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주기는 호르몬의 주기적인 변화로 인해 생긴다. 난포기(생리부터 배란 직전까지)에는 에스트로겐이 우세해 긍정과 활력을 준다. 황체기(배란 후부터 생리 직전까지)에는 프로게스테론이 우세하여 부종과 기분 저하를 일으킨다. 체온이 아침에 낮고 저녁에 높은 걸 가지고 질병이라 하지 않는데, 어쩌다 생리는 ‘주기성’이 질병이 되었을까?
생리전증후군(Premenstrual Syndrome·PMS)이라는 질병 코드가 찍힌 진단서는 마치 형벌 같지만, 사실 기준은 모호하다. 국제질병분류 ICD-10에서는 경미한 정신적 불편감, 더부룩함, 체중 증가, 유방통, 근육통, 집중력 저하, 식욕 변화 7가지 중 1가지 이상이 황체기에 국한될 때로 PMS를 정의한다. 미국 산부인과학회의 진단 기준은 신체적·감정적 증상 중 한 가지 이상이 생리 전 5일간, 석 달 이상 지속적으로 나타날 때로 정의한다. 이렇게 기준을 잡으면 무려 전체 여성의 70~97%가 ‘유병자’가 된다! 정신과 진단 가이드북인 DSM은 1987년 3판, 1994년 4판, 2013년 5판에 걸쳐 그 진단을 더 까다롭고 정교하게 내려, 11개 중 5개 이상의 증상이 생리 일주일 전에 시작해서 생리 시작 후 호전되어야 생리전불쾌장애(Premenstrual dysphoric disorder·PMDD)로 진단하게 했다. 그랬더니 전체 여성의 2~7%만이 ‘질환급’ 진단을 받았다.
심리학자 로빈 스타인 델루카는 〈호르몬의 거짓말〉(동양북스, 2018)에서 풍부한 근거와 통계를 바탕으로 ‘호르몬 신화’가 어떻게 젠더 불평등을 악화시켰는지 지적한다. 이미 1970년대부터 생리주기가 여성의 지적 기능, 성적 기능, 사회성, 산술과 공간 과제 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연구들이 수없이 나왔으나 이러한 연구는 언론에 좀처럼 보도되지 않는다. 반면 생리주기가 인지기능에 영향을 미친다는 소수의 연구는 호르몬이 여성을 ‘미치게’ 하는 확실한 증거라고 대대적으로 보도된다. 이는 다시 여성들에게 ‘노세보(Nocebo)’ 효과로 돌아온다. 플라세보 효과의 반대 개념인 노세보 효과는 어떤 약이 부작용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을 때 실제로 부정적 효과를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질병도 마찬가지로, 생리전증후군에 대해 듣고 상상하고 두려워하다 보면 실제 그러한 증상을 경험할 수 있다. 그렇게 신화가 사실이 되면 공식적인 차별과 평가 절하의 근거로 이어진다(‘대법관이 여자일 경우 생리 때마다 하는 판결은 믿을 수 없다’라는 식으로).
진료실에는 정말 PMS로 힘들어서 오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고통을 겪고 있는 여성에겐 도움이 제공되어야 한다. 근거 중심 의학에서 효능이 입증된 것들만 꼽자면, 통곡물 식단, 칼슘·마그네슘, 비타민 B6, 운동, 금연·절주, 침술, 인지행동치료, 항우울제(기분), 피임약, 이뇨제(부종), 달맞이꽃 종자유(유방통)이다. 이 밖에 체이스트베리, 프로게스테론 크림, 이소플라본 등은 전부 근거가 부족하다. 최근에는 자궁내막증이나 다낭성난소증후군이 PMS로 치부돼 진단이 늦어진다는 논문이나 유년기의 신체적·정신적·성적 트라우마가 PMS와 관계 있다는 논문도 많이 나오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여성 건강에 대한 더 많은 ‘잘 설계된’ 연구와 관심이지, 편견에 근거한 차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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