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병은 가족의 삶까지 파괴한다
  •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 호수 591
  • 승인 2019.01.17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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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우리 병원 산재업무 담당자가 신체감정 의뢰가 있다고 내게 연락을 했다. 신체감정이란 법원의 요청으로 사건 당사자의 건강 문제와 원인 등을 확인·규명하기 위해 촉탁기관이 환자를 직접 살펴보는 절차이다. 2015년, 한 전구공장 철거 작업 이후 발생한 수은중독으로 건설노동자 스무 명이 산재 신청을 했고, 그중 여섯 명이 사업주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수은중독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모자 장수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당시 ‘미친 모자장수(Mad hatter)’라는 말이 있었다. 모자를 다듬을 때 수은을 썼기 때문이다. 즉, 수은중독은 치아 흔들림, 심한 몸 떨림, 불안정한 자세, 기억력 저하, 우울증 같은 증상으로 나타난다.

 

ⓒ윤현지

가족의 삶까지 파괴하는 직업병

연말이라 정리해야 할 다른 일이 많아서 못한다고 말하려 했는데, 이미 대학병원 다섯 곳에서 거절한 사건이라는 말을 듣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서류에 적힌 전화번호로 연락해 환자들 진찰 일정을 잡으려 했다. 그런데 연락을 받은 변호사가 난감해했다. 그들은 아픈 몸을 이끌고 서울까지 와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들의 사정이 서울 가는 차비를 마련하는 것도 부담스러울 정도라며, 자신은 무료변론을 맡은 것이라 했다.

결국 그들은 2018년 봄이 되어서야 왔다. 그들이 가지고 온 두툼한 의무기록을 읽고 면담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이렇다. 첫째, 그들은 작업장에 굴러다니는 수은이 신기해서 손으로 만져보기도 할 정도로 그 작업의 유해성에 대해 들은 적도 없고, 이상한 증상이 발생해 관리자에게 물어보았지만 이렇다 할 조처가 취해지지 않았다. 아픈 사람은 알아서 일을 그만두고 병원에 입원했다. 꾹 참고 일한 사람은 더 증상이 심한 수은중독 환자가 되었다.

둘째, 근로복지공단 질병판정위원회는 수은중독과 관련된 일부 증상에 대해서는 산재 승인을 했지만, 사고 직후 잇몸이 부은 뒤에 발생한 ‘흔들리는 이’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성분 미상의 화학물질이 담긴 병을 200개 정도 운반한 직후에 생긴 피부 질환도 직업병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명확한 인과관계를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셋째, 산재 승인은 받았으나 그들의 기억력 저하 및 운동기능 저하 등의 신경계 증상을 설명할 수 있는 객관적인 검사와 그에 따른 적절한 치료는 받지 못했다. 그들은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팔다리 저림 등의 증상에 대해 자비를 들여 시행한 말초신경 검사 기록을 제출했는데, 그 검사를 받으려고 지인에게 돈을 빌렸다는 이도 있었다.

넷째, 직업병은 그들의 육체와 영혼뿐 아니라 가족의 삶까지 파괴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혼자서 외출하는 게 두렵고, 거스름돈을 제대로 계산하지 못하고, 물었던 것을 묻고 또 묻고, 떨리는 손으로 숟가락질과 젓가락질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신이 가족에게 폐를 끼친다고 생각해 집을 나왔다고 했다.
피고 대한민국이 민사소송법상 유죄인지 무죄인지 판단을 내리는 것은 판사 몫이다. 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묻고 싶다. 사업주로 하여금 모든 노동자에게 작업의 유해성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위험에 가능하면 최소한으로 노출되도록 관리하게 하는 데에, 그래도 혹시 직업병이 생긴다면 근로복지공단이 사회보험의 취지에 맞게 업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相當因果關係)를 제대로 판단해 직업병을 인정하며, 적절한 치료와 재활을 통해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하게 하기 위해, 지금 국가는 그 책임을 다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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