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이슈] 파는 이를 한 번 더 보게 된다
  • 김연희 기자
  • 호수 598
  • 승인 2019.03.07 13:2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자인 임상철씨는 서울 지하철 홍대입구역 3번 출구에서 <빅이슈>를 파는 ‘빅판’이다. 스마트폰 지도 앱으로 홍대입구역 3번 출구를 찾아봤다. 자주 지나다니던 길목이었다. ‘홈리스의 자립을 돕는 잡지’라는 정보를 듣고, 거리에서 빅판을 마주치면 종종 <빅이슈>를 구입했는데 이곳에서는 빅판을 본 기억이 나질 않았다. 새삼 눈 밝게 저자를 알아보고 책을 출판해준 편집자가 고마웠다. 하마터면 그의 글을 영영 모른 채로 살아갈 뻔했지 뭔가.

서른 무렵이던 1998년, 외환위기로 직장을 잃은 임상철씨는 이후 약 18년간 노숙인 생활을 했다. 일용직 노동자로 PC방, 고시원, 쉼터, 공원 벤치를 전전하다가 <빅이슈>를 알게 됐다. 빅판이 된 저자는 잡지 뒷면에 자신의 삶을 담은 수필을 넣기 시작했다. 글 52편과 틈틈이 작업한 그림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됐다. ‘글 쓰는 홈리스’라는 콘셉트만 내세우는 책 아닐까 하는 기우는 “언제부터인가 겨울은 항상 절망을 던져주고 떠나간다. 다시 오겠다면서” 같은 문장 앞에서 곧 사라졌다.

저자는 지나친 낙관도 비관도 없이 ‘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프리즘으로 노숙인의 삶을 비춘다. 빅판이 빨간색 모자와 조끼를 갖춰 입고 “홈리스 자립 잡지 <빅이슈>가 왔습니다”라는 말을 내뱉을 때까지 스스로에게 얼마나 많은 질문을 던지는지, 나는 이 책을 읽고서야 짐작할 수 있었다. 임씨는 이 정직한 태도로 보육원 원생, 조각가를 꿈꾸던 조형물 제작 공장 직원, 노숙인으로 이어지는 삶의 궤적을 풀어낸다.

고개를 끄덕일 때도 많았다. “저는 시간에 게으른 자로서 많은 시간을 소비했습니다.” 내 일기장 어느 페이지에 쓰여 있다 해도 어색하지 않을 말이다. 습관처럼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을 되뇌지만, 또 애써서 제 인생을 살아보려는 이들이라면 모두, 이 책에서 꼭 자신이 쓴 듯한 글귀를 발견할 것이다.
Magazine
최신호 보기 호수별 보기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