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14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어느 남성의 글이 올라왔다. 클럽 ‘버닝썬’에서 위기에 처한 여성을 돕다가 클럽 관계자에게 폭행을 당했는데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오히려 피해자인 자신을 체포 및 폭행했다고 주장하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단순 폭행 사건으로 여겨지던 이 사건은 버닝썬과 경찰 사이 유착 관계를 조사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이어져 하루 사이에 20만명이 넘게 동의했다. 버닝썬 측은 이에 대해 사과하며 해당 남성이 여성을 추행하는 것을 제지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라 해명했다. 그러나 해명과 무관하게 버닝썬과 경찰의 유착 관계뿐 아니라, 클럽에서 마약의 일종인 ‘물뽕(GHB)’을 유통한다는 의혹까지 제기되었다. 물뽕은 무색무취한 약물로 알코올에 넣으면 10~15분 이내에 정신을 잃고, 24시간 안에 몸에서 흔적이 사라지기에 증거를 찾기 힘들어 ‘강간’에 이용된다고 한다. 버닝썬은 남성 고객이 ‘홈런(물뽕을 이용해 강간에 성공하는 것을 뜻하는 은어)’을 치려고 물뽕 사용하는 걸 묵인하고, 클럽 MD(머천다이저)가 이를 유통하기까지 했다.

ⓒ정켈
여성의 몸을 도구로 삼는 문화와 산업 ‘번성’

여기서 끝이 아니다. 버닝썬 직원이 강남 일대 성형외과에 손님을 연결해주는 ‘성형 브로커’로 활동한 정황도 드러났다. 이 직원은 클럽에서 만난 여성 손님에게 성형외과를 소개하는 등 불법 영업 행위를 했다고 한다. 강남 일대 클럽에서 유흥업소 여성에게 성형외과를 소개하고, 성형외과는 이 여성들이 ‘성형 대출’을 받아 수술하도록 연결해주는 부서를 운영하는, 이른바 ‘강남 유흥 산업’의 연결 고리 중 일부가 확인된 것이다. 단순 폭행 사건이 유흥업소와 공권력의 유착, 마약류 유통, 유흥업소와 성형외과를 비롯해 각종 파생 산업으로 연결되는 성산업 카르텔, 성폭력이나 성접대를 사업 수단으로 활용하는 남성 사회의 문화를 낱낱이 드러내는 매개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고구마 줄기인 줄 알고 캐봤더니 금맥이고, 개미구멍인 줄 알고 파봤더니 왕릉이 발견된 셈이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돌이켜보면, 하나의 사건이 남성 사회의 적폐를 드러내는 계기가 되는 역사적 순간이 최근 몇 년 사이 쏟아지고 있다. ‘문단 내 성폭력’ 고발이 ‘○○ 내 성폭력’ 고발 운동으로 번지더니 ‘미투’ 운동의 용기가 되어 사회에 만연한 성범죄 문화를 폭로하게 되었다. 또한 용기 있는 여성들의 질긴 노력과 이른바 ‘양진호 사건’을 통해 웹하드 카르텔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밝혀졌다. 사회 곳곳에 여성의 몸을 이용해 남성의 욕망과 이익을 채우는 문화와 산업이 존재하고, 공권력이 이들의 조력자로 존재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날 때마다 사람들은 경악한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했을까? (일부) 남성들은 비웃듯 말한다.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었는데 정말 몰랐냐”라고. 그렇다. 남성들 사이 침묵의 연대와 공유를 통해 이 사회는 여성의 몸을 도구로 삼는 문화와 산업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끔찍한 카르텔을 뚫고 겨우 이 남성 사회의 전모가 밝혀지고 있다. 이런 일들이 가능했던 게 놀랍기도 하지만, 이제라도 밝혀지고 있는 게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적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버닝썬 사건은 단지 그 장소와 특정한 개인들의 사건으로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성매매 산업을 오랫동안 연구한 김주희 교수가 〈을들의 당나귀 귀〉(후마니타스, 2019)에 밝힌 것처럼 이 사건은 “정의롭지 않은 남성 개인의 가해 행위를 넘어 이를 용인하고 때로는 권장하는 제도, 산업, 관습이 얽혀 있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부디 버닝썬이 치밀하게 얽힌 남성 사회의 불의한 연결 고리를 제대로 드러내고 이름 그대로 ‘버닝(burning)’되기를 바란다.

기자명 오수경 (자유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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