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파이팅〉이라는 작품이 있다. 음악이 담긴 앨범은 아니다. 현재까지 무려 120권이 발간된, 권투를 다룬 만화책이다. 이 작품은 내게 아주 복잡 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유는 이렇다. 인생 전체로 보자면 나는 〈더 파이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신뢰하지 않는 쪽에 가까운 사람이다. 이 작품을 본 사람들에게 먼저 묻고 싶다. 당신이라면 주제를 어떻게 요약하겠나. ‘노력하면 이뤄진다’ 정도 되지 않겠나.
얼마 전 패션지 〈에스콰이어〉에 썼던 글 중 일부로 의견을 대신해본다. 나는 ‘스포츠가 곧 인생이다’라거나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처럼 우리를 취하게 하는 거짓말도 없다고 확신한다. 그건, 스포츠이기에 가끔 벌어지는 기적 비슷한 것일 뿐이다. 노력은 당신을 배신할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당신이 예측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면 노력이 당신을 배신할지 안 할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뿐이다. 고로, 스포츠와 나의 삶은 관련이 없다고 여기는 쪽이 정신 건강에는 훨씬 이롭다.
그럼에도 나는 〈더 파이팅〉을 놓지 못한다. 이유를 곰곰 생각해보니, 애정과 능력의 상관관계에 내가 유독 집착하기 때문인 듯싶다. 애정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능력도 발휘될 수 없는 까닭이다. 게다가 나는 재능마저 일천한 사람이다. 나보다 글 잘 쓰는 사람은 널려 있고, 나보다 말 잘하는 사람도 부지기수라는 걸 잘 안다. 나보다, 나보다, 나보다… 이거 참, 비교의 지옥에는 과연 한도 끝도 없다.
나에게도 허락된 딱 한 가지 재능이 있었다. 바로 만화 속 일보가 그랬던 것처럼, ‘아주 조금’을 견뎌내고 마침내는 사랑할 수 있는 재능이다. 한데 어쩌면 라디오에서 신청곡을 받는 일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청취자의 신청곡 중 90% 이상은 내가 다 아는 노래다. 그래서 나머지 10% 정도가 내게는 중요하다. 빼놓지 않고 일일이 다 들어보려 애쓴다. 그 와중에 보물 같은 곡을 만날 때가 있는데 이런 순간들이 ‘아주 조금’씩 채워져 언젠가는 100%에 다가설 수 있기를 소망한다. 물론 현실계에서 100%는 환상에 불과함을 모르지 않는다. 다만, 환상 속의 그대에게 ‘다가선다’는 태도를 앞으로도 유지하고 싶다는 의미다.
신청한 이에게는 간절한 편지와 같은
소망하던 차에 만난 노래 한 곡을 소개하려 한다. 타블로가 작곡하고 이소라가 노래한 ‘신청곡’이다. 여기에 방탄소년단의 슈가가 참여해 랩을 하고 가사도 썼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신청곡’을 감상하려 한다면, 노랫말을 꼭 보기 바란다. 겨울밤에 참 듣기 좋은 이 곡을 플레이하면서 내게는 그것이 수많은 신청곡 중 하나지만 신청한 개인에게는 간절한 편지와도 같은 것임을 또 한 번 깨달았다. 요즘 같은 시대에 변함없이 라디오를 트는 청취자들이 신청곡을 보내고, 이 신청곡이 하나둘 쌓여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임을 다시금 절감했다. 어디 과거의 나뿐인가. 이 신청곡들이 미래의 나를 조금씩 키워줄 거라는 점 앞에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주저하지 말고 신청곡을 팍팍 보내주시라. 최선을 다해 정리해서 DJ에게 전달할 것임을 약속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평론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문장을 내가 쓸 수 없다는 걸 인정한 지 오래다. 대신 나는 아주 조금씩 전진할 것이다. 소처럼 우직하게, 일보(一步)라는 이름을 믿고. 혹여 노력에 배신당하더라도 불평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기를, 마지막으로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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