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의 악기로 사랑을 나누다
  • 이기용 (밴드 허클베리핀 리더)
  • 호수 599
  • 승인 2019.03.1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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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인 하프 연주자로 떠오른 곽정. 그의 음악 세계와 ‘악기 하프’에 대한 오해와 진실, 그리고 하프 대중화에 나선 이유 등을 들어보았다.

 

ⓒ하피스트 곽정 홈페이지하피스트 곽정(위)의 2016년 카네기홀 공연은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허클베리핀 이기용이 만난 뮤지션 ㉙ 곽정

퀸의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Love of My Life)’ 도입부에 프레디 머큐리가 노래를 막 시작하기 직전에 나오는 악기 소리는 무엇일까. 흔히 천상의 소리, 혹은 천사들의 악기라고 불리는 하프이다. 하프는 연주자들이 무대에 나오기 전에 악기의 등장만으로 객석의 환호와 카메라 세례를 받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악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연주되어온 이 오래된 악기는 그 우아하고 아름다운 자태 외에는 일반에게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내가 하피스트(Harpist) 곽정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얼마 전 우연히 FM 방송 클래식 채널을 통해 작년 연말에 열린 자선 콘서트 <셰어링 러브(Sharing Love)> 실황을 들으면서였다. 땅 위에서가 아니라 하늘에서 만들어진 것 같은 가볍고도 투명한 하프 소리에 나는 그의 음악을 하나둘 찾아 듣게 되었다. 1997년 세계적인 지휘자 주빈 메타가 이스라엘 필의 첫 내한공연 협연자로 선정하면서 세계 음악계의 눈길을 끌기 시작했던 그는, 지금 한국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세계적 하프 연주자가 되었다. 현재 국내 유일의 하프 국제 콩쿠르와 하프 페스티벌을 만들어 하프 대중화를 위해 활발히 활동 중인 곽정을 만나보았다.

 

 

 

 

이기용:하프는 무척 아름다운 악기지만 또 동시에 가장 오해를 많이 받는 악기이기도 하다. 하프에 대한 편견을 많이 들어왔을 것 같은데?

곽정:가장 많이 듣는 오해는 하프만 있으면 명문 대학에 간다는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1950년대 후반 이교숙 선생님이 국내에 하프를 처음 들여올 당시에는 워낙 악기가 귀해서 그런 일이 있었다. 지금은 삼수를 해도 대학에 입학하기가 쉽지 않다. 또 다른 대표적 편견은 하프가 엄청 고가여서 재벌가 사람들만 한다는 오해이다. 그러나 프로들이 하는 클래식 악기 중에서 하프는 오히려 가장 저렴한 편에 속한다. 작은 하프는 몇십만원대도 있고 심지어 고가의 바이올린 활 한 개 가격보다도 적게 나간다. 

이기용:매년 연말에 하는 <셰어링 러브> 시리즈는 티켓이 매진되는 등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어떤 공연인가?

곽정:<셰어링 러브>는 2010년에 시작했고, ‘사랑을 나눈다’는 제목 그대로 중증 장애를 앓고 있는 영아들에게 공연 수익금 전액을 기부하는 공연이다. 국내 유일의 장애 영아들을 위한 시설인 ‘한사랑 장애 영아원’을 후원한다. 그곳에 있는 아이들 대부분이 장애가 심하고 부모에게 버려져 종이상자에 담긴 채 발견된 영아들이다. 클래식 공연은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은데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매년 티켓이 매진되고 있다. 지난 크리스마스 공연에서도 티켓 판매로만 수익금 1500만원을 냈고 여기에 더해 모금으로 110만원을 보태 장애 아동 2명의 치료비를 후원했다.

이기용:어떤 계기로 <셰어링 러브>를 기획하게 되었나?

곽정:아이를 임신했을 때 대상포진에 걸렸는데 그게 귀에까지 왔다. 잘못하면 청각을 잃을 상황이었다. 게다가 얼굴의 70%에 마비가 와서 오른쪽 얼굴은 전혀 쓸 수 없었다. 당시 아이가 기형아가 될 확률이 정상인의 400배가 넘는다는 말을 듣고 병원에서 권하는 치료를 거부했다. 독한 약을 쓰면 아이가 위험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적같이 3주 만에 얼굴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이도 문제 없이 태어났다. 이 일을 겪으면서 나는 음악을 대하는 자세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그전까지는 남들이 안 하는 시도를 하며 나를 내세웠다면, 그 이후 나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났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음악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또 후배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찾기 시작했다. 나 자신이 장애를 겪었고 내 아이도 장애인이 될 위험에 처했던 것이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었다.

이기용:열네 살부터 서울시향과 협연을 하는 등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냈지만 프로 하프 연주자로 데뷔한 것은 1997년에 주빈 메타와 협연하면서라고 들었다.

곽정:당시 주빈 메타는 이스라엘 필 상임 지휘자였다. 1990년대 초반 이스라엘 오케스트라가 처음 내한했을 때 내가 협연했는데 당시 이스라엘 대사가 나를 인상 깊게 봤다. 그 대사가 나를 이스라엘에 추천해 2000년대 초반까지 이스라엘에서 가장 많은 클래식 연주를 한 한국 뮤지션이 되었다. 그때 함께 연주했던 동료들이 주빈 메타에게 나를 만나보라고 추천한 게 오늘에 이르게 됐다. 어느 날 미국에서 휴가를 내어 한국에 와 며칠 쉬고 있는데, 이스라엘 대사관에서 급하게 나를 찾는 전화가 왔다. 주빈 메타가 오디션을 보고 싶어 한다고 이탈리아로 나를 초청한 것이다. 바로 이탈리아에 가서 주빈 메타를 만나 오디션을 봤는데 채 5분도 안 듣더니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1997년 주빈 메타의 내한 연주에 함께하게 된 것이다.

이기용:연주자인데 한국 유일의 하프 페스티벌과 하프 국제 콩쿠르까지 만들었다. 어떤 이유에서인가?

곽정:지금도 어린 친구들이 하프만 있으면 대학 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는 실정이 너무 안타깝다. 하프에 대한 50년 전의 편견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하프는 국제 콩쿠르에서 아무리 뛰어난 성적을 내도 바이올린의 사라 장이나 피아노의 조성진처럼 대중적으로 스타가 되는 그런 시스템이 아니다. 하프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좀 더 많은 분들에게 다가가도록 노력하고 싶다. 그래서 코리아 국제 하프 콩쿠르와 하프 페스티벌을 만들게 된 것이다. 

이기용:이전에 발표한 ‘비바체(Vivace)’ 앨범이나 ‘토카타(Toccata)’는 연주 앨범임에도 당시 차트에서 1위를 하는 등 대중의 반응이 좋았다. 새 앨범을 발표한 지 꽤 시간이 흘렀는데 다음 앨범 계획은?

곽정:2016년 미국 카네기홀에서 한 공연이 전석 매진을 기록하는 등 반응이 좋아서 이번에 다시 미국으로부터 초대받아 링컨센터에 가게 되었다. 4월쯤에 하는 미국 투어에 맞춰 내가 음악감독으로 있는 ‘하피데이 앙상블’과 함께 하프 여섯 대로 녹음하는 앨범을 준비 중이다.

하피스트 곽정은 작년 말에 열린 <셰어링 러브> 콘서트의 티켓 180만원어치를 자비로 샀다. 공연에 초대하고 싶은 지인들에게 선물하기 위해서다. 심지어 그의 남편과 열두 살 된 아들도 티켓을 사서 공연을 관람했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그는 한사랑 장애원에 기부해서 아이들을 도와야 하기 때문이라며 웃었다. 1.8㎏의 미숙아로 태어나 당시 의료진으로부터 살기 힘들 것 같다는 판정을 받았던 곽정은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아이의 출산을 겪으면서 음악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었다. 그것은 고난과 고통을 겪은 한 개인이 어떻게 변모할 수 있는가에 대한 놀라운 예로 다가왔다. 천사들의 악기라는 하프에 걸맞게 그는 음악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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