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부터 우울한 이야기로 시작하긴 싫지만 어쩔 수 없다. 1월1일, 경기도 의정부에 사는 네 살짜리 아이가 죽었다. 경찰에 따르면, 엄마가 새벽녘 바지에 오줌 눈 아이를 화장실에 벌세웠고 몇 시간 뒤 쿵 하는 소리가 나서 가보니 아이가 쓰러져 있었다. 눕혔지만 오후에 숨을 쉬지 않았고 그대로 끝이었다고 한다. 3남매 중 한 명이었다.

뉴스를 접하며 작년 이맘때가 생각났다. 지난해 1월, 광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갑작스러운 출장인 데다 추웠고 이미 현장검증에는 늦은 게 확실해 “망했다”라고 몇 번이나 중얼거렸다. 지지난해 12월31일 화재로 죽은 3남매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불을 낸 건 엄마였다. 현장에서 가장 곤혹스러웠던 건 추위도, 지각도 아니었다. 부모가 평소 아이들을 끔찍이 아꼈다는 주변 사람들의 증언이었다.

ⓒ시사IN 양한모

이후 아동학대 사건을 여럿 들여다보며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살릴 기회가 있었던 사건을 접할 때가 안타까웠다. 의정부에서 숨진 아이도 학대 정황 때문에 한때 보호시설에서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엄마를 지원한 기관의 도움으로 아이들은 원 가정으로 돌아갔지만 누구도 바라지 않던 결말로 끝이 났다. 가해자가 양육 과정에서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 놓여 있었다는 걸 발견할 때도 비슷한 마음이 들었다. 외부의 개입이 절실하지만 도움의 손길은 늘 그렇듯 세심하게 미치지 않는다.

얼마 전 ‘대한민국 아동보호 기준선 마련을 위한 정책토론회’에 참석했다. 아동보호 관계자들이 예산, 법, 아동보호 체계 등 전반적으로 시스템의 기준점을 높여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모인 사람들은 매번 같은 이야기를 하지만 달라지지 않는 현실을 토로하기도 했다. 미국도 영국도 한국도 아이들의 죽음을 딛고 제도가 개선되어왔다는 건 아이러니다.


양육은 자기의 바닥을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다. 일상에서 자주 바닥을 경험하는 나는, 역시 바닥을 짚고 있을 누군가를 손가락질하는 게 가끔 두려울 때가 있다. 그래도 외부의 도움이 아니고서는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작은 존재에 대해 자주 생각한 1년이었다. 1년 전 기차 안에서 망했다고 중얼거리던 그때와 지금의 나는 조금 달라졌다. 정말 망한 건, 죽음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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