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24일 기획재정부는 외국환거래 규정을 개정한다는 고시를 발표했다. ‘소액 해외송금업자’를 통한 송금액 연간 한도를 2만 달러에서 3만 달러로 상향 조정한다는 내용이다. ‘소액 해외송금업자’란 금융기관이 아닌 회사가 요건을 갖추어 기획재정부에 등록하고 소액으로 해외 송금을 할 수 있는 업체다. 개정된 외국환거래 규정의 시행 일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예기간 없이 1월1일부터 곧바로 시행되었다.

이처럼 새해부터 각종 규제 완화책이 시행되고 있다. 핵심은 올해 상반기에 시행되는 ‘규제 샌드박스’ 제도다. 아이들이 모래밭에서 자유롭게 놀듯,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새롭고 혁신적인 서비스를 시험해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혁신적인 사업 모델이라도 각종 규제 탓에 실제 서비스 제공까지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율주행차나 인공지능처럼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하면 ‘제도 변화’를 기다려야 했다. 정부가 혁신 서비스에 대한 내용을 파악해서 담당 부처를 정하고, 필요한 경우 국회에서 관련 법률을 제정할 때까지 기다리는 경우도 있었다.

ⓒ연합뉴스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1월22일 규제 혁신 토론회에서 앞에 놓인 ‘규제 샌드박스’를 바라보고 있다.

혁신과 제도의 ‘엇박자’는 기회 불평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여론을 조성할 힘이 있고 제도가 정비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자금력이 충분한 소수 회사만 혁신 서비스를 추진할 수 있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만든 것이 규제 샌드박스이다. 혁신적인 사업 모델로 인정받을 경우에는 일정 기간 규제 적용을 면제하거나 유예해주고, 제한된 범위 내에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영국과 싱가포르 등 일부 국가에서는 이미 규제 샌드박스를 성공적으로 운영 중이다. 금융과 기술이 결합하는 핀테크 분야가 대표적이다. 금융 법령에 따른 인허가를 받지 않은 회사가 실질적인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기존 금융 관련 법령과 충돌했다. 영국과 싱가포르 등은 금융감독기구에서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해 핀테크 회사들이 제한된 범위 내에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자치단체장이 특구 지정 신청 

한국도 지난 12월, 규제 샌드박스와 관련한 법률안 4개가 국회를 통과했다. 먼저 ‘규제자유특구 및 지역특화발전특구에 대한 규제특례법’은 수도권이 아닌 지역의 자치단체장이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게 규제자유특구 지정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고, 민간 기업도 자치단체장에게 규제자유특구 계획을 제안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즉, 특정 지역에서 일정한 유형의 혁신 서비스를 시도해볼 수 있게 했다. 스위스의 블록체인 특구로 알려진 주크밸리(Zug valley)와 유사한 개념이다. 이 법률은 오는 4월17일부터 시행된다.

스위스의 블록체인 특구로 알려진 주크 시 크립토밸리 홈페이지.

영역별로 규제 샌드박스를 규정한 개별 법률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규제 샌드박스를 규정한 법률 3개가 올해 상반기에 시행될 예정이다. 정보통신·방송통신·디지털콘텐츠 관련 서비스 등이 합쳐지거나, 정보통신과 다른 서비스가 결합해 제공되는 혁신 서비스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주무 부처로 하는 ‘정보통신진흥 및 융합활성화 등에 관한 특별법’이 적용될 수 있다. 산업 간 또는 기술과 산업의 결합을 통해 제공되는 혁신 서비스에 적용되는 법률로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주무 부처인 ‘산업융합촉진법’이 있다. 이 두 법률은 모두 1월17일부터 시행된다. 

금융위원회가 주무 부처인 ‘금융혁신지원 특별법’은 혁신적인 금융 서비스에 해당하는 법률인데, 이 법률 역시 4월1일부터 시행된다. 이 세 법률에는 각 부처에서 혁신 서비스에 적용되는 규제를 신속하게 확인해주는 ‘규제신속확인제도’, 법률이 미비해도 일정 기간 해당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허가해주는 ‘임시허가제도’가 포함되어 있다. 혁신 서비스를 검증하기 위해 필요한 일정 기간 관련된 규제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적용하지 않는 ‘실증을 위한 규제특례제도’도 규정하고 있다. 또한 금융혁신지원 특별법에는 임시 서비스 제공 기간이 만료되기 전 금융위원회에서 해당 사업자가 금융 관련 인허가를 받을 수 있게 지원하고, 인허가를 받으면 해당 사업을 배타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그런데 법률보다 중요한 것은 운영이다.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실제로 혁신 서비스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각 부처가 이 제도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유연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각 부처가 혁신 서비스에 대한 ‘규제자’의 태도가 아니라 ‘지원자’의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특히 규제 샌드박스에 따라 특정 서비스 운영사에 임시 허가를 내어줄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기존 법령에 따른 인허가 심사와는 다른 기준으로 해야 한다. 현재 각 부처는 하위 법령 등을 정해 입법 예고를 하는 등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부가 유권해석을 명확하게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금까지 법령에 대한 유권해석을 요청하면 관련 부처는 모호한 답변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사업자는 답변을 해석하느라 전전긍긍했다. 사업자가 답변을 받고 실제로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정부는 좀 더 명확한 유권해석을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혁신 서비스를 추진하는 회사들이 각 부처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도록 여러 창구를 열어둘 필요가 있다.

정부가 혁신 기술에 신속히 대응하지 못한다는 우려가 그동안 여러 차례 제기됐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각종 규제 완화책은 이런 우려와 달리 정부가 새로운 서비스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태도가 계속 유지되어 앞으로 도입되는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스타트업이 활발하게 혁신 서비스를 추진하며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기자명 이나래 (변호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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