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내가 읽고 싶은 책 만든다
  • 임지영 기자
  • 호수 589
  • 승인 2019.01.10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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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紙中海)’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종이 속 바다. 이런 조어를 생각했다니, 스스로 감탄했다. 지인들의 반응은 달랐다. “들으면 기분 좋을 만한 이름을 생각해봐.” 과거, 엄기호 작가의 책을 만들 당시 그가 언급했던 ‘미래소년 코난’이 떠올랐다. 무언가 함께 ‘도모하는 용기’를 가진 캐릭터였다. 요즘 세대에겐 ‘명탐정 코난’도 익숙했다. 코난북스의 이름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이름 옆에 ‘용기와 지혜의 세계’라는 설명이 붙었다.

많은 출판인이 ‘내년이 기대되는 신진 출판사’로 코난북스를 꼽았다. 최근 강원도 고성에 출판사를 차리고 화상 경험자의 인터뷰집 등 눈길 가는 책을 펴낸 온다프레스가 근소한 차이로 그 뒤를 이었다. 이정규 코난북스 대표(사진)에게 소식을 전하자 살짝 주저하는 기운이 느껴졌다. 직접 만나 이유를 물었다. “‘아무튼 시리즈’로 인터뷰를 몇 차례 했는데 그때 이후 달라진 게 있나 생각해보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았어요. ‘뭘 하겠다’는 계획보다는 ‘뭔가 했다’는 결과로 말해야 하잖아요.” 그럼에도 이번 결과는 의미가 있었다. “그 많은 출판사 중에 편집자들이 코난북스를 다시 언급했어요. 이름을 아는 출판사는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이제 매듭을 하나 짓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정규 대표가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둔 건 서른한 살 때였다. 기자가 되기 위해 1년간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다 출판계에 발을 들였다. 보통 편집자는 교정 교열부터 시작하는데 처음부터 기획안을 만들었다. 주목되는 책을 여러 권 제작했다. 야구로 치면 데뷔전에서 홈런을 친 넥센 히어로즈의 이정후 선수에 비견할 만했다. 과연 혼자서도 가능한가, 회사의 힘이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두 군데 출판사, 경력 5년 만에 새로운 출판사를 차렸다. 선배 편집자는 원고를 줄 수 있는 저자 다섯 명이 있으면 출판사를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편의점보다 적은 자본으로 할 수 있고, 아는 분야였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만든다.’ 코난북스가 책을 만드는 기준이다. 이 대표가 궁금한 것, 읽고 싶은 책을 만든다. 첫 책은 <날씨 충격>이었다. 예전부터 기후변화에 관심이 있었다. 거대 담론 말고 일상생활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 홀로 부모를 떠안다>도 그의 부모가 칠순에 접어들 무렵 관심을 가졌던 주제다. 
코난북스가 만든 17권 중 15권이 국내 저자의 책이다. 이 대표는 한국의 사회과학에 관심이 많다. “외국 유명 저자들이 많지만 한국의 상황은 특수해요. 선도적 이론이라면 외서를 보여줄 필요가 있지만 제가 알고 싶은 교양의 수준에서는 의령, 경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심이 가요.” 코난북스의 책 중 절반 이상이 저자의 첫 책이다.

ⓒ시사IN 이명익

출판인들이 코난북스를 꼽으며 가장 많이 언급한 것은 ‘아무튼 시리즈’다. ‘유독 출판인들 사이에서 계속 인기인 아무튼 시리즈. 소소한 것을 곰살맞게 엮어내가는 솜씨가 놀랍다’ ‘작년에 시작된 ‘아무튼’ 시리즈의 인기는 내년에 만개할 것’ ‘아무튼 시리즈 중에서 가장 웃기는 책은 다 코난북스에서 나왔다’ 같은 반응이었다. 이 대표는 웃긴다는 반응이 특히 뿌듯했다. 읽는 시간이 재미있으면 됐다. 사용자의 경험이 독서 경험이고 그 시간이 좋았다면 9900원의 가치는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에게 합당한 대우 해주는가” 고민

‘아무튼 시리즈’를 제안한 건 이정규 대표였다. 출판 도매업체인 송인서적이 부도나던 시기다. 코난북스는 ‘고난북스’가 아니냐 싶을 정도로 부모 돌봄, 청년 난민 등 우울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경쾌한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서 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위고·제철소·코난북스 세 출판사가 함께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를 담은 에세이 시리즈’를 만들기로 했다. 아이디어를 던져놓고 ‘기삿감’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낱개로 떨어져 있으면 어려워도 덩어리로 하면 재밌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첫 책은 <아무튼 피트니스>였다. 류은숙 인권운동가와는 이전 출판사에서 인연이 닿았다. 피트니스를 통해 삶이 변해가는 걸 옆에서 보니 얘기가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금정연 서평가는 자주 타고 다니는 택시를 소재로 쓰겠다고 제안했다. 2017년 9월부터 시작된 아무튼 시리즈는 올해까지 총 18권이 나왔다. 코난북스의 아무튼 시리즈 저자는 한 명 빼고 여성이다. 단행본도 1980년대생 여성 중심이다. 건강한 세계관을 가진 젊은 여성 저자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출판계 베스트셀러 저자들도 노령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젊은 저자를 발굴해 같이 커나가는 것도 코난북스의 위치에서 할 만한 일 같았다.

이정규 대표의 ‘아무튼’은 수영과 닥스훈트다. 출판사를 시작하며 수영을 배웠다. 물속에 들어가는 한 시간, 잠시 일에서 놓여났다. 전화기가 없으면 불안한데 거기에 있는 동안은 팔과 다리의 감각만 생각할 수 있는 게 좋았다. 닥스훈트는 그가 키우는 개의 종이다.
올해는 독립출판과 상업출판의 경계가 흐릿한 해였다. 특색 있는 저자들이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출판을 했다. 이 대표의 고민이 깊어졌다. ‘내가 했으면 작가들이 직접 하는 것보다 잘 팔았을까? 저자가 이름 있는 경우 출판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뭘까? 오히려 저자에 기대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작은 출판사는 점점 위기가 아닐까?’ 질문이 꼬리를 이었다. “그냥 패스해도 그만인 출판사가 되지 않으려면 무언가 성과를 보여줘야죠.” 출판사로서 생존의 가능성은 찾았지만, 필자에게 합당한 대우를 해주고 있는가 생각해보면 한계를 느낄 때가 있다.

1인 출판사라는 호명에도 의문이 든다. “식당으로 치면 국물이 맛있는, ‘면발 쫄깃한 식당’이 아니라 ‘혼자 하는 집’이라는 간판 거는 게 과연 바람직한지 모르겠어요. 영세함으로 승부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것 같고 작은 출판사가 아니라 재밌고 의미 있는 걸 만드는 출판사로 바꿔야 하는 숙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올해는 ‘아무튼 시리즈’만 세 권을 냈다. 내년에는 단행본을 비롯해 6권 이상 내려고 한다. 내년 초에 조선소 크레인 사고 이후 현장 노동자들이 겪는 트라우마를 담은 인터뷰집이 나올 예정이다.

얼마 전 사업자 통장을 개설할 때 만든 체크카드의 유효기간이 만료되었으니 갱신하라는 문자가 왔다. 첫 책을 만들기 직전 발급받은 카드로, 5년 만이었다. 시간이 흘렀다는 걸 실감했다. 최근에는 박태근 알라딘 MD와 <아무튼, 트위터>의 저자 정유민 편집자가 <아무튼, 팟캐스트>를 시작했다. ‘아무튼’ 시리즈의 저자를 초청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다. 함께 도모하기를 즐기는 코난북스의 곁에 또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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