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구속적부심을 신청하다
  • 문정우 기자
  • 호수 598
  • 승인 2019.03.07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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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들여다보면 앳된 소년도 혈기왕성한 청년도 간데없고 머리가 허연 중년 사내만 남았다. 얼굴 곳곳에는 검버섯마저 피었다. 인생은 창가를 휙 스쳐 지나가는 백마와 같다고 했던가. 새삼 세월이 빠르다는 걸 절감한다. 스스로를 돌아보며 상념에 젖을 수밖에 없다.

아주 오랫동안 인간은, 거울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살피는 존재는 지구상에 자기 말고는 없는 줄로만 알았다. 거울은 상상력을 자극해 신화와 전설, 동화의 소재가 되었다. 인간은 스스로를 완전한 독립체(자아)로서 의식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데 무한한 자부심을 느꼈다. 특히 유일신을 받드는, 그 유일신이 자기와 똑 닮은 모습으로 인간을 창조했다고 믿는 서양이 세계사를 주도하면서 그런 생각이 보편 가치인 것처럼 굳어졌다. 이런 인간 독존의 사고는 법과 제도, 식습관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를 규정했다.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분리하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

물론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도 있었다. 고대 인도철학은 사람이나 원숭이나 개미나 그저 똑같은 우주의 한 그물코라고 생각했다. 아메리카 인디언은 늑대나 들소, 곰도 모두 자체 언어·관습·법칙·영토를 가진 다른 부족으로 대접했다. 과학은 현대사회를 지탱하는 인간 중심의 사고가 오히려 진실과 거리가 멀다는 점을 일깨운다. 절대적 가치가 아니라 역사상 무수하게 등장해 유행하다 힘을 잃은 사조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말해준다.
ⓒ한성원

과학자들은 동물에게도 자아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게 1970년 미국의 심리학자 고든 갤럽이 침팬지 4마리를 대상으로 실시한 거울 실험이었다. 이 실험은 사회적 반응, 조사 행동, 자기 탐색, 표시 테스트 등 네 가지 단계를 거친다. 지금까지 침팬지, 오랑우탄, 코끼리, 까치, 돌고래, 그리고 일부 앵무새 부류가 테스트를 통과해 스스로를 기타 등등과 구별할 줄 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이 테스트에 대한 비판론이 없는 건 아니지만 과학자 다수는 이 테스트로 적어도 일부 동물에게는 자아가 있다는 게 밝혀졌다는 편에 서게 됐다.

미국의 브롱크스 동물원에 있는 중년 암코끼리 해피는 바로 이 거울 테스트계의 저명인사이다. 해피는 1971년 타이의 밀림에서 생포된 새끼 코끼리 7마리 중 한 마리이다. 숲에서 가족과 함께 살던 해피는 느닷없이 가족과 생이별하고 미국으로 실려와 여기저기 전전하다 브롱크스 동물원에서 뿌리를 내렸다. 그녀는 이 동물원에서 코끼리 쇼를 하며 지냈는데 수컷과 함께하거나 새끼를 낳은 적이 없다. 암컷 파트너 두 마리를 사고와 병으로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2005년 그녀는 거울 테스트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3단계를 순식간에 뛰어넘고 눈썹 위에 십자가 표시를 한 네 번째 단계도 가볍게 통과하는 능력을 보였다. 우리가 굳이 거울을 보지 않고도 거기 비친 상이 자기라는 걸 금세 알듯이 해피도 그와 매우 흡사한  반응을 보여 과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동물에게도 팔자가 있는지 해피는 다시 유명해지게 되었다. 지난해 12월14일 미국 뉴욕 주 법원은 매우 이례적인 구속적부심 요청에 대한 심사를 진행했다. 동물보호계의 저명인사인 스티븐 와이즈 변호사가 해피를 대신해 신청한 것이었다. 지적이며 자아가 뚜렷한 해피는 법의 보호를 받아 감금 상태에서 풀려날 자격이 충분하다고 그는 주장했다. 구속적부심 제도는 영미법의 오래된 원칙으로 야만적인 구금에 대항할 수 있는 법적 보호장치이다.

지금까지 미국과 유럽의 법원은 동물에 대한 구속적부심을 계속 각하해왔다. 그러나 2015년 역시 스티븐 와이즈 변호사가 신청한 세 마리 침팬지에 대한 구속적부심 요청에 판사 한 명이 주목할 의견을 남겼다. 그는 주요 논점이 틀렸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법적 의무를 이행하고 자기 행동을 책임질 능력이 부족하다는 데 초점을 뒀지만, 그렇다면 어린아이나 혼수상태인 어른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얘기냐는 것이다. 그는 아무도 어린아이를 대신해 구속적부심을 신청하는 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지 않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해피도 법원에서 보수적 판단을 할 게 거의 틀림없지만, 견고한 벽에 균열이 생기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지금까지 활동가들은 주로 동물보호법에 의지해 동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2018년 12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유권자는 농장에서 사육하는 가축에게 최소한의 공간을 보장하는 안을 주민투표로 통과시켰다. 10년 동안 유럽연합, 인도, 콜롬비아, 타이완, 브라질의 7개 주, 캘리포니아가 화장품 업계의 동물실험을 금지했다. 미국 농무부는 시민단체가 멸종위기종보호협약을 위반했다고 제기한 소송에서 패소한 아이오와 주 사설 동물원의 면허를 취소했다.

동물 애호 활동가들은 전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승리를 거뒀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인지 동물학은 인간만 배타적으로 지녔다고 생각한 자아의식, 감성, 지성 등을 다른 종도 가졌다는 걸 확인했다. 이런 업적을 토대로 인간의 의식에도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150년 전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예견했듯 인간의 심리와 동물의 행동을 아우르는 ‘종을 초월한 과학’이라는 신세계가 열렸다. 하지만 법만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동물 보호 활동가들은 특히 대형 유인원이나 코끼리처럼 자아·지각·감성이 있는 동물은 동물보호법이 아니라 보통법에 의해 보호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판사가 과학적 발견, 인간의 경험, 윤리적 기준의 변화에 발맞춰 판례를 남길 의무가 있다고 본다. 스티븐 와이즈 변호사와 활동가들은 7년 넘게 코끼리, 침팬지 등이 인간과 거의 다름없이 지적이고 정서적인 존재라는 전 세계 권위 있는 과학자들의 증언을 채록해 165페이지에 달하는 진술서를 법원에 냈다.

아직까지 대부분의 법률체제는 법적 대상을 사람이냐 재산이냐로 나눈다. 그런데 법적 사람이 꼭 인간일 필요는 없다. 기업은 오래전부터 법정에서 스스로의 이익을 추구하는 법인이었다. 활동가들은 동물에게도 이와 같은 법적 인격을 부여해야 한다고 믿는다. 인간이 아닌 사물에 법적 인격을 부여한 전례가 있다. 2017년 뉴질랜드는 마오리 원주민이 강을 보호하기 쉽도록 황가누이 강에 법인격을 부여했다. 같은 해 인도의 우타라칸드 주 고등법원은 관내의 갠지스 강과 야무나 강에 법인격을 부여했으나 대법원이 기각하고 말았다.

활동가들 환호한 2016년 아르헨티나 법원의 판결


동물에 법적 인격을 부여할 것인가와 관련해 몇 가지 주목할 판례가 나왔다. 2014년 아르헨티나 법원은 부에노스아이레스 동물원에 갇힌 오랑우탄 산드라에 대해 ‘인간이 아닌 법인’이라고 판결했다. 단, 인간에 의해 잔혹행위를 당했을 때로 한정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결국 이는 보통법이 아니라 동물보호법에 따른 판결이었다고 볼 수 있다. 활동가들을 가장 환호하게 만든 판결은 2016년 아르헨티나에서 나왔다. 이 나라의 멘도사 주 법원은 시 동물원에서 야만적으로 학대당해온 침팬지 세실리아를 ‘인간이 아닌 법인’이라고 판결했다. 판사는 세실리아를 브라질의 보호시설에서 편히 살게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런 판결로는 세계 최초의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남미를 제외하고 동물에 법인격을 부여한 판례는 없었다. 판사들이 열거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어떤 동물이 자격이 있는지, 그들이 어떤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확실하지 않다. 대형 유인원 보호는 의료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다. 식용으로 농장에서 기르는 동물로까지 대상이 확대된다면 일대 경제적인 혼란을 피할 수 없다. 만약 자기 인지가 기준이 된다면 나중에 인공지능에 대해서도 똑같은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가 등도 그렇다. 이를 근거로 활동가들이 ‘미끄러운 비탈’ 게임을 벌이고 있다고 비난하는 이들도 많다. 나중에 수습도 못할 거면서 무조건 원칙을 앞세워 미끄러져 내려가려고만 한다는 뜻에서다.

하지만 법률 전문가들은 변화의 조짐을 본다. 하버드 법대에서 동물법을 가르치는 크리스틴 스틸트 교수에 따르면 이는 조각보 이불 만들기나 같다. 활동가들 처지에서 보자면 불만이 크겠지만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법적 선이 인도·아르헨티나·콜롬비아 등에서 나온 판례에 의해 훨씬 흐릿해진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 구분은 앞으로 더욱 모호해질 것이다.

라틴어로 ‘Habeas Corpus’라 불리는 구속적부심 제도의 정식 명칭은 ‘구금인의 신병을 대령하도록 명하는 명령장’이다. 대헌장의 후광을 입어 왕이나 귀족이 함부로 평민의 인신을 구속할 수 없도록 만들기 위해 15세기 말부터 영국 법관들이 본격적으로 도입한 제도이다. 이 제도는 미국을 거쳐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 제도야말로 전 세계의 핍박받는 이들에게 복음과도 같다. 독재자가 법률에 근거하지 않고 반체제 인사를 구금하는 것을 가로막아온 가장 효과적인 장치였다. 이 제도가 없었다면 차별에 항거하던 여성과 노예 역시 더욱 많은 피와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활동가와 동물 보호 단체는 이제 이 제도가 감금되어 학대당하는 동물에게도 적용되기를 바란다. 그들은 과거에 여성이나 노예 역시 법적으로 인간이 아니라 재산이었다는 점을 상기하라고 말한다. 그들은 적어도 자아와 지각이 있는 대형 원숭이나, 코끼리, 그리고 고래류는 가구보다는 인간 어린아이에 더 접근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책 <코끼리는 아프다>를 쓴 생태학자이자 심리학자인 브래드 쇼에 따르면 우리는 이제 우리가 특별한 존재라는 주장을 접고 이 행성에서 목소리를 좀 낮춰야만 한다. 그게 인간을 더욱 깊이 이해하는 길이기도 하다.

참고한 활자:<코끼리는 아프다>(현암사), <법의 지배>(이음), <이코노미스트>, <워싱턴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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