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지

직업병 판정은 근로복지공단 질병판정위원회에서 한다. 필요한 경우 역학조사를 하기도 한다. 직업병이 불승인되면 재심사를 청구하거나 행정소송을 통해 다시 판단받을 기회가 있다. 이 과정에는 의사, 산업위생사, 법조인 등 여러 전문가가 참여한다.

2009년, 뇌종양에 걸린 27세 여성이 산재 신청을 했다. 열아홉 살에 LCD 제조업체에 들어가 6년간 일하다가 무월경이 지속되어 퇴사했다. 그 여성은 납을 포함한 화학물질을 취급하면서 천 마스크와 얇은 비닐장갑을 끼고 작업하거나 맨손으로 만지기도 했고, 환기장치는 근처에 없었다고 했다. 이에 대한 역학조사평가위원회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현재까지 뇌종양의 뚜렷한 발암 요인이 밝혀진 바 없으며, 납의 노출 수준이 낮다’고 했다고 한다. 행정소송을 했지만 패소했다.

2010년 30세 여성이 뇌종양을 진단받았다. 역시 열아홉 살에 반도체 공장에 들어가 칩의 불량 여부를 테스트하는 일을 6년간 하다 그만두고 나서 몇 년 뒤의 일이다. 고온 챔버(반도체 장비의 하나) 30대 정도를 관리했는데, 테스트 후 챔버를 열면 역겨운 연기와 냄새를 맡아야 했다고 한다. 당시 역학조사 평가 참여 전문가 9명 중 6명은 뇌종양은 직업적 유해 요인이 명확하지 않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해당 작업의 유기화합물 노출 수준이 낮다고 평가했다고 알려져 있다. 행정소송에서 직업병으로 인정받았다.

전문가들은 왜 ‘노동자들의 경험’ 외면했나

2010년 42세 남자가 뇌종양에 대해 산재신청을 했다. 그는 반도체 공장에서 엔지니어로 20년 이상 일했다. 설비가 고장 나면 잔류가스에 노출되고, 가스통을 교체할 때 유독가스에 노출되기도 했으며, 새로운 설비를 다룰 때는 무슨 화학물질을 쓰는지도 모르는 채 작업했다고 한다. 당시 역학조사평가위원 9명 가운데 6명은 뇌종양은 작업환경과 관련해 발생할 수 있는 질환이라 평가했고, 3명은 전리방사선이나 화학물질에 대한 노출 수준은 낮다고 평가했다. 근로복지공단 질병판정위원회에서 직업병으로 인정되었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첫 번째로, 뇌종양은 직업병이 될 수 없다던 전문가들의 의견은 왜 바뀌었을까? 1년 사이에 과학적 지식이 획기적으로 증가한 것은 아니다. 다만 유해성에 대한 전문가들의 해석이 달라졌다. 두 번째 의문은 이것이다. 전문가들은 왜 이들의 작업환경에서 유해 인자의 노출 수준이 낮다고 평가했을까? 그들은 ‘노동자들의 경험’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것 같다. 피해자들이 일했던 때로부터 10년 이상 지난 시점에서 작업환경을 측정한 결과가 더 ‘과학적’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세 번째로 위의 사례에서 인과관계에 대한 판단은 왜 그렇게 달랐을까? 사회보험에 대한 전문가의 무지 때문일 수 있다. 직업병은 자연과학적으로 명확하게 그 원인이 밝혀지지 않더라도 사실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상당이라는 규범적인 측면도 같이 고려하는 ‘상당인과관계’에 의하여 판단한다. 산재보험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사회보험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노동자들의 질병과 업무 사이의 인과관계를 판단할 때 요구되는 것은 자연과학적 지식과 경험뿐 아니라 ‘지금 여기의 노동’을 이해하고 사회보험의 취지에 부합하는 판단을 하려는 자세일 것이다. 그것이 직업병 판정에서 전문가다움이다. 위의 사례들은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유사한 일들은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목도할 때가 꽤 자주 있다. 전문가들이 전문가다움을 갖추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기자명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