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6일부터 평양에 체류하며 북한 측과 비핵화 담판을 벌인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특별대표)가 어떤 성과를 거뒀는지 구체적으로 알긴 어렵다. 큰 틀의 합의가 이뤄졌다고 해도 핵심 내용들은 2월27~28일 제2차 북·미 정상회담까지 철저히 극비로 관리될 것이다. 다만 양측에서 그동안 흘러나온 내용을 종합하면 그 양상은 짐작해볼 수 있다. 미국 입장은 이미 많이 알려졌다. 관건은 북한이다.

북한 측이 올해의 대미 협상에 대비해 세워놓은 기조는 지난 1월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에 나타나 있다. 그러나 신년사 내용대로 북한이 협상에 임했다면, 비건 특별대표의 평양행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라 북한에 대한 미국 핵위협의 제거’라는 전제하에 1단계로 주한 미군 철수, 2단계로 주일 미군 철수를 요구하겠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시사IN〉 제592호 ‘시진핑 만난 김정은, 어깨가 무겁네’ 기사 참조). 이런 기조로는 미국과 협상할 수 없다.

ⓒUPI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6월12일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에서 만나 회담장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올해 신년사는 중국 방문을 앞둔 김정은 위원장이 시진핑 주석을 위해 준비한 ‘립 서비스’에 불과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지난해 7~8월 중국이 북한 측에 대해 ‘중국의 대북 경제지원을 받으려면 정전협정 전환 논의에서 주한 미군 철수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요구를 집중적으로 제기한 이후 북·중 관계는 답보 상태에 빠졌다. 북한이 중국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자, 중국은 김정은 위원장의 지난해 방중 당시 약속했던 경제 지원 방안을 이행하지 않았다. 말로는 미국 때문이라고 핑계를 댔지만 북한이 주한 미군 철수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 때문이었다. 즉, 대북 경협을 주한 미군 철수와 연계시켜 한반도를 둘러싼 세력관계를 바꾸는 것이 ‘시진핑 대북 전략’의 핵심이었던 셈이다. 북한은 지난해 9월 이후 한동안 한국을 통해 대북 제재를 돌파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이마저 한계에 부딪히자 다시 베이징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

1월1일 신년사 발표를 앞둔 김정은 위원장이 마주한 현실이 이와 같았다. 그는 아마 중국 외에는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다는 절박함 속에서 시진핑 주석의 관심 사항(한·미 연합 군사훈련, 주한 미군, 평화협정 전환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 등)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을 터이다.

지난 1월7일 김 위원장의 방중이 이뤄졌다. 그는 1월8일 오전 11시 베이징역에 도착해 4시간에 걸친 북·중 정상회담과 자신의 35세 생일 파티를 겸한 환영 만찬을 가졌다. 1월9일 시 주석과 다시 1시간30분의 환송 오찬을 마친 뒤 귀국했다. 지난해 세 차례 방중 당시엔 협의 내용이 그때그때 상세하게 알려졌지만 이번엔 문자 그대로 ‘깜깜이 방중’이었다. 두 사람의 협의 내용을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에 비추어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과 중국은 이번 회담에서 주한 미군의 의미와 역할, 미군 전략자산 전개에 대한 대응 등 예민한 전략을 조율했을 것’(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이라는 추정은 당시 상황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런데 일부 외신을 통해 “북·중 양국이 ‘대담한 비핵화’에 합의했다”라는 다소 뜬금없는 소식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Xinhua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월8일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왼쪽)과 함께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상황의 반전이다. 어떻게 된 걸까. 시진핑 주석의 태도가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북한을 이용해 주한 미군 철수를 밀어붙이려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시 주석이 북한을 이용해 한반도의 현상 변경을 시도하는 것이 어렵다는 걸 깨닫고 좀 더 현실적인 타개책을 찾기 시작한 듯하다”라고 한 외교 소식통은 전했다.

물론 1월 북·중 정상회담 이후 북한과 중국의 태도 역시, 미국이 먼저 상응조치로서 종전선언과 대북 제재 해제를 단행해야 한다는 기존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지난해 9월19일 평양 공동선언과 뒤이은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4차 방북(10월7일) 성과에 기초한 실질적 비핵화 조처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대담한 비핵화 조치’를 담고 있다는 보도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한 것이다.

주한 미군 문제, 달리 보려는 중국

그동안 외교 소식통들을 통해 입수한 북·중 협의 내용을 순서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중국은, 미국이 유엔 대북 제재 같은 압박이 아니라 대화 방식으로 전환하면, 협력하겠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중국은 지난해 1년간 미·중 무역전쟁을 통해 ‘미국이 매우 버거운 상대’라는 점을 새삼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미국과의 대립 국면을 완화하면서 한반도 평화를 적극 지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쪽이 중국의 국익에 이로울 수 있다. 예컨대 ‘중국은, 미국이 대화를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해간다면, 이에 협조하면서 주한 미군 철수 역시 더 이상 언급하지 않을 용의가 있다’는 태도이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중국은 주한 미군에 대해 ‘남북한과 미국이 알아서 처리할 문제’로 양해한 것으로 전해진다. 주한 미군 문제를 건드리지 않아야 미국이 마음 놓고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논의에 참여할 수 있으리라는 점도 감안했을 것이다. 중국이 주한 미군 문제를 좀 더 큰 틀에서 보려는 것 같다는 지적도 있다. 이후 동북아 안보회의 등 다자협상으로 평화체제를 구축해서 주한 미군 주둔의 필요성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을 수 있다는 것이다.

 

ⓒ평양 조선중앙통신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화성-15’ 시험 발사 모습.


어쨌든 전제는 미국의 선제적 상응조치다. 북한이 그동안 감행했던 선행 조치(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 폐쇄, 미국인 억류자 석방)에 맞춰, 미국 역시 종전선언과 대북 제재 해제 의사를 밝히라는 것이다. 특히 2017년 북한의 대외 교역과 수출을 금지한 유엔 안보리 제재부터 풀어야 한다.

대북 제재가 풀리면 중국은 대북 경협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지난해 5월 김 위원장의 2차 방중과 6월 3차 방중 당시 중국은 수많은 경협을 약속했지만 이행하지는 않았다. 사실 중국의 개별 기업이 북한에 투자하는 방식은 유엔 제재 때문에 어렵다. 대신 인도적 지원의 틀을 적극 활용할 수 있다. 공무원 교육 및 인재 양성 프로그램 지원, 국토 개발과 지도 작성 실무 지도, 발전소 및 도로 건설, 농업 현대화 지원 등이 협의되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미국 측 상응조치 및 중국 측 대북 경협의 본격화를 전제로 북한 역시 비핵화에 나설 것이다.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엔진 시험장에 대해 외부 전문가의 검증을 받겠다는 것은 이미 지난해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과 폼페이오 4차 방북 당시 논의되었다. 북한은 미국의 상응조치를 전제로 영변의 핵시설 폐기와 검증도 약속한 바 있다. 북·중 협의에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이 원하는 수준까지는 어렵겠지만 ‘영변+α’의 핵 시설 리스트를 제공하겠다는 얘기도 나왔다고 한다. ‘영변+α’란 영변 이외 일부 지역의 관련 시설까지 사찰 및 해체 대상에 포함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태천의 200㎿ 원자로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에 대해 미국 측은 북한 전역의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 시설의 해체와 파괴를 요구해왔는데, 앞으로 어떻게 절충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1월31일 스탠퍼드 대학 연설에서 스티븐 비건 특별대표는 북한이 지난해 3차 남북 정상회담 등에서 ‘추가로 더 할 수도 있다’고 한 데 대해 미국이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바로 ICBM 얘기다. 1월 북·중 정상회담에서는 ICBM에 대해서도 대담한 방안이 언급된 것으로 전해졌다. 즉 ‘미사일 제조시설과 이미 만든 미사일 전부는 아니겠지만 (미국 측이) 진전됐다고 볼 수 있는 수준의 리스트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미사일 생산시설과 ICBM 일부의 폐기 용의까지 밝힌 셈이다.

북·중의 해법, 미국은 받기 어려워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의 상응조치 뒤에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취하면, 중국은 큰 문제 없이 북한과 경협 프로그램을 가동할 수 있다.’ 지난해까지는 중국이 경협을 북한의 주한 미군 철수 요구와 연계시키려 했다면 지금은 북측의 부분 핵폐기와 매칭하려 하는 것이다. 나름의 전략 변화라 할 수 있다. 특히 북한이나 중국 모두 미국이 판을 엎고 강경 모드로 전환할 가능성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중국은 자신들이 나름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미국에게 피력하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2월28일 2차 북·미 정상회담 직후 베트남에서 미·중 정상회담을 갖자고 타진하기도 했으나 미국 측이 응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해 12월26일 ‘동·서해선 남북 철도, 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이처럼 북한과 중국이 마련한 해법엔 나름 진일보한 점이 있다. 그러나 미국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주한 미군에 대한 중국의 태도 변화의 경우, 미국과의 갈등을 완화하기 위한 것인 동시에 다른 노림수도 있는 걸로 보인다.

미국이 새로운 아시아태평양 전략인 ‘인도태평양 전략’을 가동한 지난해 하반기 이후 주한 미군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서도 여러 차원에서 문제가 제기되어왔다. 미국은 주한 미군의 역할을 한반도에만 고정하기보다 동북아 전체로 확장하고 싶어 한다. 지난해 남북 간 군사 합의에서도 미군의 일부 기능이 제약을 받는다며 불편해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반면 한국 정부는 주한 미군의 역할을 한반도에 국한하길 원한다. 급기야 지난해 말 주한 미군 사령관을 현재의 4성 장군에서 준장이나 소장으로 격하하려는 미국 내 움직임이 보여 한국 정부가 말리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주한 미군 사령관과 주일 미군 사령관의 격이 같은데 주한 미군 사령관의 격이 낮아지면 일본이 동북아 중심국가의 위상을 차지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면 한국뿐 아니라 중국에도 심각한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이런 시점에서 중국이 주한 미군 철수에 매달리다간 ‘혹 떼려다 더 큰 혹을 붙이는 꼴’이 될 것이다. 그래서 중국이 생각을 바꾸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국에게 북한의 지난해 선행조치에 대한 보답으로 대북 제재를 해제하라는 요구 역시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하다. 그동안 미국은 대북 인도적 지원과 남북 간 철도 연결 등 일부 사안에서 유연성을 발휘하긴 했다. 그러나 대북 제재 해제를 통해, 북한 대외교역의 90%를 차지하는 북·중 교역을 선뜻 풀어주리라 기대하긴 어렵다. 미국에게 대북 제재는 북한뿐 아니라 중국을 겨냥한 무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은 2016년 2월 제정한 대북제재법에 ‘세컨더리 보이콧’ 조항을 삽입했다. 북한뿐 아니라 북한과 거래한 다른 나라의 기업 및 금융기관들까지 제재하는 내용이다. 북한의 최대 교역 대상은 중국의 기업과 은행이다. 중국 처지에서 대북 제재 해제 요구는, 대북한 제재 해제를 앞세워 중국 기업과 은행이 세컨더리 보이콧을 당할 위험을 제거해달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국 처지에서는 천신만고 끝에 중국을 잡을 수 있는 강력한 무기(세컨더리 보이콧)를 손에 들었는데 이를 순순히 포기할 리 없다. 심지어 지난해 한국이 제재 해제를 주장한 것에 대해 ‘한국이 중국 편에 선 것으로 미국이 의심하게 만든 경솔한 행동’이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더욱이 대북 제재를 풀면 북·중 경협에 날개를 달아줘 중국의 대북 영향력만 키우게 될 것이다. 북한을 중국한테서 떼어내려고 내심 애를 쓰는 미국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경우다.

베트남을 정상회담 무대로 선택한 이유

반면 미국이 남북 경협의 일부를 풀어주는 경우는 가능하다. 남북 간 철도 연결과 금강산 관광·개성공단 사업 재개가 거론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북한을 중국으로부터 떼어내 남북·미 틀 내로 끌어들이려는 미국 처지에서는 오히려 바람직한 구도다.

중국은 이번에 김정은 위원장을 불러서 일부 비핵화 약속을 받아낸 것으로 미국에 생색을 내려 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미국이 환영할까? 미국이 지난해 12월 중국에 전달한 북한 관련 메시지의 핵심은, 북한에 원유 공급 감소 등의 압력을 넣어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라는 것이었다. 중국이 자국에 유리한 방식(대북 제재 해제를 전제로 하는 북·중 경협)으로 문제를 풀라는 내용이 아니었다. 중국이 여전히 미국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최근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에 대한 기소 움직임’ ‘화웨이 연구소에 대한 FBI의 압수수색’ 등 미국의 대중국 압박이 한층 강화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사실 미국이 북한에 대해서도 핵·미사일 비핵화의 범위나 강도와는 별도로 제기 중인 중대한 질문이 있다. 바로 ‘선택’이다. 예컨대 북한은 미국과 관련해서는 제재 해제 문제만 해결하고 그 뒤엔 중국의 경제협력을 전격적으로 받아들이는 길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좀 더 큰 안목으로 한국과 손잡고 미국을 통한 국제시장으로 진출하는 길을 선택할 것인가? 미국이 베트남을 2차 북·미 정상회담의 무대로 선정한 이유가 무엇인지, 북한 측의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