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에서 시작해 노동·인권으로 나아가다
  • 전혜원 기자
  • 호수 596
  • 승인 2019.02.2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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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시사IN> 대학기자상-대상 <외대알리> 인보근·정소욱

2018년 ‘미투(나도 말한다)’에 의해 가해자로 지목된 한국외대 교수가 3명 있었다. 그 가운데 한 명인 L 교수는 2006년 외대노조 파업 때 직원을 성희롱해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권고를 받은 인물이었다. 한국외대 독립언론 <외대알리> 인보근·정소욱 기자는 L 교수 관련 취재 과정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L 교수는 제자들을 성희롱·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뒤인 2018년 3월 숨진 채 발견되었다. 학교는 관련 조사를 멈췄고, 기사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외대알리>는 그의 죽음 이후에도 해당 사건을 더 들여다보기로 했다. 지난해까지 <외대알리> 기자로 활동한 정소욱씨(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16학번)는 “돌아가신 분에 대해 기사를 계속 내는 게 윤리적인지 고민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L 교수 개인을 넘어서 그 이면에 존재하는 교수 사회의 문제, 학교 차원의 문제를 조명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봤다”라고 말했다. <외대알리> 기자였던 인보근씨(독일어과 11학번)는 “‘미투’가 계기였지만 그 근원을 보고 싶었다. 10여 년 동안 상황이 바뀌지 않은 데는 교수 사회의 묵인도 있지 않았는지 구성원들과 함께 생각해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외대알리> 기자로 활동했던 정소욱씨(왼쪽)와 인보근씨는 2006년에 일어난 성희롱 사건을 취재했다.

2006년 외대 파업 중에 보직 교수이던 L 교수가 노조 간부이던 A씨에게 성희롱을 했다. 2007년 인권위는 해당 발언을 성희롱으로 판단하며 L 교수에게 인권위가 주최하는 특별 인권교육을 받을 것을 권고했다. 박철 당시 총장에게 L 교수에 대해 경고 조치를 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해 보고하라고도 했다. 하지만 한국외대는 인권위를 상대로 권고 결정을 취소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은 대법원까지 이어졌고 모두 인권위가 승소했다. 소송 과정에서 처장을 맡고 있던 보직 교수들은 “(성희롱은) 민주노총 특유의 파업 전략의 일환으로 제기되었다” “L 교수가 어이없는 누명을 쓰게 되었다”라고 비호했다.

한국외대는 가해자를 비호한 반면, 성희롱 피해자를 두 차례 해고했다. <외대알리> 취재 결과 피해자의 징계 사유에는 성희롱 인권위 제소를 암시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고, 피해자의 징계 재심 당일 재심위원 명단에 없던 가해자 L 교수가 위원으로 참여해 해고에 찬성했다. 결국 피해자는 2007년 해고되었다가 복직하고, 다시 해고되어 재복직하기까지 7년 반을 법정 싸움으로 보내야 했다. 한국외대는 또한 2006년 당시 성희롱 사건 등을 고발하는 유인물을 배포해 학교 명예를 훼손했다며 학생 조명훈씨에게 무기정학 징계를 내렸다. 조씨 역시 소송 끝에 햇수로 3년 만에 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다.

2018년 4월부터 10월까지 이어진 취재에서 약 20명을 인터뷰했다. 2006년 성희롱 피해를 당한 직원, 무기정학을 당했던 졸업생 조명훈씨, 외대 파업을 이끈 노조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파업 대응에 관여한 당시 보직 교수들도 접촉했다. 사건 당시 L 교수를 위해 탄원서를 쓴 교수들을 직접 찾아갔다. 인보근씨는 “마주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홍여진 <뉴스타파> 기자의 앰부시(만나기 어려운 사람을 기다렸다가 질문하는 것)나, 주진우 <시사IN> 기자가 나오는 영화 <저수지 게임>, 드라마 <아르곤>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라고 말했다. <외대알리>는 <조선일보>가 2006년 L 교수 성희롱 사건과 관련해 한국외대의 항의를 받고 정정보도한 기사를 다시 ‘팩트체크’하기도 했다.

취재는 성희롱 사건을 넘어 대학·노동 문제로 확장되었다. <외대알리>는 인권위 권고 결정 취소 소송비용 등이 다름 아닌 학교 등록금에서 나갔고, 이것이 박철 전 총장의 11억여 원 횡령 혐의에 포함되었음을 짚었다. 이를 검찰이 어떻게 약식기소 1000만원으로 ‘봐주기’했는지 검찰 불기소 결정서를 입수해 비판했다. 그뿐 아니라 학교가 교비를 지출한 노무법인 가운데 노조 파괴로 악명 높은 창조컨설팅이 존재했음을 지적하며, 당시 창조컨설팅과 대표인 심종두 노무사가 한국외대와 어떻게 관계를 맺고 한국외대 노조 파괴에 관여했는지 추적했다(고용노동부는 2012년 창조컨설팅 설립 인가를 취소했고, 심종두 창조컨설팅 전 대표는 노동조합법 위반 혐의로 실형을 선고 받았다). 극심한 노조 탄압과 파업 후유증을 겪은 한국외대 노조에서는 지부장이던 이호일씨가 2012년 크리스마스 당일 숨진 채 발견되고, 빈소를 지키던 이기연 수석부지부장이 이튿날 연이어 심근경색으로 사망하는 아픔이 있었다.

정소욱씨는 “인터뷰하며 우는 취재원들이 많았다. 그분들에게는 아픈 기억이고 상처인데 계속 캐물어야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기사가 나간 뒤에도 이렇다 할 가시적인 반응이 없어서 죄송했는데, 상을 받아 그나마 고개를 들고 취재원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인보근씨는 “당시 피해 입은 분들은 아무에게도 ‘미안하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고 한다. 관여했던 교수님들이 사과를 좀 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대상 부문 심사평

학교 측의 노조 파괴도 고발

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시사IN 이명익

2018 제10회 <시사IN> 대학기자상 대상 수상작으로 <외대알리> (인보근·정소욱 기자)의 ‘2018 외대 미투, 2006 외대 파업을 향하다’를 선정했다. <외대알리>는 한국외국어대 소속 학생들이 만드는 독립언론이다. ‘알리’란 알권리의 준말이면서 연맹(Alliance)을 뜻하기도 한단다. 학생들이 학교의 지원이나 간섭 없이 스스로 소재를 선택해 취재하고 기사화한다. <외대알리>에는 2013년부터 외롭고 힘겹지만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학생들의 따뜻한 발걸음이 모여 있다.

대상 수상작은 시계를 12년 전으로 돌려, 2006년 외대 교직원 노조 파업 당시 일어난 성희롱 사건 고발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당시 성희롱 피해자인 계약직 교직원은 해고당하고, 고발한 학생은 무기정학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정작 가해자인 L 교수는 징계를 받지 않았다. L 교수가 학생들을 상대로 성희롱과 성추행을 했다는 의혹이 지난해 제기되었다. 기사에는 대학 측이 12년 전 해당 교수에 대한 징계를 했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담겨 있다. <외대알리>는 또한 학교 측이 7억여 원을 들여, ‘창조컨설팅’을 통해 교직원 노조 와해를 시도했다는 사실 등도 고발했다.

청년이란, 오늘의 현실에 아파하고 이를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외대알리> 기자들은 참 청년이다. 심사위원들은 이번 대상작을 선정하면서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묵묵히 노력하는 학생들을 격려하고자 했다. 오늘은 비록 작은 목소리이지만 언젠가 세상을 바꾸는 함성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상을 받은 <외대알리>의 인보근·정소욱 학생에게 축하의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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