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으로 시작해 지난해 폭발적인 인기를 끈 〈며느라기〉. 이맘때 이 책을 돌아보는 것은,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에 이 땅의 수많은 며느리가 주인공 민사린과 같은 혼란을 호소하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보는 못된 시어머니, 지독한 며느리는 우리 주변에 그다지 흔치 않다. 민사린이 무구영과 연애하고 결혼하면서 즉, ‘무’씨네 일원이 되어 만난 ‘시월드’ 집안은 무척 평범하다. 시댁 식구를 미워할 구석이 없는데도 민사린의 심기가 불편한 까닭은,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체화해온 관계성에 있다. 누구 하나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아도 바보처럼 말 못하고 속 끓이는 며느리가 되어가는 그 지점이 며느리들의 공감을 얻은 듯하다.

남자와 달리 여자는 알게 모르게 감내해야 할 산더미 같은 심리적·물리적 일의 중심에 선다. 게다가 뭔가 잘해보려 할수록 해야 할 숙제는 늘어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버거워져 혹여 그걸 뿌리치기라도 하면, ‘착한 내가 이렇게 못돼졌다니’ 하는 자괴감에 심리적 이중고를 겪는다. 시댁의 대소사가 많은 집안의 며느리일수록 자아 분리 경험치는 증가된다. 꿈꾸던 결혼, 행복한 사람과 함께 사는 일에 이렇게 많은 골칫거리가 쌓일 줄이야!

살아 있는 이야기에 반응 폭발

〈며느라기〉 수신지 지음, 귤프레스 펴냄

필자는 부부가 함께 일하는 게 보편화하기 시작한 세대에 속하지만 (지금의 40∼50대), 우리 부모 세대는 아빠가(그야말로 가장!) 돈을 벌어다 주면 엄마는 집에서 살림만 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며느리가 되는 순간, 퇴근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도 시댁 행사에 불려나가 몸이 파김치가 되도록 일해야 하는 분위기였다. 그 스트레스를 다시 말해 무엇하랴! 민사린이 속한 세대는(지금의 20∼30대) 남녀평등을 목이 쉬도록 외친 부모 아래 성장했을 텐데도, 며느리로서 비슷한 고통을 겪는다. 달라진 점이라면 시부모가 ‘너희를 이해한다’ ‘너희 편한 대로 하렴’이라고 말을 한다는 정도랄까 (그럼에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때 민사린의 남편 무구영의 태도가 중요하다. 그는 딱히 잘못한 게 없는데도 그 뜨뜻미지근함으로 아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민사린은 더 외롭다.

작가 수신지는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며느라기(사춘기·갱년기처럼 며느리가 되면 겪는다. 시댁 식구한테 칭찬받고 싶은 시기. 보통 1∼2년이면 끝나는데 사람에 따라 10년이 걸리기도, 혹은 끝나지 않기도 한다)’가 되는 자신을 발견하며 ‘왜 그럴까?’라는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모든 걸 잘해내려는 강박, 하면 할수록 쌓이는 스트레스, 마치 발을 들이면 점점 헤어 나오지 못하는 늪으로 빠지는 것처럼 말이다.

웹툰 연재를 시작했을 때 매주 60만명에 이르는 독자가 다음 화를 기다렸다. 만화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가 나오는가 하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을 때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살아 있는’ 며느리의 이야기를 담아냈기에 나온 반응이리라. 수신지 작가의 전작 〈3그램〉 역시 자신이 겪은 투병기를 다룬 이야기로, 진솔한 경험만이 줄 수 있는 감동과 공감의 울림이 컸다.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조용히 나와 우리와 세상을 바꾸는 힘. 작가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기자명 김문영 (이숲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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