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는 것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나는 것과 같고 죽는 것은 한 조각, 구름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 구름이 실체가 없는 것처럼 나고 죽는 것 또한 실체가 없다(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然, 서산대사 임종게).”

고승이라는 서산대사도 임종에 이르러서야 깨달은 것을 시인의 아버지는 너무 일찍 깨달아버렸다. 나고 죽는 것이 실체가 없듯이 삶 또한 실체가 없으니 뜬구름 아니면 또 어떤 삶을 살 수 있었을까.
“구름처럼 살다가 평생 동안/ 구름 하나 잡지 못한 아버지처럼/ 구름은 쉴 새 없이 무언가를 만들고/ 부수어 다시 만들었다....// 아버지의 족보는 구름 족보였다// 중요한 것은 지금 없단다(‘구름 사냥꾼 1’).”
“중요한 것은 지금 없단다.” 이보다 더 진한 삶의 진실이 어디 있으랴. 중요한 것은 지금 없으니 어찌 지상에 발 디디고 살아갈 수 있으랴. 그래서 시인의 아버지는 뜬구름처럼 살다 갔다. 실상은 살았던 것도 아니고 살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나고 죽는 것 또한 실체가 없으니. 어디 시인의 아버지뿐이겠는가. 삶이란 어떠한 삶도 모두 구름인 것을.

모였다 흩어지고 또 모였다 흩어지며 부유하는 삶들. 부유하는 듯하지만 실상 부유하지도 못하는 삶들. 그 또한 지구라는 행성 안에서 무한 반복이 아니던가. 정처도 무정처도 아닌 삶! 하여 시인의 고향 자응(장흥) 땅의 널평네 양반네 또한 그리 살아가는 것이다.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이대흠 지음
창비 펴냄


“널평네 양반 돼지 한 마리 팔고 오는 길에// 젤 먼저 국밥집 들러 막걸리 두 되 마시고 현찰로 줘불고/ 밀린 술값까지 탈탈 털어 쥐알려불고/ 내친김에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종재기골 양반네 막걸리 값까지 개러불고/ 종묘상 들러 고추 모종값 갚어불고/ 지전머리 단골 점방에 가서 묵은 외상값 죽에불고/ 방엣간 떡값 밀린 거 잉끼레불고/ 농협에 가서 비료값 꼬랑지 짤라불고/ 쐬주 두 병 사 엄버줌서 괴춤 또 풀어불고/ 풍로 바람에 검불 날리대끼 다 까묵어불고/ 빙골로 돌아가는 저 늦가을 들녘(‘늦가을 들녘’).”

우리가 글은 모를지언정 사랑은 좀 알아서 지옥 같은 세상이라도 견디며 살아볼 만하다고. “한글 배우러 다니는 남평 할머니// 아버지를 아버지로/ 어머니를 어머니로 똑바로 잘 썼는데/ 남편을 쓰랬더니/ 또박또박/ 나편이라고/ 바르게 틀렸다// 남편을 써보라니까요/ 다시 말해도/ 어떻게 영감님을 남의 편이라고 하냐며/ 그건 잘못된 말이라고/ 끝까지 나편이란다(‘남편과 나편’).” 


기자명 강제윤 (시인·섬연구소 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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