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을 자주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최근에 강태환·박재천·미연이 함께한 재즈 공연을 봤는데, 말 그대로 충격이었다. 60분 동안 세트 리스트는 딱 한 곡. 언어마저 가볍게 초월해버리는 세 장인의 연주에 완전하게 집중한 터였을까. 한 시간 내내 단 한 번도 시간을 확인하지 않았다. 미국 출신 재즈 색소포니스트 도니 매캐슬린의 내한 역시 마찬가지다. 무조건 가서 ‘타임 리프(시간 여행)’를 경험하려고 달력에 체크까지 끝낸 상태였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이런저런 마감이 겹치면서 도저히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혹시 도니 매캐슬린이라는 이름이 친숙하지 않다면 다음처럼 설명하려 한다. 도니 매캐슬린과 그가 이끄는 밴드는 데이비드 보위에게 선택을 받았던 최후의 연주자들이다. 데이비드 보위의 마지막 음반 〈블랙 스타(Black Star)〉(2016)에 그들의 탁월한 플레이가 다 담겨 있다.
어떤가. 이제 군침이 좀 돌기 시작하나. 이제 도니 매캐슬린 밴드의 진수를 맛볼 차례다. 내가 추천하는 ‘원 픽’은 가장 최근작인 〈블로(Blow.)〉 (2018)다. 먼저 사과의 말을 전해야 할 것 같다. 이 앨범, 국내 음원 사이트에서는 못 듣는다. 서비스되질 않고 있다. 그래도 괜찮다. 우리에게는 전지전능하신 ‘갓튜브’가 있지 않은가. 유튜브에 ‘Donny Mccaslin blow’라고 치면 그들의 음악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음질도 괜찮은 편이니 걱정은 접어두시라.
추천하고 싶은 곡이 무진장이다. 아니, 그냥 전곡이라 말하고 싶다. 과장이 아니다. 그들의 음악은 재즈에 기반하고 있지만 정말이지 현대적이다. 록과 일렉트로, 재즈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도 팝적인 감각을 잃지 않는다. 예를 들어 ‘클럽 키드(Club Kidd)’는 록인 동시에 재즈이고, 재즈인 동시에 팝 싱글이다. 록 특유의 8비트 리듬, 이펙트를 잔뜩 먹인 보컬, 여기에 섬세한 동시에 강렬한 재즈 터치가 더해진 ‘뉴 카인드니스(New Kindness)’도 다채롭기라면 뒤지지 않는다.
‘Exactlyfourminutesofimprovisedmusic’은 앞서 언급한 요소들에 펑크(funk)와 일렉트로의 향신료를 강하게 뿌린 결과물이라고 보면 된다. 이 세 곡을 듣다 보면 여러분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이런 재즈는 없었다. 이것은 재즈인가 록인가 일렉트로닉인가. 그도 아니면….” 어디까지나 재즈 베이스이지만 도니 매캐슬린과 그의 동료들은 장르를 종횡무진하면서 ‘듣는다’는 행위의 맛과 재미를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하나만 추천하라면 ‘브레이크 더 본드’
기실 나는 아주 조급한 상태다. 이 음반이 얼마나 나를 뒤흔들어놨는지 더 정확한 언어로 설명하고 싶은데 능력 부족을 다시금 절감하고 있다. 다만 이거 하나만은 믿어도 좋다. 여러분은 지금 배순탁이 아닌 데이비드 보위가 추천한 거나 매한가지인 음악을 소개받고 있다는 거다. 이렇게 쓰고 나니, 여기저기서 신용등급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결론이다. 하나만 골라달라고 하면 ‘브레이크 더 본드(Break The Bond)’를 강력 추천하고 싶다. 서서히 고조되는 도입부를 지나 등장하는 첫 번째 절정에서 일단 나는 넋이 나가버렸다. 이후 전자음이 약 1분간 혼란스럽게 펼쳐지는데, 진짜 중요한 건 이 다음부터다. 대략 5분30초부터 위풍당당하면서도 감동적인 사운드 스케이프가 그대를 압도할 것이다. 살아서 음악 듣는 자의 기쁨을 오랜만에 선물해준 도니 매캐슬린 밴드에게 감사를. 이렇게, 평생 아껴 들어야 할 음악 목록에 또 한 곡이 추가되었다.
-
눈발 휘날리면 ‘누드’의 볼륨 높여라 [음란서생]
눈발 휘날리면 ‘누드’의 볼륨 높여라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12월이 되었고, 대설이 지났다.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된 셈이다. 내 오랜 습관 중 하나, 겨울이 오고 눈이 쌓이면 집을 나설 때 반드시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그러고는 다음 3곡...
-
내가 꼽은 2018년 최고 앨범 두 장 [음란서생]
내가 꼽은 2018년 최고 앨범 두 장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2019년이 밝았다. 2018년에 좋은 음악을 많이 소개하려 했지만 미진한 감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준비했다. 내가 꼽은 2018년 최고 앨범 2장이다. 단, 조건이 있다. 실시...
-
Queen망진창? 그래서 어쩌라고 [음란서생]
Queen망진창? 그래서 어쩌라고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지난한 1개월 반이었다. 이유는 별것 없다. 수많은 사람의 ‘퀸(Queen) 망진창’이 나에겐 조금 지겨웠을 뿐이다. 〈보헤미안 랩소디〉와 관련해 수많은 사후 분석이 등장했다. 하...
-
어느 겨울밤 ‘신청곡’을 듣다 [음란서생]
어느 겨울밤 ‘신청곡’을 듣다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더 파이팅〉이라는 작품이 있다. 음악이 담긴 앨범은 아니다. 현재까지 무려 120권이 발간된, 권투를 다룬 만화책이다. 이 작품은 내게 아주 복잡 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
-
이 책을 읽고 음악이 듣고 싶어졌다 [음란서생]
이 책을 읽고 음악이 듣고 싶어졌다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20대 시절 ‘책’ 하면 왠지 ‘무겁다’는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다. 뭔가 인생에 대한 철학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고, 철학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럴듯한 아포리즘 몇 개 정도는 있어야 ...
-
‘올해의 앨범’ 들고 나타난 로큰롤라디오 [음란서생]
‘올해의 앨범’ 들고 나타난 로큰롤라디오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언제나 다음 두 가지 태도 사이에서 갈등한다. 이를테면 그것은 ‘냉정과 열정 사이’. 정말 마음에 쏙 드는 음악 앞에서 열광과 찬사를 아낌없이 던져야 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
-
스트리밍 사이트 최고 가수, 빌리 아일리시 [음란서생]
스트리밍 사이트 최고 가수, 빌리 아일리시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대중음악과 관련해 챙겨야 하는 음악 전문지가 몇 개 있다. 영국의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NME)〉가 그중 하나다. NME의 글쓰기 지향은 통상 ‘곤조 저널리즘(Gonzo Jou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