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의 정몽구 일가와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이 3월22일 열리는 현대차 및 현대모비스의 주주총회에서 다시 격돌할 전망이다. 이미 엘리엇은 지난해 현대차그룹의 구조개편 시도를 좌절시킨 바 있다(〈시사IN〉 제558호 ‘현대차 가는 길에 엘리엇이 나타났다’ 기사 참조). 엘리엇이 요구하는 배당금 규모가 가장 뜨거운 쟁점이다. 그러나 이 싸움은 궁극적으로 현대차그룹의 운영 방식에 대한 것이다.

엘리엇은 현대차에 5조8000억원, 현대모비스에 2조5000억원을 배당하라고 요구 중이다. 모두 8조3000억원. 현대차가 지난해 벌어들인 당기순이익은 1조6450억원, 현대모비스는 1조8800억원에 그친다. 엘리엇은 양사 당기순이익의 각각 3.5배와 1.3배를 내놓으라고 한다. 당기순이익은 기업이 한 해 동안 벌어들인 순이익 가운데 법인세를 내고 남은 금액이다. 이 돈으로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주거나 투자(연구개발, 설비구입, 신산업 개척 등)한다. 배당금을 늘리면 주주에게는 좋지만 지나칠 경우 해당 기업의 경쟁력은 장기적으로 떨어질 위험성이 크다.


ⓒ연합뉴스현대자동차그룹의 정몽구 회장(앞 왼쪽)과 정의선 부회장(오른쪽).

또한 엘리엇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에 각각 3명, 2명의 엘리엇 추천 인사를 이사로 선임하라는 제안도 내걸었다. 특히 현대차에 추천한 인사들은 미국과 중국의 경쟁 자동차 업체 출신이다. 현대차로서는 기업비밀 유지 차원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다. 이번 주총에서 표결에 붙여질 의제다.

이 정도로 ‘담대한’ 제안을 한 것을 보면, 엘리엇이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에 엄청난 지분을 가진 게 아닐까? 의외로 그렇지 않다. 엘리엇이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에 확보한 지분은 각각 3%와 2.6%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분만으로 엘리엇의 전투력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엘리엇에게 지분은 단지 ‘전투’에 참가할 자격을 얻기 위한 것일 뿐이다. 엘리엇은 아주 적은 지분으로 거대 기업(심지어 아르헨티나 같은 국가까지) 전체를 뒤흔든 경험을 여러 차례 갖고 있다. 일정한 패턴과 기법이 있다.

먼저 ‘목표물(기업 및 국가)’의 주식(기업)이나 채권을 사놓는다. 목표물의 운영에 대한 발언권을 갖기 위해서다. 어느 날 기회가 도둑처럼 찾아오면, ‘우리가 주주야’라고 터뜨리며 ‘이런저런 요구를 해서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라고 홍보한다. 해당 기업의 다른 주주들은 횡재라는 예감으로 들뜬다. 갖은 수단을 동원해서 목표 기업으로부터 돈을 만들어내는 엘리엇의 명성을 알기 때문이다. 엘리엇이라는 펀드는 일반 대중에게서 투자금을 모집하지 않는다. 소수의 거부들만이 고객인 ‘비공개 펀드’다. 사회적 평판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목표 기업의 다른 주주들로서는 ‘손에 피 묻히지 않고’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기회다.

ⓒEPA미국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창업자 폴 싱어.
엘리엇은 주주들을 규합하면 목표 기업 경영진을 압박해 자기 인사를 이사회에 꽂는다. 그들은 오로지 엘리엇과 주주들의 단기적 이익을 대변한다. 일단 이사를 꽂아놓으면 흥미로운 일을 많이 할 수 있다. 우선 해당 기업의 대규모 장기 투자를 억제한다. 당기순이익 가운데 투자로 사용되는 돈이 줄면 주주 몫이 커진다. ‘주주에게 줄 수 있는 몫’이 늘어나면 다양한 경로를 통해 기업으로부터 돈을 빨아낸다. 배당금 증액은 물론 ‘자사주 매입’ ‘비용 삭감’ 등이 대표적 방법이다. 현대차가 시중에서 거래 중인 현대차 주식(자사주)을 대량 매입한 뒤 제거하면 총주식 수가 줄면서 주가가 오른다. 비용 삭감의 가장 쉬운 대상은 노동자들이다.

투자자들에겐 엘리엇의 제안이 매력적

좀 더 파격적으로, 해당 기업을 쪼개거나 다른 거대 기업에 합병시켜 주주 이익을 확대할 수도 있다. 금융업자에게는 거대 이벤트다. 들뜬 분위기에서 주식을 새로 발행하고 쪼개고 합치면서 주가를 올린다. 목표 기업이 장기적으로 건강한 사업실적을 기록하게 될지는 관심 밖이다. 1차적 목표는 기업의 유지·발전이 아니라 금융수익의 획득이다. 엘리엇이 2%의 지분으로 이사 2명을 꽂아 넣은 미국 정보기술(IT) 대기업 EMC는 ‘델 테크놀로지’에 합병되었다. 주니퍼 네트웍스는 엘리엇 측 이사를 받은 뒤 조직 축소, 비용 삭감, 30억 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 등을 감행했다.

이미 엘리엇은 한국의 양대 그룹인 삼성과 현대차의 창업자 일가에게 ‘당근’을 흔들어대며 운영 기조를 바꾸라고 유혹한 바 있다. 2016년 10월 엘리엇이 삼성전자 이사회에 보낸 지배구조 개혁 방안은,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을 ‘인적분할’한 뒤 합병하는 방식으로 이건희 일가의 그룹 지배권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었다. 인적분할은, 그룹 창업자 가족이 큰돈을 들이지 않고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더욱 강화하는 방법이다. 엘리엇은 여러 차례에 걸쳐 “창업주 가족의 지위는 유지될 것”이라는 조건을 제시하며 대신 엄청난 것들을 요구했다. 삼성전자가 한꺼번에 30조원을 배당하고(전해인 2015년 삼성전자의 당기순이익이 19조원), 이후에도 잉여현금흐름(수익 가운데 세금·영업비용·설비투자액 등을 제외한 현금) 중 75%를 주주에게 환원하라는 것이었다. 3인 이상의 엘리엇 측 이사를 삼성전자 이사회에 받아들이라는 요구도 있었다. 당시 엘리엇의 삼성전자 지분은 0.62%였다.

현대차와도 이미 악연을 맺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가 현대차를, 현대차가 기아차를, 기아차가 다시 모비스를 지배하는 구조다(순환출자). 기아차가 모비스의 ‘아버지 회사’인 동시에 ‘손자 회사’인 이상한 족보다. 현대차가 지난해 3월 낸 개편 방안의 핵심은, 정몽구 일가가 직접 5조4000억원을 조달해서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는 것이었다. 덕분에 공정거래위원회와 증권가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 방안의 확정을 위해 예정된 현대모비스 주주총회(지난해 5월29일)가 예상치 못한 암초에 부딪혔다. 엘리엇은 “큰돈을 들여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며 인적분할을 통한 합병을 제안했다. 정몽구 일가에 당근을 준 것이다. 그러나 ‘2조6000억원 규모로 자사주를 매입하고, 배당금을 대폭 올리며, 외국인 사외이사를 추가 선임하라’는 요구가 따라붙었다. 현대차그룹은 주총 1주일 전인 지난해 5월21일 개편안을 공식 철회한다. 당시 엘리엇 지분은 1.5~2%로 예상되었다.

현재 현대차그룹의 처지는 어떠할까? 현대차는 최근 매출 감소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현금을 쌓기가 예전만큼 쉽지 않다. 더욱이 수소차·전기차·자율주행차 등을 둘러싼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투자의 필요성은 더 커진다. 지난 2월27일 발표한 중장기 경영전략에서 현대차는 향후 5년간 45조3000억원을 연구개발 및 미래차 부문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엘리엇의 제안을 정면 거부했다. 엘리엇이 현대차그룹의 이사회가 아니라 주주들에 대한 직접 홍보를 강화하게 된 이유다. 주총의 결과는 불투명하다. 투자자들 처지에서는 ‘당장 많이 퍼주겠다’라는 엘리엇의 제안이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정몽구 일가는 현대차에는 29%, 현대모비스에는 30% 정도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양사 모두 총주식의 45% 정도가 외국인 투자자 몫이다.

현대차와 삼성전자 등 한국의 글로벌 기업이 오늘날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수익 중 상당 부분을 연구개발 등 장기 모험 투자에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3월22일 주총은 단지 현대차그룹뿐 아니라 앞으로 한국 경제의 운영 기조를 결정하는 주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