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비핵화를 향한 길에서 또 하나의 좋은 이정표를 2월 말에 마련할 것으로 믿는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겨냥해 한 말이다. 2차 정상회담은 미국의 희망대로 비핵화의 ‘좋은 이정표’를 만들 수 있을까?

1월18일(현지 시각)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백악관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약 90분간 면담했다. 이 면담 뒤 북·미는 2월 말 ‘2차 정상회담’을 열기로 확정했다. 그 직후 스웨덴에서는,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만나 정상회담 의제와 일정 등 세부사항에 관해 논의를 시작했다.

미국 조야의 관심은 회담 자체보다 결실 여부에 집중되어 있다. 1월22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협상은 지금 한창 진행 중으로 많은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라면서도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라고 말했다. 북·미 양측의 쟁점 해소가 쉽지 않음을 시사한 것이다.

ⓒ댄 스캐비노 트위터 갈무리1월18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오른쪽)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이정표’ 운운하며 2차 회담에서 구체적 결실을 내야 한다고 강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워싱턴 조야에 퍼져 있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구심이다. 1월21일 북·미 협상에 정통한 전직 고위 관리는 NBC 방송에서 “미국 정부 내에서 북한이 비핵화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다”라고 밝혔다. 브루킹스 연구소 박정현 선임연구원도 “신뢰할 만한 대북 전문가들은 김정은 위원장이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하다고 본다”라고 지적했다.

북·미 정상은 지난해 6월12일 첫 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했다. 하지만 미국 행정부 안팎에서는 ‘구체적 실행 방안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어왔다. 그런 만큼 트럼프 행정부는 국내 여론을 의식해서라도 2차 회담에서 어떻게든 ‘구체적 조치’가 담긴 합의안을 끌어내야 한다.

북·미 양측 실무진은 2차 회담 전까지 양국의 접점을 마련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여전히 간극이 크다. 북한은 경제제재의 해제를 바란다. 반면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 목록 신고,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해체 등 구체적 비핵화 조치를 기대한다. 그렇다면 어느 선에서 타협이 이뤄질 수 있을까?

2차 회담을 계기로 미국이 북한에 어떤 비핵화 조치를 요청하고 있는지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된 바 없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북한과 논의 중인 사안 가운데 하나는 비핵화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북한이 핵연료 및 핵무기 생산을 동결하는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해 7월 의회에서 “북한이 핵물질을 계속 생산 중이다”라고 확인한 바 있다.

북한의 ‘완전한 핵무기 목록’ 제출도 미국의 변함없는 요구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북한은 핵무기 목록 제출에 앞서 ‘완전한 신뢰관계 구축’을 원한다. 핵무기 목록이 유사시 미국의 대북 공격용 정보로 활용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북·미 양측은 2차 회담까지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폐기, 영변 핵단지 폐쇄, 종전선언, 북한 핵 및 미사일 시설 사찰, 북·미 연락사무소 설치, 대북 제재 완화 등 다양한 주제를 두고 밀고 당기는 협상을 벌일 것이다.

“싱가포르 1차 회담 반복되면 안 돼”

어떤 주제도 만만치 않다. 더욱이 북한의 핵심 요구인 경제제재 해제에 대한 미국의 태도 변화는 아직 감지되지 않고 있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발표하면서 거듭 ‘비핵화 전 대북 제재 유지’ 방침을 천명했다. 미국은 지난해 북한의 탄도미사일 시험 및 핵실험 동결을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로 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미국의 상응 조치를 전제로 ‘ICBM 일부 폐기’란 카드를 제시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뉴욕타임스〉는 “김정은 위원장이 핵 프로그램 동결과 ICBM 해체를 제안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라고 보도했다. 이렇게 되면, 트럼프 행정부가 당장 전면적 경제제재 해제까지는 몰라도 종전선언이나 연락사무소 개설, 나아가 개성공단 같은 대규모 남북 경제협력 사업 재개 허용 등 전향적 조치를 취할지도 모른다.

미국의 대표적 지한파 인사인 존 메릴 전 국무부 정보조사국 동북아실장은 〈시사IN〉과 인터뷰에서 “미국은 인도적 차원의 대북 지원을 전면 허용하고, 개성공단 같은 남북 경협사업의 재개를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관측했다. 그는 “미국이 남북한의 관계 개선을 위해 길을 비켜줘야 하지만, 한국도 대북 제재 해제와 관련해 미국에 좀 더 자기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가운데) 일행이 1월21일 스웨덴에서 열린 북·미 실무협상 회의에 참석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 준비 부족과 그에 따른 파장을 염려한다. 2차 회담에서도 1차 회담처럼 구체적 비핵화 결실을 내지 못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1월22일 워싱턴 한국 특파원단과 가진 간담회에서 “싱가포르 1차 회담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2차 회담에선 실질적이고 세부적인 사안들이 논의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대니얼 러셀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미국은 준비 부족으로 1차 회담 때 북한의 핵 및 미사일 능력을 제어하는 데 실패했다. 준비가 부족하면 2차 회담에서 이런 일이 재연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차 회담 이후 주무 부처인 국방부와 상의 한마디 없이 한·미 합동 군사훈련 중단을 발표했다. 2차 회담 때도 이런 돌발 행동을 재연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가 적지 않다. 이런 불안감은 트럼프 대통령이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과 통화한 직후 시리아 주둔 미군을 전격 철수하겠다고 선언한 뒤 더욱 고조됐다. 전직 고위 관료는 NBC 방송 인터뷰에서 “세계 지도자들은, 공부하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을 쉬운 공략 대상으로 본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려고 애쓴다. 행정부 관료들이 불안해하는 이유다”라고 설명했다.

1월23일 현재 멕시코 국경의 장벽 건설 문제로 트럼프 대통령과 야당인 민주당이 극하게 대립하면서 정국이 꽁꽁 얼어붙은 상태다. 더욱이 지난 대선 당시 러시아의 선거 개입 및 트럼프 캠프 연루 의혹으로 인한 정치적 곤경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빠져나오기도 쉽지 않다. 그가 일종의 위기 탈출용으로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어떻게든 합의를 성사시키려 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한국석좌는 〈뉴욕타임스〉와 인터뷰하면서 “국내 정치적 위기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식으로든 모종의 승리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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