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 마 건강검진’에 유전자 검사까지?
  •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
  • 호수 599
  • 승인 2019.03.15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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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검진과 선별검사에 장점만 있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소비자 직접 의뢰 유전자 검사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의학박사로 예방의학을 전공한 김명희 연구원이 새 연재를 시작한다.
하루는 부모님 댁에 갔더니 두꺼운 파일 뭉치를 내놓으면서 이게 다 뭔지 설명 좀 해달라신다. 건강보험공단에서 실시하는 정기 검진에 돈을 보태 모처럼 종합검진을 받으셨다는 것이다. 파일 뭉치는 결과표였다. 아무리 장롱면허라지만 그래도 딸이 의사인데 물어보지도 않고 엄마 마음대로? 검진기관 주소를 보니 심지어 가깝지도 않네? 혼자 여기를 어떻게 가신 거야? 알고 보니 검진센터에서 미니버스를 보내주어 동네 어르신들이 같이 다녀오셨단다. 뭔가 더욱 찜찜한데? 아니나 다를까 파일을 펼쳐 결과지를 넘기다 보니 아드레날린이 서서히 상승했다. 이것들이 노인네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엄마는 동네 단골 의원에서 고혈압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면서 주기적으로 심혈관 질환 위험요인들을 체크하고 있다. 작년에는 담석 때문에 입원해서 담낭절제술을 시행하고 상태가 안정된 뒤 소화기계 내시경 검사와 평소 어지럼증의 원인을 찾기 위한 CT 촬영도 했다. 사실 이때도 단골 가정의학과 선생님이 황급히 입원을 시켰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더 늦었으면 패혈증 때문에 큰일 날 뻔했다. 이렇게 엄마의 개인 건강정보를 길게 늘어놓은 이유는,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 일정 기간은 건강검진이 필요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건강검진센터에서는 기본 항목에 더해 임상적 타당성이 확인되지 않은 온갖 검사를 시행하고, 깨알 같은 숫자들, 정상·비정상 표식이 즐비한 표와 그래프 수십 장의 결과지를 내준 것이다. 검진센터 상담 의사는 ‘별 문제 없지만 고지혈증을 좀 조심하셔야겠다’고 했단다. 쓸데없는 돈 썼다고 말했더니, 엄마는 남들도 다 받는데 혹시 큰 병 놓칠까 봐 그러셨단다. 미리 챙기지 못한 내가 불효녀였다.


그렇다. 건강검진은 ‘남들도 다 받는’ 필수템이다. 시민단체 젊은 활동가들이 원하는 복지 서비스 목록에도, 대기업과 힘깨나 쓰는 노동조합의 단체협약 문서에도 건강검진은 빠지지 않는다. 유명 건강검진센터의 ‘프리미엄’ 건강검진은 그야말로 프리미엄급 효도의 상징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보건복지부뿐만 아니라 온갖 정부 부처와 지자체, 각종 민간 조직들이 실로 다양한 건강검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평균수명까지 살게 된다면, 최소한 30여 회의 건강검진을 받게 되는데 국가가 법으로 정한 것만 이 정도이다. 개인이 자발적으로 받는 ‘종합검진’ 혹은 특수집단을 위해 별도로 시행되는 이벤트나 사업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훨씬 커진다(아래 표 참조).

‘산업’으로 자리잡은 한국의 건강검진


세계적으로 이렇게 촘촘한 건강검진 체계를 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 사회가 금과옥조로 떠받드는 미국만 해도 영유아의 선천성 대사성 질환 선별검사나 일부 암 검진을 제외하면 ‘국가’ 단위의 정기 검진 프로그램은 없다. 예컨대 미국 정부가 운영하는 건강정보 사이트(healthfinder. gov)에 들어가 성별과 나이를 입력하면 의학적으로 필요한 검사나 상담 목록이 제시되고, 의사(your doctor)와 상의하라는 설명이 뜬다. 여기에는 혈압 측정 같은 간단한 검사부터 암 검진과 예방접종 같은 필수 항목은 물론 금연이나 가정폭력 상담 권고 같은 폭넓은 내용이 들어 있다. 국립보건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s, NHS) 체계를 가진 영국도 국가가 정한 필수 선별검사 프로그램이 있지만 항목이나 검사 주기, 대상자 측면에서 한국보다 훨씬 협소하다(www.gov.uk/phe/screening). 그리고 대개는 주치의의 권고나 건강검진이 이루어지고 검진 이후의 상담과 관리도 당연히 주치의와 함께한다.


ⓒ시사IN 이명익평균수명까지 살게 되면 1인당 30여 회의 건강검진을 받게 된다. 위는 서울 광화문에 있는 한 건강검진 기관의 모습.


아마도 건강검진, ‘인간 도크’의 원조인 일본 정도가 우리와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휴먼 도크’ 혹은 ‘인간 도크’라는 용어는 1954년 <요미우리 신문>이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6일짜리 건강검진 프로그램을 소개하면서 처음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 기원을 따지자면 1938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군국주의가 득세하고 정치 테러가 만연하던 시절, 일본 유력 정치인 두 명이 도쿄 대학 내과 클리닉에 입원하면서 심각한 중병에 걸렸다는 루머가 확산되는 것을 막고자 미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자신의 입원이 ‘다음 항해에 대비하여 배가 원래의 항구로 들어와 드라이 독(dry dock)에 들어가서 바닥과 스크류에 손상이 있는지 검사하고, 엔진과 다른 설비들을 유지 보수하며, 선원들에게 휴식을 주는 것’에 비유했다. 이후 정·재계 유명인들에게 인간 도크라는 말이 퍼져나갔다.

인간 도크는 1962년 한국에 수입되어 점차 확산되었다. 국내에서 건강검진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무엇보다 국가의 역할이 중요했다. 정부는 의료비 팽창에 대한 우려와 의료비 절감의 필요성을 충족시키면서 동시에 군인 건강검진처럼 제도의 정당화를 위해, 또는 노동자 건강검진이나 저소득층 건강검진처럼 정치적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이를 활용해왔다. 국내에서 종합건강검진의 인기가 좋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 검진기관들은 국가 검진 프로그램에 추가 검사를 덧붙이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건강검진은 증상이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질병에 걸렸거나 혹은 질병이 발생할 위험이 높은지 미리 확인하는 의학적 검사를 말한다. 집단을 대상으로 할 때는 고위험군이나 유병자를 ‘가려낸다’는 의미로 ‘선별검사’라 부른다. 병이 깊어지기 전에 미리 발견해서 치료를 할 수 있으니 자주, 많은 항목으로 검진을 받으면 좋을 것 같은데, 왜 다른 선진국들에서는 이렇게 하지 않는 것일까?

건강검진과 선별검사에는 장점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의학적 검사도 100% 정확한 것은 없다. 우선 모든 검사에는 ‘위양성(거짓 양성)’이 존재한다. 실제로는 병이 없지만 검사에서 문제가 있다고 나오는 것이다. 드문 질병일수록 위양성 비율은 높아진다. 이 때문에 멀쩡한 사람이 치료를 받기도 하고, 확진을 위해 추가 검사를 받기도 한다. 재검사나 확진 검사에서 정상이라고 나오면 다행이지만 여전히 마음은 불안하고 비용을 추가 지출하게 된다. ‘위음성’도 문제다. 실제로 질병에 걸렸음에도 검사에서는 문제가 없다고 나오는 것이다. 질병이 매우 초기 단계이거나 현대 의학 기술의 한계 때문에, 때로는 진단 기술이나 판독의 미숙함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유가 무엇이든, 환자 처지에서는 검진 결과 괜찮다고 했는데 얼마 있다가 큰 병을 진단받으면 이것만큼 황당하고 억울한 일이 없다.

또한 검사 자체가 주는 위해도 있다. 예컨대 대장암 진단에 분변검사보다는 대장 내시경의 정확도가 월등하게 높지만 무작정 대장 내시경부터 하지 않는 이유는 1000건 중 1~3회의 빈도로 장 천공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검진 이후다. 건강검진을 통해 어떤 문제가 확인되면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 금연이나 운동 같은 생활습관 개선이 따르거나, 고혈압 약 복용, 혹은 운 좋게 조기 암의 수술적 완치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때로는 태아의 유전적 이상, 가족적 치매 유전자 변이처럼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거나 결과를 알아도 대처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경우도 있다.


ⓒ연합뉴스최근 정부는 유전자 검사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아래는 제1차 산업융합 규제특례 심의위원회 모습.

그렇기 때문에 제프리 로즈 같은 저명한 역학자는 선별검사 이후의 상담과 장기적 돌봄에 필요한 적절한 자원, 체계가 구비되지 않으면 선별검사를 해서는 안 된다고까지 주장했다.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처음 만난 의사에게 간단한 문진을 받고, 온갖 검사 항목을 모조리 긁어서 결과가 나오면, 다시는 만날 일 없는 의사가 이런저런 설명을 하고 추가 검사나 생활습관에 대해 조언해준다. 평소 엄마를 돌보던 단골 의사 선생님은 이 과정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고, 엄마도 도움받을 기회를 놓친 셈이다.

유전자 검사로 질병 예측 가능성 매우 낮아


상황이 이러한데도 정부는 또 다른 ‘검사’를 들고 나왔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는 ‘규제 샌드박스’의 일환으로 소비자 직접 의뢰(DTC, direct to consumer) 유전자 검사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미 정부는 2016년 6월부터 콜레스테롤·혈당 등 12개 항목의 46개 유전자에 대해 DTC 유전자 검사를 허용했다. 그나마 질병과 관련한 항목은 제외되어 있었는데 이제 ‘실증’ 명목으로 관상동맥 질환, 고혈압 등 13개 질환에 대해서 비의료기관이 DTC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마치 그동안 유전자 검사를 못해서 질병 예방 기회를 놓치기라도 한 것처럼 안달이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극히 일부 질환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질병이 여러 유전자, 그리고 환경의 상호작용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에 유전자 검사를 통한 질병 예측 가능성은 매우 낮다. 100% 예측하지는 못해도 고혈압 위험성이 높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30세 이상 인구의 30%가 고혈압 환자이고, 고혈압 위험요인은 당뇨병·심장병·암 등 여러 만성질환과 중첩된다. 돈이 남아돈다면 모를까 굳이 고혈압 위험이 높은지 알기 위해 유전자 검사까지 해야 할지 의문이다. 게다가 유전자 검사는 결과 해석에 상당한 논란이 있다. 미국의 한 연구팀은 자신들이 기존 DTC 유전자 검사 결과를 재검토한 결과 ‘위양성’이 40%에 달했고, ‘고위험’으로 분류된 유전자 변이 중 일부는 ‘양성’이거나 일반 인구집단에도 흔한 변이였음을 보고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결과 해석에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며 때로는 어려운 윤리적 결정이 수반되어야 하는 민감한 검사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의료기관을 벗어나 ‘쉽게 소비’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존 ‘묻지 마 건강검진’의 문제점을 집대성한 결정판인 셈이다.

산업계는 질병 확진이 아니라 참고 자료로만 활용하면 문제가 없다거나 의료기관에서 검사하는 것에 비해 비용이 훨씬 저렴하다고 주장한다. 미국과 일본은 DTC 유전자 검사가 이미 자유롭지만 아무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 인류유전학회는 이러한 검사의 과학적 타당성이 거의 없음에도 과대 홍보되고 있는 점, 검사 업체들의 개인정보 보호 관리규정이 미흡한 점을 지적하며 좀 더 강력한 규제를 요구한 바 있다. 특히 ‘미래의 자유의사 보호’라는 측면에서 미성년자에 대한 유전자 검사를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미국 유전학회도 성명서를 통해, 시민들에게 유전자 검사의 한계점을 분명하게 알려야 하며, 검사 항목의 선택과 결과 해석 과정에 훈련된 유전학 전문가가 반드시 개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해 미국 FDA가 유방암 관련 BRCA 유전자의 DTC 검사를 승인하자, 심각한 우려와 함께 소비자들에게 주의를 당부하는 성명을 긴급 발표하기도 했다. 미국이나 일본도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 한국과 마찬가지로 전문가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소비자 요구(를 빙자한 기업의 요구)’를 들어 발 빠르게 규제 완화를 진행하고 있을 뿐이다. 복지부는 산자부와 달리 질병이 아닌 ‘웰니스’ 중심이라며 칼륨 농도, 와인 선호도, 새치, 탈모, 기미·주근깨 등 57개 항목에 대해 DTC 유전자 검사를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공짜라면 재미 삼아 한번 해볼 만은 하겠다.

한국 사회에서 DTC 유전자 검사를 도입해야 할 이유는 한 가지뿐이다. 관련 기업들의 이윤 증대, 그리고 이는 국민들의 낭비적 지출, 건강과 윤리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비용의 증대를 의미한다. 인구 고령화 때문에 국민 의료비 상승이 걱정이라며 호들갑을 떨더니, 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절실한 것은 더 촘촘하고 완벽한 건강검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유전자 검사가 아니다. 합리적이고 안전한 선택, 효과적인 건강관리를 도와줄 수 있는 단골 의사, 주치의 제도나 빨리 내놓으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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