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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정아(왼쪽)와 김서형(오른쪽)은 극중에서 긴장감으로 터질 듯한 장면을 만들어냈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그 끝은 창대하리라. JTBC 〈SKY 캐슬〉 1회 시청률은 1%대였다. 10회 만에 두 자릿수를 돌파했고, 18회에 이르자 22.3% (닐슨코리아 집계)를 기록하며 비(非)지상파 드라마의 최고 전국 시청률을 경신했다.

신드롬에 가까운 흥행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주효한 것은 이야기의 재미였다. 단순한 인물이 빤히 보이는 함정에 빠져 감정적으로 행동하며 괜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많은 드라마와 달리, 영리하고 경계심 강한 주인공이 그 순간 최선처럼 보이는 선택을 하지만 어떻게 해도 딜레마를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 속도감 있게 이어졌다. 여성 캐릭터 다섯 명이 중심에 서고, 염정아(한서진 역), 김서형(김주영 역) 등 뛰어난 배우들이 기다렸다는 듯 재능을 펼쳐 긴장감으로 터질 듯한 장면을 만들어내면서 입소문은 날개를 달았다. 성취욕 강하고 자기중심적인 예서(김혜윤), ‘어른 찜 쪄 먹을 만큼’ 눈치 빠르고 배짱 있는 혜나(김보라) 등 기존 드라마 속 ‘소녀’의 전형성에서 벗어난 캐릭터들도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흥미로웠던 시작은 의아한 끝을 향해 가고 있다. 혜나는, 엄마를 버렸고 자신의 존재조차 몰랐던 아버지 강준상(정준호)을 원망하는 대신 그에게 인정받을 날만 기다리다 허무하게 죽는다. 이야기의 중심은 자기 존재를 걸고 딸을 서울대 의대에 보내야만 하는 서진의 절박함에서 제 손으로 딸을 죽게 만든 준상의 비극으로 옮아간다. 뒤늦게 진실을 알게 된 준상은, 자신에게 병원장이 될 것을 강요해온 어머니 윤 여사(정애리) 때문에 인생이 빈껍데기만 남았다며 원망하고, 서진에게는 아이 인생과 당신 인생은 다르니 욕심을 내려놓으라며 충고한다. 원인이 있다는 것과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교육의 중요함을 이야기하기 위해 한 인간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모조리 어머니에게 지워버리자, 준상은 50이 다 된 나이에도 ‘불쌍한 아들’의 위치에 서며 동정표를 얻는다. 아무리 어머니로 인해 출세만 노리는 속물이 되었다 해도 은혜를 배신하고, 서진과 결혼하고, 서진이 학벌도 배경도 없는 여자라는 사실에 냉대하고, 딸에게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그 모든 순간이 어머니 때문인가? 피임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도? 대입을 마친 뒤 30여 년간 과연 그는 더 나은 선택을 하려 노력한 적이 있었나?

면죄부를 얻은 이는 준상만이 아니다. 그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해준 이는 극 초반 서울대 의대에 합격한 아들 영재(송건희)와의 불화로 자살한 이명주(김정난)의 남편 박수창(유성주)이다. 준상과 같은 의대 교수였던 그는 외도를 저지르고 부인과 아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데다 아들의 정신과 치료조차 반대한 폭군이었다. 자신의 가정이 무너진 데 누구보다 큰 책임이 있는 그는, 아들의 입시 코디네이터였던 김주영을 공동의 적으로 두며 아들과 극적으로 화해한다. 그는 시골 의료원에서 환자들을 성심껏 보살피는 삶을 통해 구원받은 것처럼 보인다. 가해자였던 그는 성숙한 어른이 되었다. 이렇게 쉽게? 영화평론가 듀나가 tvN 〈비밀의 숲〉 후반의 아쉬움을 지적하며 말한 것처럼, 〈SKY 캐슬〉은 “한국 드라마의 일반적인 우선순위”, 즉 “중년 남성의 비분강개와 자기 연민과 뒤늦은 참회”에 너무 많은 자리를 내주며 매력적인 여성들이 치열하게 대립하면서 쌓아 올린 이야기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만다. 심지어 중년 남성을 각성시키는 장치로 미성년 딸과 부인의 죽음을 사용하면서.

또 다른 미성년 여성 연두의 죽음은 교생이었던 이수임(이태란)에게 각성이 아닌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SKY 캐슬에 입주한 뒤 영재 가족의 비극을 알게 된 수임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당사자들의 허락도 구하지 않은 채 소설의 소재로 쓰겠다고 나선다. 상호 존중적인 관계의 남편, 알아서 공부 잘하는 아들이 있으며 소탈하고 씩씩한 성품의 그는 이웃들의 세속적 욕망과 마주할 때마다 종종 “이해할 수 없어요”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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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나(왼쪽)와 예서(오른쪽)는 기존 드라마 속 ‘소녀’의 전형성에서 벗어난 캐릭터로 화제를 모았다.

남편의 계급에 안착하기 위해 ‘3대째 의사 가문 만들기’라는 과제를 필사적으로 수행하는 서진과 달리, 결핍을 모르고 자란 수임은 자신이 운 좋은 사람이라기보다 옳은 사람이라 믿기에 가족 안의 복잡한 권력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타인의 감정에 둔감하다. 그러나 김주영을 “아이들의 영혼까지 마음대로 휘두르는 무서운 여자”라고 지목한 영재가 우리 가족 같은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한 덕분에 그는 결국 집필의 정당성을 얻는다. 과연 가정폭력을 휘두른 수창, 아들을 의대에 보내기 위해 학대한 명주, 가사도우미와 성적인 관계를 맺었다 들켜서 쫓겨나게 만든 영재가 김주영에 의한 피해자라고만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물론 부모의 욕심으로 인한 과도한 사교육 열기에 경종을 울리고자 하는 수임의 선의를 의심하지는 않는다. 〈SKY 캐슬〉 제작진의 한 관계자가 언론에 전한 바 있는 “이 드라마로 한 가정이라도 살렸으면 하는 마음”이라는 유현미 작가의 발언 또한 수임과 맞닿아 있다.

〈SKY 캐슬〉은 사교육 세계를 살벌하면서도 매혹적으로 그린다. 서울대 의대는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합격할 만한 가치가 있는 목표로 존재한다. 서진이 영재의 문제를 알고도 예서는 다를 거라 믿었듯, 가능성 있는 자녀를 둔 부모라면 판돈을 올릴 수밖에 없다. 전지전능해 보이는 입시 컨설턴트의 등장과 학생부종합전형 시대의 전략이 강조될수록 막연한 불안감은 고조된다. 〈SKY 캐슬〉의 인기와 함께 쏟아져 나온 사교육 종사자들과 학부모 인터뷰 역시 이를 부추긴다. 상류층이 저 정도 한다면 중산층인 우리는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입시 레이스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더 일찍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아이만 빼고 다들 고액 컨설팅을 받는 건 아닐까? 한 대치동 입시 컨설턴트는 JTBC 뉴스와 인터뷰하면서 “진정성을 보셔야 해요. 그 친구(예서)는 진정성이 없어요. 무엇인가 대단한 스펙을 만들어가려는 방식으로는 서울대 못 갑니다”라고 했지만, 어딘가에는 그 ‘진정성’조차 만들어줄 수 있는 ‘쓰앵님(선생님)’이 있지 않겠나? 드라마가 막을 내릴 때마다 익숙한 “위 올 라이~”와 함께 수험생을 위한 홍삼액, 뇌 활성화를 돕는 안마의자에 이어 ‘서울대 선생님 화상 과외’를 내세운 교육 서비스 업체의 제작 지원 배너가 뜬다. 어쩌면 그들이야말로 〈SKY 캐슬〉의 최종 승자일 것이다.

기자명 최지은 (〈괜찮지 않습니다〉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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