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시효가 없다
  • 고제규 편집국장
  • 호수 593
  • 승인 2019.01.2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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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아홉 살 여성이 숨졌다. 타살. 피해자는 명문대 출신 대기업 직원. 발견 장소는 러브호텔 근처 낡은 아파트. 낮에는 재원(才媛), 밤에는 성 판매 여성으로 살았다. 언론은 피해자 신상 파기에 광분했다. 한 언론은 피해자의 전라 사진을 게재했다. 대중은 ‘발정이라 표현해도 좋을 만큼 과도한 반응’을 보였다. 검찰과 경찰은 여론에 밀려 수사했다. 용의자는 네팔인 이주 노동자. 수사기관은 출입국관리법 및 난민인정법 위반 혐의로 먼저 신병을 확보했다. 살인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수사기관은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에 눈감았다. 예를 들면 피해자의 지갑은 살인 현장이나 피고인의 거처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 지난 1997년 3월8일 발생한 도쿄전력 직원 살인 사건이다. 피해자는 와타나베 야스코. 언론과 수사기관은 또 다른 가해자였다(<도쿄전력 OL 살인 사건>, 2018).


스물아홉 살 신인 배우가 숨졌다. 자살. 하지만 사회적 타살에 가까웠다. 배우는 숨지기 전 문건을 남겼다. 문건에 한 언론사 이름이 등장했다. 언론은 이 언론사에 대한 실명 보도를 주저했다. 지면이나 방송에 특정되지 않는 언론사를 대중은 다 알았다. 대중은 진실을 바랐다. 경찰과 검찰은 광범위하게 수사를 벌였다면서도 용의선상에 오른 14명 가운데 2명만 기소했다. 배우의 소속사 대표와 매니저였다. 힘깨나 쓰는 이들은 모두 빠져나갔다. 2009년 3월7일 발생한 장자연 사건이다. 검찰 과거사위가 다시 조사를 벌이고 있다.

두 사건 모두 아직도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다. 도쿄전력 직원 살인 사건은 한 독립 언론인이 사건 당시부터 추적에 나섰다. 사노 신이치. 그는 “경찰이 마이나리(피고인)를 범인으로 몰아가기 위해 네팔인 동료에게 폭행을 가하고 빚을 갚아준다고 회유하여 거짓 증언을 얻어냈다”라고 폭로했다. 독립 언론인은 네팔까지 찾아가 강제 추방당한 동료들을 인터뷰했다. 마침내 피고인은 1심 무죄, 2심 유죄를 거쳐 최종심 무죄판결을 받았다. 진범은 잡히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도 장자연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기자들이 적지 않다. 독립 언론 <시사IN>도 마찬가지다. 사건 초기부터 팩트를 좇았다. 이번엔 김은지·김연희 기자가 발품을 팔았다. 거의 한 달간 방대한 기록을 살피고 사건과 관련한 수많은 취재원들을 만났다. 그 결과물이 이번 호 커버스토리다.

이 기사는 누구를 지목하기 위한 게 아니다. 2009년 경찰과 검찰 수사가 왜 부실했는지에 대한 탐사보도다. 그때 수사가 부실하지 않았다면 진실은 드러났을 것이다. 장자연씨 사건은 법적인 공소시효가 얼마 남지 않았다. 진실은 공소시효가 없다. <시사IN>의 추적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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