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오, “넌 발톱의 때만큼도 모른다고 하더라”
  • 김연희·김은지 기자
  • 호수 600
  • 승인 2019.03.19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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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배우였던 윤지오씨는 장자연 사건의 유일한 증언자다. 유족이 장자연 문건을 태우기 전 그 내용도 보았다.
그가 10년 만에 용기를 내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고 나섰다.

신인 배우 장자연씨의 죽음 이후 수사선상에 오른 이들은 하나같이 그를 모른다거나 혐의를 부인했다. 이런 상황에서 윤지오씨(32)는 장자연 사건의 유일한 증언자였다. 신인 배우였던 그는 2007년 12월 더컨텐츠엔터테인먼트와 계약했다. 장자연씨가 두 달 먼저 들어간 회사였다. 꿈을 이루기 힘든 곳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윤씨는 10개월 후 기획사를 나왔다. 그사이 장자연씨가 겪은 성추행을 목격했다. 2009년 3월12일 유족이 장자연 문건을 태우기 직전, 그 내용도 보았다.

윤지오씨는 2009년 당시 검찰과 경찰에 참고인 신분으로 12차례나 출석해 자신이 보고 겪은 일을 진술했다. 장씨의 괴로움을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의무라 여겼다. 하지만 그 어떤 피의자보다 자신이 많이 불려나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허탈했다. 떠들썩한 수사를 하고는, 기획사 대표 김종승씨와 전 매니저 유장호씨만 기소했다. 그마저도 성접대·술접대 의혹과 관련 없는 폭행·모욕죄 등으로 각각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시사IN 윤무영윤지오씨는 최근 <13번째 증언>이라는 책을 펴내고 장자연 사건에 대해 입을 열었다.

성접대·술접대를 받았다고 의심되는 ‘장자연 리스트’ 속 인물은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의혹만 남기고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장자연 사건은 지난해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검찰 과거사위)가 출범하며 다시 조명됐다. 언론계·연예계·재계 관계자 등의 이름이 오르내린 장자연 사건 진실이 밝혀질 수 있을까. 윤지오씨는 10년 만에 용기를 내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고 수차례 했던 이야기를 다시금 꺼내들었다. <13번째 증언>이라는 책도 펴냈다.

장자연씨의 10주기를 사흘 앞둔 3월4일 윤씨를 만났다. 그는 <시사IN> 제593호 커버스토리 ‘조선일보 방 사장은 누구인가’에 실린 장자연 문건을 한참 바라보았다. <시사IN> 표지에 실린 장씨 사진을 가리키며 자신도 그날 프로필 촬영을 같이 했다고 말했다.



검찰 과거사위에서 옛 기억을 다시 꺼내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약 자연 언니가 내 상황이라도 그랬을 거다. 현재 캐나다에 살고 있는데, 한국 오기 얼마 전에 한 언론사에서 연락이 왔다. 다니는 교회랑 회사로 전화해서 나를 찾았다. 이 언론사는 예전에도 취재를 해놓고는 나중에 보면 자연 언니 관련 기사가 나오는 게 없더라.

주변에서 걱정도 했을 텐데.

오히려 캐나다라서 보호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연예계를 떠났다고 해도 한국에 계속 있었으면 이름을 밝히고 책을 쓸 엄두를 못 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가해자가 떳떳하게 살고 피해자는 더 힘들게 살아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서지현 검사를 시작으로 한국에서도 미투 운동이 일어났다. 그런 변화에 보잘것없지만 동참하고 싶었다.

지난해 MBC <PD수첩> 익명 인터뷰에서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동생인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 사진을 술자리에서 본 사람이라고 지목했다.

사진을 봐야 알지 이름은 모른다. 김종승 대표가 주선하는 자리에 오는 분들은 ‘내 이름이 뭐고, 뭐 하는 사람이다’ 이런 얘기를 안 한다. 당시에 스무 살 초반이었고, 살면서 그런 분들을 만날 일이 거의 없다 보니 얼굴을 기억한다.

그런 술자리가 자주 있었나?


김 대표가 부르는 자리에 적게는 일주일에 두 번 많게는 네 번 나가야 했다. 항상 자연 언니와 함께 갔다. 나는 그때마다 엄마가 밖에서 기다려서 밤 9시 정도면 먼저 나왔다. 언니가 나에게 “애기야, 넌 진짜 발톱의 때만큼도 모른다”라고 했다. 그때는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몰랐다.

장자연 문건에 “(김 대표가) 술을 많이 드시고 저를 방 안에 가둬놓고 손과 페트병으로 머리를 수없이 때렸다”는 내용이 있다.


김 대표가 내 친구를 폭행한 적이 있다. 그것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손에 피가 나도록 와인 잔을 깬 적도 있다. 무엇보다 회사를 나와야겠다고 마음먹은 결정적 계기는 친구가 화를 내면서 “너 술집 나가냐”고 물어서였다. 기획사에 있으면서 일을 한 건 없는데 술집에서 나를 보니 그렇게 생각했던 거다. 다행히 위약금 1억원 대신 계약금 300만원과 연기 학원비 300만원을 배상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해지했다. 방송 활동을 빌미로 식사 자리나 술자리에 불려가지 않아도 돼서 기뻤지만 여전히 기획사에 남아 있는 자연 언니가 마음에 걸렸다.

장자연 문건이 세상에 알려졌지만 전문이 공개된 적은 없다. 윤지오씨는 봉은사에서 유족들이 문건을 태우기 전에 전문을 본 사람이기도 하다.

거기에 ‘한 언론사의 같은 성을 가진 사람 세 명’이 쓰여 있었다. 이름이 쭉 있었는데 누구누구 감독들도 있었다.

2009년 참고인 조사를 받을 때 검찰과 경찰이 그 부분을 물어봤나?

당시는 일이 벌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니 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을 텐데 묻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추궁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렇게 12차례나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은 2009년 수사 당시 조사를 한 번도 받지 않았고, 2008년 10월 룸살롱에서 장자연씨와 동석했던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도 2009년 참고인으로 한 차례 55분 조사를 받았다.


참고인을 12차례씩 부르는 경우는 없다고 나중에 알게 됐다. 그때 나는 20대 초반이라 뭐가 뭔지 잘 몰랐다. 오라고 하면 가야 하는 줄 알았다. 주로 밤늦게 불러서 새벽까지 조사했다. 한번은 언론에서 전화나 문자가 너무 많이 와서 경찰에서 출석하라고 한 걸 모르고 지나간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안 올 시에는 어떤 처벌을 받을 수 있다’라고 공문 같은 걸 보냈다. 너무 무서웠다. 조사하면서는 ‘너도 성상납을 했고, 다 알면서 여기까지 와서 왜 얘기를 안 하냐’라고 했다. 내 통장 잔액이랑 통화 명세를 다 뽑아보고 가족 뒷조사도 했다. 정말 힘들었다.

그래서 한국을 떠난 건가?

지쳤다. 이후에도 연예계 활동할 기회가 있었다. 스물일곱 살 무렵에 큰 기획사와 계약 이야기가 오고 갈 때였다. 대표가 강남으로 이사를 하라고 했다. 그래야 자주 본다고. 불가능하다고 하니 본인이 집을 해주겠다며 집에서 보자고 했다. 집에서 왜 보느냐고 되물으니, ‘진짜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 유명한 사람들도 나를 만나고 싶어서 목을 매는데 너는 행운아인 줄 알아라’고 답하더라. 내 또래 자녀가 있는 걸 알아서 ‘자녀분이 이런 얘기 들으면 기분이 어떠실까요’라고 말하니, ‘네가 연예인 하고 싶다며. 그러니까 이 자리에 앉아서 이런 얘기를 듣는 거지. 감히 내 딸과 비교를 하느냐’라고 화를 했다.

장자연 사건 이후 연예계의 어두운 면에 대한 지적이 많았는데도, 여전히 그랬던 건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그 기획사와 미팅을 했던 거다. 20대 후반에 여자 연예인으로 자리 잡기가 어렵다. 너무 충격을 받아서 연락하지 않았다. 그러니 더 집요하게 메시지가 왔다. ‘빨리 갈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왜 돌아가려고 하냐. 빨간불에 꼭 멈춰야 하는 게 아니다. 유턴도 하고 속도위반도 하고. 빨리 가기만 하면 된다.’ 그때 거의 한 달 넘게 집 밖에 안 나갔다. 캐나다에 계시는 부모님이 심상찮다고 느껴서 나를 캐나다로 데리고 갔다. 나도···, 자연 언니와 동일하게 극단적 선택을 했는데 다행히 엄마가 빨리 발견했다. 이후에 입원치료를 받았다.

지금은 괜찮은가?

그렇다. 건강해져서 책을 쓸 수 있었다. 자연 언니와 함께한 시간은 1년인데 그보다 열 배나 되는 시간이 흘렀어도 잊지 못한다. 이렇게 증언하는 게, 살아남은 내가 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검찰 과거사위에서 곧 조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다.

2009년 수사가 종결 아닌 종결이 됐다. 나는 그때 검찰과 경찰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아는 걸 모두 이야기했다.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아니다. 당시 봉인됐을 뿐이다. 지난해 국민들이 청와대 국민청원을 하면서 재수사가 시작됐다. 23만명이라는 숫자가 굉장히 크다고 생각한다.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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