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 미투’ 이끌어낸 용화여고의 그 이후는?
  • 김영화 기자
  • 호수 597
  • 승인 2019.02.27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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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용화여고의 ‘창문 미투’를 계기로 스쿨 미투 운동이 전국에 확산됐다. 학교 측은 가해 교사 18명에 대한 징계를 내렸지만, 3명을 제외한 나머지 교사는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포스트잇은 210여 일 동안 붙어 있었다. 지난해 4월 교실 창문에다 포스트잇으로 ‘#With You’ ‘We Can Do Anything’ ‘#Me Too’로 응답한 그 학교였다. 세 번의 계절이 지날 동안 창문에 붙어 있던 포스트잇은 모두 떼어졌다. 지난해 11월15일이었던 수능을 일주일 앞두고서였다. 수능 고사장으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학교는 아직 제대로 변한 게 없는데….” 김소형씨(가명·19)는 친구들과 창문으로 우르르 몰려가 포스트잇을 붙이던 그날을 떠올렸다. 2018년 4월6일은 아침부터 학교가 유난히 소란스러웠다. 바로 전날인 4월5일 졸업생들의 ‘스쿨 미투’가 공론화되었기 때문이다. 앞서 졸업생들로 구성된 용화여고 성폭력뿌리뽑기위원회는 재학생·졸업생·교직원을 대상으로 ‘용화여고 내 성폭력 실태조사’라는 자체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 96명 중 41명이 교사들로부터 상습 성추행 및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김소형씨에게 새삼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그 역시 ‘졸업할 때까지만 참자’는 생각으로 버텨왔다. 일부 교사들의 성희롱과 인격모독 언행은 일상이었다고 말했다. “학교 다닐 때는 어려우니까 졸업하고 나서 교육청에 신고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어요.”


ⓒ용화여고 성폭력뿌리뽑기위원회 제공지난해 4월 용화여고 창문에 스쿨 미투를 알리는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실제로 용화여고 성폭력뿌리뽑기위원회의 설문조사 결과는 문제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원치 않는 신체 접촉 및 폭력적 언행을 겪거나 목격했다는 증언이 350여 건에 이르렀다. 응답 중에는 1996년 졸업생의 성추행 피해 진술도 있었다. 제보자는 “그때는 막연한 수치심이었으나,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교사가 그렇게 지낸다는 사실에 분노한다”라고 밝혔다. 포스트잇 수백 장이 창문에 붙여진 건 그날 오후였다.

서울시교육청은 졸업생들의 신고를 받고 지난해 4월6일 재학생 1103명을 대상으로 하는 별도의 ‘성폭력 피해 전수조사’를 벌였다.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설문지에는 학번과 이름, 전화번호 기입란이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이걸 써도 될까 주저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실명을 걸고 신고해야 하는 부담감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사립학교인 용화여고가 가해 교사에 대한 조치를 제대로 취할지 의구심이 더 컸다. 사립학교는 교원 징계권을 학교법인이 직접 가진다.

김소형씨는 문득 2003년 사건이 떠올랐다고 했다. 당시 교감이던 ㅂ씨의 성추행을 목격한 한 재학생이 교육청에 신고했다. 피해 당사자가 성추행 사실을 인정했으나 학교 측이 학부모를 만난 뒤 진술을 번복했다. 오히려 학교는 교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제보 학생에게 퇴학 처분을 내렸다. 재학생과 학부모의 반발로 퇴학당한 학생은 학교로 돌아왔지만, ㅂ씨에 대한 학교 측의 처벌이나 징계는 없었다. 재단 이사장의 아들이었던 ㅂ씨는 그 후 2017년까지 교장을 맡다 지금은 학교의 상근 이사다.


ⓒ연합뉴스1월30일 ‘노원 스쿨 미투를 지지하는 시민모임’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때처럼 학교가 덮으려고 하지 않을까. 그래서 말 못한 친구들이 있지는 않을까. 김소형씨를 비롯한 몇몇 3학년 학생들이 포스트잇을 들고 4층 교실 창문으로 향했다. 멀리서도 볼 수 있게 ‘#With You’라는 글자를 만들어냈다. 그러자 포스트잇 세례가 아래층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3층에는 ‘We Can Do Anything’, 2층에는 ‘#Me Too’가 붙었다. 몇 분 뒤 건너편 1·2학년 건물에도 ‘혼자가 아니야’ ‘지켜줄게’라는 글자가 나타났다.

‘창문 미투’라고 불리는 용화여고 스쿨 미투가 세간에 알려지게 된 계기다. 이어 서울 ㅇ중, ㄷ여고, ㅈ여고에도 스쿨 미투 움직임이 잇따라 일었다. 재학생들의 포스트잇 응답으로 스쿨 미투 운동이 전국에 확산됐다.

미투 이후 조치는 성평등 교육 두 차례


서울시교육청 특별감사 등 학교 밖에서 압박이 가해지자 용화여고는 지난해 8월 학교법인 징계위원회를 열어 가해 교사 18명에 대한 징계를 내렸다. 파면 1명, 해임 1명, 계약해지 1명, 정직 3명, 견책 5명, 경고 9명(중복 2명)이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시사IN>과 전화통화에서 “사립학교의 징계권은 재단에 있기 때문에 보통 교육청의 징계 권고대로 처분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용화여고의 경우 국민적 공분이 있었기에 이례적으로 교육청 징계 요구안을 그대로 반영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각각 파면·해임·계약해지 처분을 받은 교사 3명이 학교를 떠났다. 일각에서는 스쿨 미투 성공 사례로 용화여고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징계 수준이 낮았던 나머지 교사들은 다시 학교로 돌아온 상태다. 성희롱과 차별 발언 제보 수백 건에 대해서 해당 교사들의 제대로 된 사과나 반성은 없었다. 재학생 증언에 따르면, 교육청 조사를 받고 돌아온 한 교사가 자신을 지목한 사람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이 같은 2차 피해를 겪고 있었지만, 학교 내부에서 진행된 조치는 성평등 교육 두 차례뿐이었다. 그마저도 시민단체의 요구로 진행된 것이었다.

이후 미투를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는 상태가 더 큰 문제라고 재학생들은 지적한다. 한 학교 관계자는 “교사들도 징계 이후 미투에 대해 발언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조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초 가해 교사 ㅈ씨의 강제추행 혐의에 대한 불기소처분이 내려졌다. 검찰의 불기소 결정서에는 ‘피의자와 피해자 간 증언이 일부 상반되거나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 등 강제추행 혐의를 충분히 입증하기 어렵다’라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해당 교사는 졸업생 설문조사 결과 성추행 피해 증언 38건과 교육청 전수조사 결과 186명의 성폭력 피해 진술(성적 접촉·행동·발언)이 나온 바 있다.

서울 노원경찰서 여성청소년과의 한 관계자는 <시사IN>과 전화통화에서 “교육청 전수조사 결과를 받아 수사를 진행했지만, 재학생 중에는 피해자 진술을 하겠다는 제보자가 없었다. 졸업생들도 재진술을 거부해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재학생들은 실명 전수조사만으로 이미 상당히 신변이 드러나 보복당할까 하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으며, 졸업생들 역시 수차례 피해 사실을 복기하느라 고통을 호소한 바가 있다고 반박한다. 공론화를 주도했던 졸업생들은 스쿨 미투 이후 2차 피해로 지쳐 현재는 입을 다문 상태다.

지난해 창문 미투를 보고 꾸려진 ‘노원 스쿨 미투를 지지하는 시민모임’은 1월30일 서울북부지검 앞에서 ㅈ교사 불기소 결정 등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용화여고는 징계의 규모로 볼 때 얼마나 심각한 성폭력이 자행되었는지 여실히 알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검찰 등은 학생 수백명이 호소한 피해를 묵살했다. 부당한 처분으로 2차 피해를 당하고 있는 학생들의 보호 대책을 즉각 수립할 것을 요구한다.” 용화여고의 관계자는 <시사IN>과 전화통화에서 “작년에 전수조사, 성평등 교육, 징계 등 학교 측에서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취했고, 문제가 됐던 교사들은 현재 학교에 없다. 앞으로 성평등 교육을 강화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2월14일은 용화여고 졸업식이 있었다. 김소형씨도 이번에 졸업을 했다. 그토록 바랐던 순간이지만 개운치 않은 느낌이었다. “학교는 미투로 불명예스러운 일을 당한 것처럼 행동하고 있어요. 이제는 아예 없었던 일처럼 언급도 안 하고 있고요.” 8개월 동안 붙어 있던 포스트잇이 떨어진 창가는 어쩐지 휑했다. “학교가 지금이라도 학생 목소리를 제대로 들었으면 좋겠어요.” 김소형씨는 졸업하지만, 미투는 졸업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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