 서울의 눈으로 논의되고 있다. 지역의 눈으로 보면 다른 길이 보인다”라고 말했다. “환경이 바뀔 때 답을 찾아낼 수 있도록 다양성을 보존하고 있어야 한다. 다양성이 어디에 있나? 지역에 있다. 이걸 서울식으로 통일시키면 혁신의 재료가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정책결정자들이나 언론인들이 지역에 한 달이라도 직접 살아봤으면 좋겠다.”

SK하이닉스와 구미시는 21세기에 집중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헌법이 명령하는 균형발전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를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뜻하지 않게 한국 사회에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다. 20세기 이탈리아의 혁명가이자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는 “옛것은 죽어가고 있으나 새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상태”를 위기라고 말했다. 옛 해답은 작동하지 않는데 새 해답은 아직 출현하지 않았다. 당연해 보였고 거의 관심받지 않았던 ‘구미의 실패’가 흘깃 보여준 풍경은 당연하지도 간단하지도 자명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는, 헌법이 걸린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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