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유 뺨친조희팔의 금융 다단계
  • 정희상 기자
  • 호수 65
  • 승인 2008.12.09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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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 이래 최대 사기라는 제이유 사건을 능가하는 초대형 금융 피라미드 사기 사건이 터졌다. 대구를 거점으로 수도권과 충청, 영남 지방 서민 5만여 명을 울린 4조원대 ‘조희팔 사기 사건’의 전모와 정부의 방치
12월1일 오후 대구시 수성구 만천동에 있는 한 건물 3층의 100평 남짓한 유사금융업체 사무실에는 중년 남녀 100여 명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모여 있었다. 한쪽에서는 이따금씩 고성이 오가며 멱살잡이도 벌어졌다. 2년 전 1조8000억원대 다단계 사기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제이유 사건을 능가하는 대규모 금융 피라미드 사기 사건이 터진 본산이다. 이른바 ‘조희팔 사기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 피해자는 전국에 걸쳐 5만여 명, 추정 피해액은 3조5000억원을 훌쩍 넘는다.

   
금융 피라미드 총책 조희팔씨.
하지만 제이유 사건에 비해 이 사건은 아직까지 그다지 큰 사회적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사무실에 모인 피해자들은 기자가 들어서자 정부의 소극적 태도와 대다수 중앙 언론의 침묵에 거침없는 불만을 쏟아냈다.

“사건이 터진 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중앙정부에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이 잠적한 사기 주범들에게 재산 빼돌릴 시간만 줬다. 수십만 서민 가족이 금융 사기단에 당해 곡소리를 내는데 이명박 대통령은 그 원성이 들리지도 않는다는 말인가.”

 “피해자가 몇 백명 정도인 서울 강남 귀족계에는 날마다 달라붙으면서 서민 수만명이 죽어나가는 이번 사건을 외면하는 언론이 더 원망스럽다.”

4조원대 금융 다단계 사기 사건인 ‘조희팔 사건’은 2004년 11월 대구에 본사를 둔 BMC라는 의료기구 임대 사업체에서 비롯됐다. 이 업체의 회장인 조희팔씨(51)가 투자자로부터 돈을 끌어모아 골반교정기, 안마기, 가요반주기 등을 산 뒤 이를 임대해 수익금을 돌려준다는 이른바 렌탈 마케팅을 시작한 것이다.

조희팔씨는 대구를 거점으로 경북, 부산, 경남은 물론이고 멀리 충청도와 경기도, 서울, 인천 등에 이르기까지 금융 사기 그물망을 깔았다. 전국적으로 15개 법인과 50여 개 센터를 설치해 삽시간에 투자자 5만명을 끌어모았다. 다단계 사기의 전형적 수법이 그렇듯 조씨도 업체 이름을 수시로 바꿔가며 당국의 감시망을 피했다. 당초 BMC라는 회사 이름을 얼마 뒤 엘틴으로 빠꿨다가 또다시 벤스, 티투, 챌린, 씨엔, 리브, 리젠, 리버스, 리드앤 등으로 바꿔가며 마치 전혀 연관 없는 회사인 것처럼 운영했다.

   
ⓒ시사IN 백승기
무성의한 수사기관을 대신해 주범 조희팔 일당 지명수배 전단을 붙이고 다니는 사기 피해자(위).
“언론은 강남 귀족만 보이느냐”

조희팔씨 일당의 피라미드식 금융 사기 수법은 교묘했다. 과거 대규모 다단계 사기 사건이 황당무계한 고수익을 약속하며 투자자의 일확천금 심리를 노렸다면 이들은 저금리 시대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이들은 불법 다단계 사업이라는 점을 철저히 감추는 대신 ‘저금리 시대 재테크 사업’이라고 포장해 일반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은행 이자의 7~8배 수준인 연리 35%를 확정금리로 주겠다는 미끼를 내건 것이다. 최소 투자 단위는 440만원으로 의료기 한 대 값이다. 투자자가 이 돈을 내고 의료기를 사면 조희팔 일당의 회사에서 이를 찜질방 등에 임대해 매일 3만5000원씩 이자를 지급해줌으로써 8개월 만에 원리금 581만원을 챙길 수 있다고 선전했다.

실제로 매일 소액씩 수익금이 통장에 들어오는 것을 본 투자자들은 사기라고 의심하지 않았다. 과거 대다수 다단계 사기 업체처럼 직접 상품 구매를 강요하거나 사재기를 조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돈만 끌어들인 뒤 이자를 쳐주는 방식이어서 안심했다. 이들은 조희팔씨의 ‘렌탈 마케팅’을 철석같이 믿고 원리금을 재투자했다. 투자자 대부분은 가족·친지·친구들에까지 조희팔식 마케팅을 ‘괜찮은 재테크’로 알리는 전도사가 됐다. 삽시간에 전국 조직망을 갖춘 금융 피라미드 구조가 완성된 배경이다.

조희팔의 신출귀몰 사기 수법

조희팔 일당이 갖춘 전국 사업장의 피라미드 구조는 대구 본사 외에 전국 각 대도시에 50여개 지사 내지 센터로 이뤄져 있다. 대구·경북은 ‘씨엔’, 서울·경기·인천은 ‘리브’, 부산·경남은 ‘챌린’이라는 이름이다. 마치 서로 다른 업체인 것처럼 법인 등록을 했다. 이런 회사에 사업자 5000여 명을 끌어들인 뒤 이들로 하여금 주변 친인척과 지인에게 ‘재테크 투자’를 유인해오도록 했다. 사업자로 들어가 일정한 투자유치 실적을 올리면 부장→국장→본부장→단장→사업전무 따위 직급을 주고 다단계식으로 관리했다. 이들 사업자는 직급 유지를 위해 사활을 걸고 일반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조희팔 일당 지명수배 전단.
조희팔씨 일당이 운영하는 회사에 들어가 일정한 투자자 유치 실적을 올려 부장이 되면 두 개 라인을 둔 관리자가 되는데, 각각의 라인이 대당 440만원짜리 의료기를 12대씩 총 24대(1억여 원) 유치해야 월급과 수당을 줬다. 유인된 투자자에게는 회사가 더 많은 수당을 보장한다는 명목으로 직급에 도전하도록 유도했다. 일단 단순 투자자에서 시작하지만 직급을 가지게 된 시점부터는 그 직급을 유지하기 위해 매월 렌탈 의료기 24대를 유치해야 한다. 국장으로 올라가려면 무려 140대씩 두 개 라인, 총 280대의 의료기를 투자자가 유치해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피라미드식 투자 유치를 독려해 3조5000억원대에 5만여 피해자를 낳게 된 것이다.

   
ⓒ시사IN 백승기
노인과 부녀자 중심으로 3만여 명이 피해를 입은 경인지역 비상대책위 김영순 부위원장은 정부의 무관심을 성토했다.
하지만 이들의 금융 피라미드 수법은 언젠가는 반드시 터질 시한폭탄이었다. 아무리 수완이 뛰어난 사업가라도 의료기를 찜질방 등에 임대해 투자자에게 연리 35%를 지속적으로 확정 보장해줄 수 있는 사업은 없다. 실제 조희팔씨 일당이 투자자로부터 의료기 값을 받아 임대해 수익을 낸 적은 없었다. 시간이 흐르자 이들은 당초 의료기 렌탈 사업이라는 선전을 슬그머니 바꿨다. 아파트 리모델링, 재개발 사업 등 부동산에 투자해 확정금리를 계속 보장하겠다고 기염을 토한 것이다. 이들은 실제 부산·대구 주변에 일부 토지나 건물을 사서 투자자를 현장 견학시키는 방식으로 믿게끔 했다.

그러면 이런 허황된 금융 피라미드 사기극이 5년간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고 계속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무엇보다 이 사건의 주범들이 투자자를 끌어들이면서 수익배당금 명목으로 매일 소액의 이자를 지속적으로 지급했다는 데 있다. 이를 본 투자자들은 ‘재테크 투자처’로 주변 지인을 끌어들이는 것은 물론 대출까지 받아가면서 앞다퉈 재투자 대열에 가담했다. 그러나 이는 실제 수익금이 아니라 구름처럼 몰려든 후순위 피해자의 투자금을 선순위 투자자에게 찔끔찔끔 돌리는 일종의 ‘폭탄 돌리기’였다.

“정부가 대규모 피해를 방조했다”

마침내 폭탄 돌리기의 끝은 지난 9월 서울 경인 지방과 충청도를 포괄하는 경인지사(리브)에서부터 터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는 조희팔 일당이 지역별로 회사 이름을 바꿔가며 운영했기 때문에 불법행위를 단속해야 할 검찰과 경찰에서도 이들이 전국 단위의 금융 피라미드 조직을 교묘히 운영한다는 사실을 포착하지 못했다. 그러다 충남 서산경찰서에 경인지부 일부 피해자들의 진정서가 접수되었다. 서산에서 수사가 시작되자 조희팔 회장, 최규대 부회장, 김근호 고문, 강태용 기획담당 이사 등 사기 범죄 주요 책임자들은 대구 본사에 있는 전국 전산망을 파기했다. 이어 투자자로부터 끌어모은 금융 계좌를 인출한 뒤 모조리 도피했다.

몰락을 예감했는지 도피 직전 조희팔 일당은 막바지에 피해자들을 집중 양산하는 ‘화려한 불꽃놀이’까지 벌였다. 10월 중순부터 보름 동안 사기 주범들은 부장급 이상 중간 직급자에게 프로모션을 걸었다. 다른 지역에서 경찰 수사가 시작되었다는 점을 까맣게 모른 사업자들은 전 재산을 걸고 마지막 투자 대열에 합류했다. 그러나 조희팔 일당은 이 자금을 챙겨 잠적해버리고 말았다.

   
 
이런 이유로 피해자들은 수사 당국의 엉성한 일처리가 피해를 키웠다며 원망하고 있다. 서산경찰서에서 수사를 착수할 때 곧바로 주요 사기 주범을 공개 수배했더라면 조희팔 일당의 마지막 불꽃놀이에 눈 뜨고 당하는 일은 막을 수 있었다는 원성이다. 경찰은 뒤늦게 조희팔 일당 9명의 사진을 담은 현상 수배 전단을 배포했다. 그러나 사건이 그다지 알져지지 않은 상황이라 피해자들이 수배 전단을 복사해 전국 곳곳의 항만을 돌며 직접 붙이고 다니는 실정이다.

11월 중순에 들어서야 서산경찰서에 이어 대구시경도 ‘조희팔 사기’ 사건 조사에 들어갔다. 경인 지역에서는 부천 중부경찰서도 피해자 수백명의 고소로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에서 조희팔 일당이 운영한 전국 업체의 전산망을 압수 수색한 결과 가공할 사기 피해 규모가 드러났다. 서울·경인 지역은 피해자 3만여 명에 피해액 2조원, 대구·경북 지역은 피해자 1만여 명에 피해액 1조9000억원, 부산·경남 지역은 피해자 1만여 명에 피해액 1조원대로 잠정 집계됐다. 총 5조원대에 이르는 액수이지만 경찰은 순수 원금 피해로만 치면 3조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본다. 하지만 피해 규모가 전국에 분포해 있고 피해 액수가 워낙 커서 정확한 피해액 집계가 나오기까지는 적잖은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이렇게 곳곳에서 조희팔 일당의 금융 피라미드 사기 사건이 터지자 전국 각지의 투자 피해자들의 상황은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열흘째 집에도 못 들어가고 승합차에서 지낸다는 대구 지역 투자자 이 아무개씨는 “가족·친지에게 내가 보증해 투자 유치한 금액이 10억원대에 달한다. 사기 사건이 터지니 ‘돈 찾아오지 않으면 인연 끊을 줄 알라’는 문자 메시지까지 받고 무슨 낯으로 집에 가겠는가”라며 울먹였다. 12월 말 딸의 결혼식을 앞두고 두 달만이라도 이자를 받겠다고 딸이 맡겨둔 결혼자금 5000만원을 털어넣었다는 한 어머니는 “조희팔 이×,  내 손으로 잡아내겠다”라고 소리치다 실신했다.

“대검과 금감원이 조사하라”

서울·경인 지역 투자자는 40~50대 주부층이 70%를 차지한다. 반면 본사가 있는 대구·경북 지역은 수많은 20~30대 청년층이 사업자로 들어가 가족과 친인척 투자를 끌어모으는 구실을 했다. 지난해 계명대를 졸업한 사업자 김 아무개씨(26)는 “취업난 속에 어렵게 직장 잡았다고 친인척들을 설득해 4억원을 끌어들였는데 이 지경이 돼 휴대전화를 끄고 지낸다”라며 괴로워했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들은 전국 단위의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포털 사이트 다음 카페에도 피해자모임방(http://cafe.daum.net/antilib.bmc.t2)을 개설해 피해자 4000여 명이 피해 구제와 정부 대응을 촉구하는 활동에 들어갔다. 피해자들은 새 정부 들어 사상 최대 다단계 사기 피해사건이 터졌는데도 중앙정부에서 팔짱을 끼고 있다며 연일 청와대·대검찰청 등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현재 충남 서산경찰서와 경기 부천중부경찰서, 대구지방청 등에서 산발적으로 수사하고 있는 이 사건을 검·경 지휘부가 나서 종합 수사본부를 설치해 신속하고 종합적인 대처를 해달라는 주문이다. 사건을 지휘하는 대구지검과 서산지청·부천지청도 담당 검사가 각각 1명뿐이라 정부를 향한 피해자의 원성은 하늘을 찌른다.  전국 피해자 비상대책위 관계자는 이렇게 절규했다.

“가족까지 치면 전국적으로 수십만명이 사기꾼에게 절단났다. 대검찰청이나 금융감독원은 뭐하는 데란 말인가. 국가적인 특수 사건으로 취급해 중앙에서 적극 조사해도 모자랄 텐데 힘없는 서민이라고 지방 경찰에만 맡겨둔 채 나 몰라라 하는 것인가.”

조희팔씨 일당의 금융 피라미드 사기는 중앙 차원에서도 모르지 않았다. 영남 지역에서 ‘챌린’ ‘티투’라는 법인명으로 저지르던 이들의 불법 유사수신행위가 지난 4월 금융감독원에 포착됐다고 한다. 금감원 측은 “당시 대구경찰청과 부산·인천 경찰에 ‘다단계 업체의 범죄 혐의가 있다’고 통보한 바 있다”라고 밝혔다. 이는 정부가 초기에 철저히 대응했더라면 조희팔 사기 사건 피해 확산과 사기 주범의 투자금 은닉 및 도피를 막을 수도 있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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