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 공항’과 예타 면제
  • 이강국 (리쓰메이칸 대학 경제학부 교수)
  • 호수 600
  • 승인 2019.03.15 20:5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겠다는 정부 발표를 보고 일본 채소 공항이 떠올랐다. 거시경제의 관리와 경기를 고려하면 이번 정책은 규모와 타이밍에서 한계가 있다.

일본에는 이른바 ‘채소 공항’이 있다. 1990년대 일본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대규모 토건사업을 추진했다. 당시 농림수산성은 농촌의 채소를 도시에 실어 나르겠다며 공항을 건설했다. 물론 이 공항들은 비행기 대신 파리만 날렸다. 트럭을 사용하여 채소를 운반하는 것이 훨씬 비용이 낮았기 때문이다.

지난 1월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해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면제하여 각 지역에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발표를 보고 채소 공항 생각이 났다. 국민의 소중한 세금을 비효율적인 사업에 낭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다.
 

ⓒ시사IN 조남진

수도권과 지방 사이의 격차는 나날이 커지고 있고 돈과 사람이 서울에만 몰리고 있으니 균형 발전이라는 대의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철도나 도로 그리고 공항을 짓는다고 지방이 살아날 수 있을까. 경제성을 중시하는 현재의 예타 제도 아래에서 지방의 사회간접자본 투자가 예타를 통과하기 어려우며, 예타 제도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예타라는 절차를 건너뛰는 것을 정당화하기는 어렵다.

예타는 경제성 외에 사회적 평가도 수행하며, 정부는 그것을 통과하지 못한 사업도 추진할 수 있다. 예타 면제의 문제는 나랏돈을 쓰는 사업의 추진과 결정 과정을 따져보지도 못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예타를 건너뛰고 추진된 4대강 사업을 그렇게 반대했던 이들이 비슷한 모습을 보이니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경기 둔화에 대응한 경기 부양과 총선을 앞둔 정치적 고려가 아마도 중요한 배경이었을 것이다. 경기선행지수와 동행지수, 그리고 제조업 생산능력과 가동률 등 어떤 지표를 보아도 지난해 하반기 이후 경기가 빠르게 가라앉고 있다. 특히 경남 등에서는 조선·자동차 등 주력 제조업의 위기를 배경으로 고용문제가 심각해 정부에 대한 정치적 지지도 빠르게 약해지고 있다.

 

 

 

ⓒ연합뉴스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대상을 발표하고 있다. 2019.1.29

 

이렇게 경기가 둔화되는 현실에서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공공투자 등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지출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현 정부는 경제정책의 전환을 내세우며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예산을 매우 줄였고 경기 관리에 썩 적극적이지 않았다.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공공투자는 2016년 23.7조원, 2017년 22.1조원에서 2018년 19조원으로 줄어들었고, 올해는 19.8조원이다.

또한 작년에는 민간 부문의 투자가 줄어 총고정자본투자증가율이 -2.3%였고, 경제성장률을 0.8%포인트 낮추었다. 그러나 정부의 고정투자도 0.9% 증가하는 데 그쳐 성장률에 기여하는 효과가 제로였다. 게다가 지난해에도 초과 세수가 25조원을 넘어서 확장적 재정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으니 정부도 고민이 컸을 듯하다. 사회복지를 늘리면 줄이기가 어려우니, 정부 관료들은 재정승수와 고용 효과가 큰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선택했을 것이다.

기후변화 일자리 위해 공공투자 추진하는 미국

하지만 거시경제의 관리와 경기를 고려하면 이번 정책은 규모와 타이밍에서 한계도 존재한다. 정부의 계획은 내년부터 10년 동안 24.1조원 공공투자를 수행하겠다는 것이지만 경기는 당장 식어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새만금공항이나 대전의 트램 같은 사업은 나중에 시민 부담만 커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번에 발표된 23개 사업 중에서도 경제 효과가 큰 사업이 적지 않지만, 일부 사업은 문제가 커 보인다. 이런 사업을 벌이기보다는 가장 가난한 노인들을 위한 사회복지와 기존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할 터이다.

최근 미국의 진보 정치인들은 ‘그린 뉴딜’이라는 이름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대규모 공공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우리도 어디에 얼마나 재정지출을 늘릴 것인지에 관해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긴축이라고 비판하며 재정을 확장하라고 하면 어디에 나랏돈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오곤 한다. 그 답이 사용자 없는 공항은 아닐 것이다.

 

 

Magazine
최신호 보기 호수별 보기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