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모르고 살 수도 있었다. 장애인은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존재였다. 노순호씨(28)는 2014년 동아리 친구들과 창업을 준비하다 장애인 중에서도 발달장애인 고용률이 특히 낮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근속연수 차이도 컸다. ‘왜 발달장애인은 오래 일하지 못할까’라는 질문을 사회적 기업을 통해 풀어보고 싶었다.

도시농업이 유행할 때였다.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 농부를 배출하자는 계획을 세웠다. ‘동구밭’이라는 회사명에는 마을 어귀 공터마다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의미를 담았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텃밭을 얻어 상추 같은 손쉬운 작물부터 시작했다. 정작 발달장애인은 좀체 농사에 관심이 없었다. 심는 것보다 밟고 다니는 게 더 많았다. “상심한 와중에도 신기했어요. 한 번도 안 빠지고 꼬박꼬박 오는 거예요. 나중에 한 어머니 이야기를 듣고 ‘아차’ 했어요. 그 사람들에게는 평생 처음 사귄 친구가 저였던 거예요.” 그제야 발달장애인을 ‘사회문제’가 아닌 개인으로 만나게 됐다. 채소를 심은 자리에서 관계를 수확했다.


ⓒ시사IN 이명익

친구의 눈으로 본 세상은 부조리투성이였다. 제일 큰 문제는 일자리였다. 바리스타나 제과·제빵 따위 자격증만 하릴없이 쌓여갔다. “관련 정책이나 프로그램 대부분이 학령기 대상이에요. 어렵게 일자리를 구해도 오래 일하지 못해요. 문제는 고용률만 따진다는 거죠. 발달장애인 1명이 12개월 일하는 것(근속 개월수)보다 12명이 1개월 일하는 지표(고용률)를 훨씬 중요하게 여겨요.”

발달장애인 고용 및 근속 문제를 동구밭이 직접 해결하는 방식을 모색하면서 사업 방향을 크게 틀었다. 텃밭 작물도 활용 가능한 천연비누 시장이 눈에 띄었다. 2016년 설비를 갖추면서 목표를 세웠다. “발달장애인이 만드는 ‘착한’ 제품이어서가 아니라 제품 그 자체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정공법이 통했다. 지난해에는 10만 달러(약 1억1200만원) 규모의 수출을 이루었다. 이솝과 록시땅을 제치고 5성급 호텔 ‘어메니티 납품’도 따냈다. 동구밭 공장에서 매달 생산하는 비누 20만 개 중 80%는 납품용(OEM 또는 ODM)이지만, ‘액체보다 좋은(better than liquid)’을 모토로 자체 개발 품목도 늘리고 있다. 특히 설거지 세제를 고체 형태로 만든 설거지바가 입소문을 탔다. 샴푸바도 준비 중이다.

월 매출이 400만원 증가할 때마다 발달장애인 사원을 한 명씩 고용하겠다던 약속도 순조롭게 지켜나가고 있다. 2019년 현재 동구밭 사원 32명 중 20명이 발달장애인이다. “발달장애인 평균 근속 개월수가 짧게는 3개월 길어야 10개월이거든요? 저희는 입사 한 달 된 사원을 포함해도 평균 근속 개월수가 12개월이 넘어요. 지금까지 한 명도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제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지표예요.”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