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에 무덤덤한 편이다. 따로 시간을 내서라도 웬만하면 다 읽는다. 유쾌한 댓글만 있는 건 아니다. 독자의 반응은 새겨들어야 하지만, 종종 내용 없는 인신공격성 댓글로 가득할 때도 있다. 욕을 3000~4000개 정도 읽다 보면 어느 시점부터 댓글이나 이메일 패턴이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된다. 슬프게도 이 일을 하다 보면, 폭력에 무뎌진다.

지난 1~2월, ‘대림동에서 보낸 서른 번의 밤’이라는 기획기사를 온·오프라인에 실었다(〈시사IN〉 제594·595호 ‘우리가 몰랐던 세계’ 기사 참조). 나름 명과 암을 모두 다루려 노력했지만, 능력과 노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 많은 분들이 댓글로 기사의 부족함을 지적했다. 지적하는 어투가 좀 ‘과격’했지만, 이 정도는 기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몫이라고 생각했다.

상처받는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경기도 시흥에 사는 한 독자가 이메일을 보냈다. 중국 지린성 출신으로 한국인과 결혼해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독자였다.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서 너무 가슴이 떨리더군요. 저희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엄마가 조선족이라는 걸 알게 될 테고 인터넷에서 차마 들을 수도 읽을 수도 없는 글을 읽을 거고. (아이들이) 얼마나 마음에 모순을 느낄지 안타깝네요.” 자극적인 욕이 담긴 댓글을 읽을 때보다 더 마음이 아팠다. 잠시나마 의연하다며 우쭐댔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시사IN 양한모
이 독자가 평소 얼마나 아이한테서 자신의 ‘흔적’을 지우려 노력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대림동에서 지내는 동안 비슷한 사례를 들었다. 지역 다문화가정 지원센터에서 한 재한 조선족 가정을 찾은 적이 있다. 지원 사업을 설명하러 간 자리였지만, 담당 공무원은 문전박대를 당하며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다시는 우리 집에 찾아오지 마세요. 애들 친구들이 내가 조선족 출신이라는 걸 알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 애가 왕따당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 태생적 굴레라는 게 적용된다면, 그래서 당사자가 일상에서 ‘신분 노출’의 공포에 질릴 수밖에 없다면 과연 그 사회는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 소수가 공포를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는 세상에서 언론은 무엇을 어떻게 기록해야 할까? 대림동 고시원의 찬 공기로 열어젖힌 이 겨울을, 해결하지 못한 숙제를 하나 떠안은 채 벌써 떠나보내고 있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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