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이 결정된 건 사무실 계단 어디쯤이었다. 화장실에 가는 도중 편집국장과 마주쳤다. “가야지.” “어디를요?” “라오스!” 출근길에 읽은 기사가 떠올랐다. SK건설이 라오스 남동부에 건설 중이던 대형 댐에서 사고가 발생해 큰 홍수가 났다는 내용이었다.

얼마 뒤 그 출장은 현실이 됐다. 지난해 7월23일 사고 직후 한국 언론은 취재진을 급파해 무너진 보조댐과 임시 대피소를 집중 보도했다. 관심은 곧 사그라졌다. 8월 중순이 지나자 라오스 세피안·세남노이 댐 소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9월17일 이명익 사진기자, 김영미 편집위원과 라오스로 떠나 사고 현장 및 피해 지역, 수도 비엔티안을 열흘간 취재했다(〈시사IN〉 제578호 ‘마을이 있던 자리’ 기사 참조).


ⓒ시사IN 양한모

그때 취재한 내용 가운데 나헌족 얘기를 기사에 쓰지 못했다. 나헌족은 세피안·세남노이 댐이 건설된 볼라벤 고원에 사는 소수민족이다. 이번 사고로 피해를 당하지는 않았지만 댐이 건설되면서 원래 살던 지역이 수몰돼 강제로 주거지를 옮겨야 했다. 댐 사업자들은 공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수몰민 이주 대책을 마련했다. 나헌족은 재정착 지구에 집을 배정받았다. 그러나 그 공간이 대대로 살아온 터전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한 주민은 삶의 뿌리가 절단되는 경험을 이렇게 말했다. “많은 노인들이 이곳으로 오려 하지 않았다. 산에 방목해서 키우는 소들은 아예 데려오지 못했다. 지금 농사짓는 땅을 모두 새로 일구어야 했다.” 인명 피해를 부르는 사고가 없더라도 댐 개발은 이미 현지 주민들의 삶을 뒤바꾸어 놓았다. 개발도상국에 대규모 토목공사를 수주하는 기업들에게 단순히 사고 후속대책 이상의 높은 기준이 요구되어야 하는 이유가 눈앞에 있었다.

지난해 취재 당시 비엔티안에는 “사고 원인은 이미 자연재해로 정해졌다”라는 말이 돌았다. 한 댐 전문가는 “SK건설과 라오스 정부 모두에게 행복한 결말”이라고 취재진에 전했다. 라오스 정부가 발족한 진상조사위원회는 2월 말 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진상조사위원회에는 한국 정부가 파견한 전문가들도 옵서버로 참여했다. 혹여 소문처럼 결론이 정해진 조사라면, 한국 정부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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