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훈과 교가가 ‘헛소리’ 한다면
  • 장일호 기자
  • 호수 596
  • 승인 2019.02.21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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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졸업한 고등학교 교칙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했다. 양말은 흰색으로 발목을 꼭 두 번 접어야 한다거나, 머리핀은 검정색으로 3개 이상 꽂을 수 없다거나, 한여름에도 브래지어 위에 캐미솔을 챙겨 입어야 하는데 무조건 흰색으로 입어야 한다거나(심지어 검사했다), 걸으면서 음식물을 섭취해서는 안 된다거나…. 물론 나는 ‘성실하게’ 교칙을 어기는 학생 중 한 명이었다.

<훈의 시대>를 읽다 말고 졸업한 지 15년 만에 처음으로 모교 홈페이지를 찾았다. 3년간 지겹게 보고 불렀을 교훈과 교가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9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학교여서, 책 속에 나열된 학교들처럼 ‘헛소리’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순결함은 우리의 자랑(춘천여고)” “순결, 검소, 예절 바른 한국 여성(학성여고)” 같은 소리 하고 있으면 어쩌지…. 다행히 교훈은 무난한 ‘근면·성실’이었고 인왕산·무악재·원수봉·홍제원 등 각종 지명이 난무한 교가는 3절에 이르러 ‘언제나 배우는 길’을 강조하고 있었다. 기억이 나지 않을 만한 내용이었다.

저자는 <훈의 시대>를 통해 학교와 회사와 아파트라는 공간을 지배하는 ‘훈(訓)’을 폭로한다. 이를 통해 “물리적인 폭력보다도 오히려 규정된 언어의 영향력이 더욱 광범위하게 한 시대를 지배(25쪽)”하고 있음을 증명해나간다. 먼지 냄새 풀풀 나는 낡은 ‘훈’에 물음표를 들이댄다. 시대에 맞지 않는 훈은 폐기하고, 변화를 선행하는 훈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직의 개인은 몸과 말의 통제를 겪는다. 그러나 한 개인이 가진 사유하는 힘은 그 누구도 검열하고 통제할 수 없다. (중략) 우리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불편해하고 물음표를 가져야 한다(244쪽).” 저자의 전작인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은행나무, 2015)와 <대리사회>(와이즈베리, 2016)의 연장선에 <훈의 시대>를 놓아본다. ‘나’는 ‘사회’에서 ‘시대’로 확장된다. 이 세 권을 ‘김민섭 3부작’이라고 불러도 무리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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