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편집자, 그대는 ‘호모 이직쿠스’
  • 임지영 기자
  • 호수 596
  • 승인 2019.02.19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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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속연수 3년, 실무 정년 마흔.’ 여러 데이터가 가리키는 출판 편집자의 현실이다. 편집자들은 집담회 자리에서 여러 고충을 토로했다. 출판계에서 살아남는 방법도 이야기했다.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에코백에 교정지를 말아 넣는다. 월요일에 고스란히 들고 출근할 걸 알면서도 왜 주말에 교정지를 집에 싸가느냐고 뭐라는 건 어차피 죽을 줄 알면서 왜 사느냐는 질문과 같다.” 2년 전 ‘본격’ 출판 팟캐스트 <뫼비우스의 띠지>에 소개됐던 출판편집자(편집자) 들의 금요일 퇴근 풍경이다. 교정지는 조판한 인쇄물을 교정하기 위해 임시로 찍은 것인데, 책의 예비 단계다. 지난 1월 서울 홍대 앞 한 출판사 지하 홀, <뫼비우스의 띠지> 진행자 중 한 명이었던 박태근 알라딘 MD가 말했다. “교정지를 넣어가지고 들어갈 때 이미 실패한 거예요. 안 가져가야 합니다. 단호해질 필요가 있어요.”

70여 명이 빼곡히 모여 앉았다. 서울북인스티튜트 서울출판예비학교 편집자과정 책임교수인 이옥란 작가의 <편집자 되는 법> 출간을 기념해 마련된 편집자들의 집담회 자리였다. 200여 명이 신청할 정도로 성황이었다. 편집자는 자신이 만든 책으로 발언한다는 말이 있다. 여전히 유효한 정의지만, 지금 시대에 딱 들어맞지는 않는다. 이옥란 작가는 이번 책을 통해 편집자가 책으로 발언하기 무색해진 현실을 짚는다. ‘실력 있는 편집자가 공들여 만든 책이 연간 수만 부, 수십만 부쯤 팔리는 시절이라면 모든 영광을 저자에게 돌려도 좋’겠지만, ‘시절은 이미 초판 2000부를 찍어서 몇 해 동안 나누어 팔게 된 지 오래’다. ‘내용 좋은 원고에 그저 코를 박고 일해서는 안 되는 시절’이 온 것이다. 그는 편집자들의 담론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출판은 곧 광의의 편집이고 편집은 출판의 핵심이다. 편집자가 일해야 출판이 산다.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를 스스로 자신의 언어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수다 떠는 자리가 기획된 이유다. 이날 모인 편집자들의 직업적 고충을 요약하는 한 단어는 ‘호모 이직쿠스’였다. ‘이직하는 인간’의 출현이었다.


ⓒ이지영 그림


이옥란 작가가 출판계에 입문한 지는 26년. 20대 중반 편집자 생활을 시작해 여러 출판사에서 일했다. 현직 편집자들과 예비 편집자를 대상으로 교정 강의를 했고, 서울북인스티튜트에서 반년짜리 전일제 편집자 과정을 일곱 기수 동안 맡아 진행했다. 경력자를 추천해달라는 출판사의 연락을 자주 받는다. 원하는 편집자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걸 체감한다.

‘근속연수 3년, 실무 정년 마흔.’ 여러 데이터가 가리키는 편집자들의 현실이다. 2015년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 출판지부가 출판 노동자 5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를 보면, 근속기간은 평균 3.1년이었다. 3년 미만이 53.8%였고, 5년 이상 근속자는 20.2%에 그쳤다. 또한 20대가 35.3%, 30대가 58.3%. 40대 이상이 6.4%였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출판진흥원)의 2016년 하반기 조사에서도 전체 종사자 중 30대가 55.4%, 40대 이상 종사자는 18.2%였다. 30대에 약진하되, 마흔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다.

10년 내다보는 책 만들 수 있을까


지난해 9월 작은 출판사와 서점이 연 ‘작은출판 컨퍼런스’에서 한 출판사 대표는 회사에 근무하던 어느 날, 사내 메신저에 40대 이상이 거의 없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아 창업의 길에 나섰다고 말하기도 했다. 마흔 이후 편집자들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승진해 관리자의 위치로 가거나 임프린트 브랜드를 맡거나 독립해서 출판사를 차리거나. 전직의 길도 있다. 그 배경은 여러 가지다. 출판진흥원의 2016년 조사 자료에 따르면, 출판사 3018개(단행본 출판사와 학술·전문서 출판사) 가운데 5명 미만의 출판사가 74%였다. 낮은 임금, 높은 업무강도, 인간관계의 어려움이 이직과 전직의 주요 이유로 꼽히는 건 다른 직종에서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성인의 40%가 1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압도적인 현실’이 따라다닌다.

이날 함께 자리한 김진형 알마 편집주간은 40대다. 희박한 확률로 생존한 현역 편집자다. 그가 물었다. “저는 그럼 살아남은 걸까요?” 대학원을 다니다 그만둔 그는 30세 넘어 출판사에 입사했다. 어쩌다 보니 편집자가 되어 있었다. 당시 쟁쟁했던 선배들은 현재 프리랜서 외주 편집자로 활동 중이거나 출판사를 차렸다가 문을 닫았다. 책 대신 꽃을 만지는 사람도 있다. 이들 대부분 출판계를 떠난 나이가 마흔 살 언저리다. “쟁쟁한 분들인데 왜 그들이 아니고 내가 살아남았는가 생각해보면 운인 것 같다. 굉장한 행운이 따랐다. 그걸 전제로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시사IN 윤무영1월22일 <편집자 되는 법>을 출간한 이옥란 작가(왼쪽)와 편집자들의 집담회가 열렸다.

그는 16년여 동안 다섯 군데 출판사에 다녔다. 30대에 그를 사로잡은 생각은 ‘좋은 책’이었다. 그 속에 길이 있다고 생각했다. 좋지 못한 책, 더 나아가 나쁜 책이 있다고 여겼다. 나쁜 책과 싸우느라 30대를 보냈지만 좋은 책을 쓰고 만들던 이들의 위선을 목격했다. 갈수록 좋은 책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강해지고 경계가 허물어졌다. 인연이 닿은 출판사 몇 군데에서는 책을 마음껏 만들라고 했다. 기획의 전권을 얻어 브랜드를 론칭했다. 사교육 회사가 본사인 출판사에서 사교육을 비판하는 책을 내기도 했다. 팔리지 않을 것 같은 단행본을 기획해 사장을 설득하고 책을 냈지만 역시 안 팔리는 경험을 했다. 3년까지는 매출을 묻지 않겠다는 출판사에서 3년을 못 채우고 이직했다.

그 역시 40대 편집자로 살아남는 법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같이 일을 시작했던 편집자들은 대부분 사라졌고 규모 있는 출판사에 자리 잡은 건 소수다. 운이 좋거나, 어쩌면 타협하며 살았기 때문은 아닐까? 제법 팔린 책도 있었고 만들기 싫어 울면서 만든 책도 있었다. 그걸 해야 만들고 싶은 책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10년, 20년을 내다보는 책을 기획하라는 조언을 듣는다. 평균 근속연수가 3년인 업계에서 10년을 보고 기획하면 과연 결과를 알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는 편집자가 한편으론 자영업자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나의 기획으로 자본가의 투자를 이끌어내야 한다. 잘 팔릴 거라 설득해야 하고 안 팔리면 깨진다. 채산성으로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

‘출판사 이직을 묻다’ 따위의 책 제안을 받기도 한 김보희 휴머니스트 차장은 여덟 번 이직했다. 영어 교육서를 만드는 일로 편집자 생활을 시작해 15년이 되었다. 에세이 만드는 출판사로 옮겼는데 저자 중심의 책에서 크게 재미를 못 느끼는 자신을 발견했다. ‘하이브리드한 실용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다른 곳으로 옮겼다. 합이 잘 맞는 선후배가 있었지만 공황장애가 닥쳐왔다. 가방 하나 메고 몇 달 여행을 다니며 마음을 추슬렀다. 경제·경영·자기계발서 내는 출판사에도 10개월 있었으나 환멸을 느끼고 출판계를 떠나 애플리케이션 개발 회사에 다녔다. 그 회사가 폐업한 뒤 출판사를 창업하는 선배를 따라 시작 단계부터 같이했다. 경영 악화로 큰 출판사에 합병되었다. 거기서 그간의 경험이 꽃을 피워 베스트셀러를 냈다. 성과는 좋았지만 사풍이 그와 맞지 않았다. 그는 2016년 휴머니스트에 와서 2030 세대를 위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자기만의 방’을 만들었다. 이제야 스스로 무슨 책을 내고 싶은지 알 것 같다.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이직 상담을 해온다. 그는 ‘점이 모여 선이 된다’는 스티브 잡스의 말을 해준다. 앞을 내다보고 점을 연결할 순 없지만 각각의 점이 연결될 거라고 믿는다. 경력 관리란 점을 찍어 선을 그리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날 모인 편집자들은 출판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강구했다. 생존 비법을 묻는 질문에 이옥란 작가가 좋은 회사에서 시작하라고 조언하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가 최근 만난 편집자의 말을 소개했다. 일하기 좋은 출판사가 일곱 군데 있는데 거기가 아니면 입사를 말리고 싶다는 것. 열악한 현실을 반영한 우스갯소리다. 행운이 따라야 하겠지만 방법은 있다. 스스로 읽어온 책들을 돌아보고 관심 있는 출판사가 어떤 책을 얼마나 냈는지, 판매지수는 어떤지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책을 만들며 행복했겠구나 싶은 보도자료가 많은 곳일수록 일할 만한 회사다.

편집자여, 모임을 만들어라


능력 있는 편집자들이 떠나지 않고 살아남는 출판계를 소망하는 이옥란 작가는 편집자가 설 자리는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제안하는 대안은 모임이다. “3년차, 5년차, 10년차일 때 직무적으로 전혀 다른 능력이 요구된다. 그런 걸 대비해 모임을 했으면 좋겠다. 연구모임이든 독서모임이든 실무모임이든 뒷담화하는 자리가 아니라 자기가 일하는 환경을 좀 더 의미 있게 가꿀 수 있도록 생각을 공유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편집자 출신인 박태근 MD도 출판 팟캐스트 운영 당시의 경험을 보탰다. 당시 그는 동료들과 출판계의 성폭력·노동 이슈 등을 전면으로 다뤘다. 500명 정도만 들어도 좋겠다고 했는데 업로드하자마자 순위권에 올랐다. 특히 동시대 편집자들과 일을 도모하는 데 의미가 있다. “<뫼비우스의 띠지> 시즌 2를 안 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데 당시 같이하던 친구들과 가졌던 문제의식을 그때의 효과적인 방식으로 정리했다. 지금 느끼는 문제에는 또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다양한 시도가 많아지면 좋겠다. 기대 이상의 반향이 있을 거다.”

이날 모인 베테랑 편집자들은 엄혹한 시기이지만 편집자가 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편집자 되는 법>에도 <사상으로서의 편집자>에 나온 구절이 소개되어 있다. “(독자는) 직접 어떤 사상과 만나고 무언가를 읽기 이전에 이미 출판인이 만들고 연출해낸 극장의 무대 앞에 앉혀져 있다.” 김진형 편집주간 역시 사상가가 탄생할 때 편집자가 있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비관적인 편집자의 시간을 견디게 하는 것은 편집자가 출판사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책에 속한 사람이라는 믿음이다.

민음사에서 일하는 서효인과 박혜진 편집자가 최근 함께 펴낸 독서일기 <읽을 것들은 이토록 쌓여가고>에서 서효인 작가는 말했다. ‘출판 일은 해도 해도 잘 늘지가 않고, 붙잡고 늘어져도 도망친다. 다행히 그 일을 하는 마음들은 지상의 양식처럼 그 자리에 남아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그것으로 다행이다.’ 이날 나온 이야기는 편집자들의 일상과 고민 가운데서도 일부분이었지만, 편집자들의 퇴근길 에코백 안에 담긴 마음들을 가늠하기엔 충분한 온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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