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사유와 문장을 만져보고 싶다
  • 임지영 기자
  • 호수 589
  • 승인 2019.01.10 14: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캡슐 커피 머신을 어떻게 작동시킬 것인가. 김원영 변호사와의 만남은 그것에 대한 논의로 시작되었다. 서울대 인권센터의 한 회의실이었다. 캡슐을 넣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물 넣는 걸 깜박해 실패한 참이었다. 마침내 묵직한 진동과 함께 커피가 흘러나왔다. 인권센터는 그가 종종 들르는 공간이다. 학내에서 드물게 차 한잔 기꺼이 내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인권센터 홈페이지 첫 화면에 걸린 토론회 사진 속에도 그가 보였다. 센터는 가끔 그에게 장애인 인권과 관련해 조언을 구한다.

<시사IN>은 올해도 출판인들에게 기획편집자로서 꼭 한번 같이 책을 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필자를 물었다. 많은 이들이 김원영 변호사를 지목했다. 그의 책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은 출판인이 꼽은 올해의 책 국내서 부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담당 편집자가 기뻐하며 좋은 소식이라 문자 대신 전화를 한다고 연락해왔다. 설문에 응한 한 편집자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인간과 비인간, 장애와 비장애 등 경계들에 대한 탁월한 통찰, 마음을 울리는 문장력, 자신의 메시지를 명료하게 끝까지 밀고 나가는 치밀한 논리 구성력 등등 저자로서 갖춰야 할 모든 것을 갖췄다.” 또 다른 편집자는 그의 사유와 문장을 만져보고 싶다고 고백했다. 편집자들의 의견을 들려주자 그가 말했다. “놀랍네요. 제가 책을 많이 낸 사람이 아니어서 독자의 반응 하나하나도 좋은 걸 보면 엄청 설레는데요. 그중엔 저희 편집자가 쓴 것같이 보이는 것도 있지만요(웃음).”

ⓒ시사IN 신선영김원영 변호사는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펴냈다.

‘몸으로 쓰는 글은 절대 이길 수 없다.’ 이런 반응도 있었다. 장애가 있는 그가 장애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김원영 변호사는 골형성부전증으로 지체장애 1급이다. 열다섯 살까지 병원과 집에서만 생활하고 검정고시로 초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중학교는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에서 마쳤고 일반 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일했다. 지금은 법학박사 과정을 밟는 중이다.

그는 이 책에서 실격당한 인생이라고 낙인찍힌 장애인의 삶을 변론한다. 책에서 말하는 ‘실격당한 삶’ ‘잘못된 삶’은 ‘존중받지 못하는 삶’이다. 이들은 개별적 존재로 인정받지 못한다. 다수가 혐오하는 성적 지향과 정체성을 가진 사람, 장애나 질병을 가진 사람 대부분이 그렇다. 애초 책을 쓸 때부터 생활에 밀착된 체험과 추상적인 이론을 책 한 권에 담고 싶다는 욕심을 냈다. “장애라고 하는 개념 자체가 물적으로 다가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추상적인 권리 담론이 아니라 피와 살로 구성된 사람의 경험으로 다가오길 바랐죠.” 다만, 앞으로 10년간 ‘몸으로 쓰는 글’을 다시 쓰긴 어려울 것 같다.

책 서문에서 그는 말한다. ‘나도 다른 이들처럼 인공지능이나 부동산 투자, 드론의 원리에 대해 공부하고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앞으로 내가 어떤 삶의 길을 가든, ‘잘못된 삶’에 대해 한 번은 제대로 말해야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장애인 권리에 대한 이야기는 자주 나왔고 앞으로도 할 기회가 많을 것 같은데,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조차 ‘동등한 권리가 있지만 같이 놀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추하고 불쌍해 보이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 문제까지 다루는 글을 꼭 쓰고 싶었다. ‘장애와 아름다움’에 대한 주제까지 다뤘다. 아쉬움은 있지만 후련하다.

주류 언어로 말하는 마이너리티의 삶

장애와 관련된 다양한 쟁점을 다루고 있어서 책의 밀도가 높다. 여러 주제를 체계적으로 논증해서 낸 책은 아니다. 다만 평면적으로 이해하고 있던 장애인의 삶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제일 좋은 방법은 장애인이 등장하는 복잡한 소설을 쓰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재주는 없어서 장애라고 하는 인간적 경험을 둘러싼 각종 논의와 사례들을 죽 던졌어요. 개별 쟁점에 대한 답을 다 갖게 되지 않더라도 그 질문들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장애라고 하는 속성, 혹은 개별 경험이 이렇게 복잡한 거구나 하고 느끼길 바랐어요.”

사회학적 이론도 자주 등장한다. 경험을 날것으로 드러내는 것도 중요한데 학술적 언어를 동원해 그것을 해석하는 책도 있었으면 했다. 공부하는 처지에서 번역가가 되고 싶었다. 경험과 이론 사이, 양쪽의 언어를 모두 구사하는 번역가를 의미한다. 특수학교에 다닐 때의 친구들과 일반고, 서울대, 로스쿨을 지나며 만난 사람들 사이 갭이 컸다. 주류의 언어로 마이너리티의 삶을 가치 있게 서술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장애가 없는 독자나 장애 담론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장애 경험의 입체성을 깊이 있게 전달하고 싶었던 목표는 기대 이상으로 이루었다. 마이너리티를 다뤄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1만 권 이상 나갔다. 장애인 당사자 독자들은 미묘하다. ‘장애 극복 스토리’가 아닌 책이 이 정도로 주목받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이야기해주는 사람도 있지만, 장애인 당사자에게 얼마나 가닿을 수 있는 글인가 냉소하는 이도 있다. ‘엘리트 장애인의 작업’이 아닌가, 그렇게 느끼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책에는 소송 이야기가 나온다. 장애가 있는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자,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나았다는 생각으로 산부인과 의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이다. 그도 로스쿨 1학년 때 수강한 민법 수업에서 이 소송을 처음 접했다.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 배상을 다루는 부분에서 장애인이 자주 등장했다. 강의실을 통틀어 휠체어에 앉은 사람은 혼자였다. 교수가 조심스럽게 얘기하는 게 느껴졌다. 장애인을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작가는 묻는다. ‘장애아가 태어나는 순간도 비장애아의 탄생과 마찬가지로 축복과 기대, 희망과 사랑으로 가득한 경이로운 시간으로 기억할 자신이 있는가?’
 
사회학을 전공한 그가 변호사가 된 이유가 있다. 대체로 사정이 여의치 않고, 교육수준이 높지 않은 장애인 친구들과 친척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모두 그에게 물었다. 서울대에 다닌다는 이유에서다. 사회사상 이론을 ‘허세스럽게’ 공부하는 대학생이었는데, 푸코를 안다고 해서 친구 아버지의 밀린 임금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웠다. 휠체어가 집안 어딘가를 긁어놓았다며 임차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겠다는 집주인과의 갈등을 해결할 수도 없었다. 뭔가 현실적인 도구를 가져야 했다.

ⓒ연합뉴스12월10일 장애등급제 폐지를 요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실제로 많은 문제가 해결되었다. 로스쿨 학생만 되어도 알 수 있는 걸, 그동안 몰라서 해결하지 못한 게 많았다. 로스쿨이 도입되었을 때 ‘마이너리티’ 의 진입 장벽이 낮다는 걸 홍보했다. 경제적 취약계층에게 장학금을 주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그도 도움을 받았다. 변호사라는 정체성이 강하지는 않고 생계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수단이다. 법을 이해함으로써 과거보다 현실의 언어를 이해하게 되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를 갖게 된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학술 작업을 잘하고 싶다. 논문 형식이든 책의 형식이든 기록을 남기고 싶다. 연극 연출 같은 예술 활동에도 욕심이 있다.

그의 책에 등장하는 서늘한 단어들

그의 책에는 노련함과 우아함, 성찰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얼핏 좋은 말 같지만 서늘한 단어다. 누구나 사회적 관계 속에서 연기를 한다. 무대 위 배우처럼 배역을 수행하고 자신을 통제한다. 이런 능력을 성찰이라고 한다. 그게 발달하면 노련함이 생긴다. 김원영 변호사 역시 노련함을 유지하기 위해 자아성찰을 해왔다. 신체적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선 정신적 매력이 넘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수통을 갈지 못하는 대신 동료 생일이라도 잘 챙겨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졌다. 재밌는 연극을 볼 때도 연극이 아니라 ‘나’를 보고 있었다. “뒷자리에서 나를 볼 때 쭈그리같이 보이지는 않나. 콘서트장에서 노래를 따라 부르는 와중에도 장애인이 공연장에 와 있는 게 이상해 보이진 않을까. 끊임없이 성찰을 했어요. 그게 너무 피곤했고 지금도 완전히 자유롭지 않아요. 소수자이지만 뭔가 세련되고 품격 있게 살아가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이 있어요.” ‘장애인 이동권’을 확보하기 위해 지하철역을 점거하는 장애인들을 봐도 서러움에 공감하지만 눈물이 나지 않았다. ‘내가 나를 지켜보고 있어서’였다. 인생 자체가 퍼포먼스다.

김원영 변호사는 4년여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으로 일하며 정신병원을 많이 다녔다. 가족 두 사람이 입원을 신청하고 의사가 진단하면 강제 입원이 될 수 있다. 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정신질환자임을 인정하고 자발적인 치료를 받겠다고 선언하는 것. 정신보건정책이나 제도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다. 그동안 장애인 인권운동의 리더들은 남성 장애인이었다. “그들이 존엄성을 정당화하는 방식은 ‘몸은 불편하지만 정신은 건강하고 뛰어나다’는 거였어요. 저도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고요. 정신장애인 문제를 알게 되면서 장애인 인권에 대한 시각을 재구성하게 됐어요.”

장애인 인권과 관련해 젊은 세대의 관심이 커졌다. ‘실격당한’ 상태에서 벗어나는 과정이기도 하다. 우려는 있다. “예전엔 지지자도 적었지만 악을 쓰고 반대하는 사람도 적었는데, 지지자가 늘었지만 적극적으로 싫어하고 혐오하는 사람의 수도 늘어났기 때문에 걱정되는 면도 있어요.” 법철학을 공부하는 그의 최근 관심사는 정신장애를 가진 이들의 자기 결정권에 관한 것이다. 철학적인 수준에서 이들의 자율성이 무엇인지 논의가 부족했다. 아직 예정된 출간 일정은 없다. 책을 쓰는 데 재미 들리면 내공 쌓는 걸 게을리할까 봐 염려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1~2년에 한 권씩 내고 싶은 욕심도 있다. 후자의 욕망이 강해지길, 많은 출판인이 바라고 있다.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