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문구 탓에 대한민국 시끌벅적
  • 이상원 기자
  • 호수 590
  • 승인 2019.01.08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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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와 김태우 전 특감반원은 ‘(감찰 대상인) 대통령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 정치인이 포함되느냐를 놓고 격돌하고 있다. 그러나 참여정부 때 이미 정치인은 감찰 대상에서 제외했다.
지난 12월26일 검찰이 청와대를 압수수색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처음이다. 검찰은 필요한 증거물 목록을 청와대 측에 제시하고 임의제출받는 형식으로 영장을 집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12월20일에는 자유한국당이 임종석 비서실장, 조국 민정수석,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등을 직권 남용·직무유기 등 혐의로 고발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청와대가 민간인 사찰을 했고 정권 실세들의 비리는 묵살했다는 게 명백히 드러났다”라고 말했다.

논란의 한가운데 선 인물은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인 김태우 수사관이다. 검찰 6급 수사관 출신으로 지난 1년6개월간 청와대 특별감찰반(특감반)에 파견됐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청와대 특감반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인물이다.

ⓒ연합뉴스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지난 12월23일 ‘특별감찰반 첩보 이첩 목록’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사건 경과를 되짚어보자. 2018년 11월29일 청와대는 김 수사관을 포함한 반부패비서관실 특감반 전원을 교체한다고 발표했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조사 결과, 2018년 10월 김 수사관이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가서 지인의 수사 진척 상황을 문의했다는 것이다. 언론은 사정기관에서 흘러나온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다. 김 수사관과 다른 특감반원들이 근무시간에 골프를 쳤다는 내용이었다. 이때까지 초점은 ‘청와대 안 공직 기강 해이’에 맞춰졌다.

청와대와 김태우, 엎치락뒤치락 공방 

그런데 김 수사관이 입장을 밝히면서 사건은 새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12월15일 <조선일보>가 김 수사관의 제보를 보도했다. 알려진 바와 달리 자신은 비위가 아니라 “현 정부에서 미움을 받아” 경질됐다는 주장이었다. 김 수사관은 자신이 2017년에 쓴 우윤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현 주러시아 대사) 관련 첩보 보고서가 계기라고 주장했다. 우 대사가 2009년 한 건설업자에게 취업 청탁과 함께 1000만원을 받았다가 2016년에 돌려줬다는 내용이다. 김 수사관은 직속상관인 이인걸 특감반장에게서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조국 민정수석, 임종석 비서실장에게도 이 내용이 전달되었다”고 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우 전 의원을 주러시아 대사 자리에 앉혔고, 보고서를 쓴 자신은 윗선의 미움을 샀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연합뉴스검찰 관계자들이 청와대 특감반 사무실에서 압수품을 가지고 나오고 있다.
정부 인사 검증 라인이 고위직 인사 후보자의 비리에 눈감고, 대신 이 사실을 보고한 감찰반원을 잘랐다면, 청와대 말단 직원의 경찰청 방문이나 골프 회동 문제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의혹이다. 보도 직후 ‘김 수사관의 경질이 보복성인지 아닌지’가 큰 쟁점으로 떠올랐다.
청와대는 당일 해명에 나섰다. 첫째, 2017년 우윤근 대사와 관련된 해당 보고서의 내용을 검토했고,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박근혜 정부 당시에도 검찰이 이 건을 조사했으나 모두 불입건 처리했다는 게 중요한 근거였다”라고 주장했다. 둘째, 애초 우윤근 대사는 청와대 특감반의 감찰 대상에 속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관계법령에 특별감찰 대상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사람’으로 정해져 있다. 국회 사무총장(우윤근 대사의 당시 직책)이 대상인 특별감찰은 불법이다.” 김태우 수사관이 업무 범위를 벗어나는 첩보를 가져왔다는 의미다.

반면 김 수사관은 같은 규정을 근거로 적법한 감찰 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12월17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특감반 감찰 업무 직제엔 ‘대통령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자’도 포함된다. 우 대사는 이번 정부 비서실장으로도 검토됐던 사람이다. 직제에 ‘대통령 특수관계자’를 규정한 건 그만큼 청와대가 대통령 업무를 위해선 엄정한 감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감반의 감찰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이날 <조선일보>에는 김태우 수사관이 특감반에서 작성했다는 ‘첩보 보고서’ 목록이 실렸다. 전직 총리 아들의 개인 사업 현황, 개헌에 대한 각 부처 동향, 은행장 동향 등이 포함돼 있었다. <조선일보>는 이들이 “순수 민간인으로 특감반 감찰 대상이 아니며, 부처 동향 파악도 직무 범위 밖이다”라고 썼다. 민간인을 대상으로 불법 사찰을 했다는 것이다. 참여정부의 전직 고위 공직자와 그 가족의 가상화폐 투자 동향을 수집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제 쟁점은 ‘문재인 정부가 민간인을 사찰했는지’로 확장됐다.

12월18일 김의겸 대변인은 “문재인 정부의 유전자에는 애초에 민간인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해명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는 가상화폐 관련 보고서와 나머지를 분리했다. 김 수사관이 공개한 대부분의 첩보는 ‘상부 지시 없이 모은 자료였고, 보고하자마자 바로 폐기되어 정보로 쓰지 않았다. 가상화폐 관련 보고서는 정책 수립을 위한 기초 자료 수집을 위해 지시한 것’이었다. 특감반원은 민정수석실에 소속된 행정요원이기도 해서 ‘감찰’이 아닌 ‘기초 자료 수집’도 수행한다는 주장이다. 김의겸 대변인은 “청와대 등 권력기관 지시에 따라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특정 민간인을 목표로 이뤄져야” 민간인 사찰이며, 문재인 정부의 특감반 활동은 여기 해당하지 않는다고 브리핑했다. 다음 날인 12월19일 청와대는 김태우 수사관을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연합뉴스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위)은 ‘정치인 특별감찰은 불법’이라고 말했다.
김태우 수사관이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형사 절차에서 밝혀질 전망이다. 반면 특감반이란 조직의 감찰 범위를 둘러싼 법 해석 다툼은 미리 가늠해볼 수 있다. 청와대와 김 수사관이 함께 언급한 규정은 ‘대통령비서실 직제’라는 대통령령이다. 제7조 1항 특별감찰반의 감찰 대상은 ‘1. 대통령이 임명하는 행정부 소속 고위 공직자 2.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공기관·단체 등의 장 및 임원 3. 대통령의 친족 및 대통령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다. 청와대는 1호와 2호 규정을 들어 우윤근 당시 국회 사무총장이 감찰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반면 김 수사관은 3호를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 ‘특수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라는 문구가 모호해서 생긴 혼선이라고 읽을 수도 있다.

그런데 법을 고쳐야 해결되는 갈등으로 보기엔 찜찜한 지점이 있다. 특감반이 시작되면서 이미 해당 규정의 해석 사례를 못 박은 바 있기 때문이다. 고위 공직자나 대통령 친인척을 감찰하는 조직은 이전에도 있었으나 대통령령에 감찰 대상과 업무 범위를 규정해 공개 운영한 것은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였다. 2003년 브리핑에서 “감찰반의 권한 남용을 방지하고 국민의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방침을 정했다”라고 설명한 당사자가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이었다. <연합뉴스>는 2003년 3월19일 ‘특수관계자’에 대한 문재인 민정수석의 해석을 이렇게 보도했다. “일반 국민과 정치인, 기업인 등은 아예 감찰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따라서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 등 특수관계인이라도 정치인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 기준에 따르면 대사 임명 전 ‘정치인’ 신분이었던 우윤근 의원은 특수감찰반이 감찰해서는 안 된다.

특감반의 감찰 범위에 대한 규정은 15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2003년 조항에는 포함돼 있던 ‘대통령비서실 직원’이 빠져 범위가 좁아졌다. 그런데 김 수사관은 감찰 범위 밖에 있는 우윤근 대사와 전직 참여정부 인사, 민간인에 속하는 인물을 감찰했다. 규정이 바뀌지 않았다면 가능성은 두 가지다. 김 수사관 개인이 법령을 오인(또는 왜곡)해 시키지 않은 일을 했거나, 어느 시점부터 조직이 공유하는 감찰 범위가 당초 설계보다 넓어졌다.
김 수사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좋아하지도 않는 것(민간인 첩보)을 왜 썼겠나? 윗선 허락이나 보고 후에 쓴 것이며 일부는 먼저 알아보라고 지시가 내려왔다”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은 ‘특별감찰반 첩보 이첩목록’이라는 문서를 그 증거로 들었다. 김 수사관이 작성한 첩보 14개의 제목과 일자가 적혔는데, 그 대상 중 민간인인 박용호 당시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장이 있었다. 이 문서에 이인걸 특감반장의 서명이 쓰인 게 청와대의 조직적 민간인 사찰 증거라고 자유한국당은 주장한다.

그런데 박용호 센터장 관련 첩보는 김 수사관이 청와대에 파견 오기 전, 검찰에서 수집한 정보라는 사실이 보도됐다. 12월24일 YTN에 따르면, 이인걸 전 특감반장은 “김태우 수사관이 승진을 위해 대검찰청에 실적을 제출해야 하니 도와달라고 사정해서” 서명했다고 주장했다(이인걸 특감반장은 김 수사관의 폭로 이후 사의를 밝혔고 지난 12월20일 사표가 수리됐다). 게다가 김 수사관이 ‘실적’을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14일 언론에 보낸 ‘기자회견문 초안’이라는 글에서 그는, 비위 사실로 알려진 경찰청 방문이 “내가 작성해 경찰청에 이첩된 사건의 실적 조회”를 위해서였다고 썼다.

민간인 사찰 막을 뾰족한 방법 없어 

12월27일 대검찰청 감찰본부(본부장 정병하)는 ‘청와대 특감반 관련 비위사건 감찰 결과’를 발표했다. 감찰본부는 대검 징계위원회에 김태우 수사관을 해임하도록 요청했다. 지인에 대한 경찰 수사와 관련한 부당한 개입 시도, 향응 수수 등 당초 제기된 김 수사관의 비위 의혹 대부분을 사실로 판단했다. 특별감찰반 감찰 첩보를 외부로 유출한 것 또한 인정했다.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 여부는 자유한국당이 청와대 관계자들을 고발한 사건과, 청와대가 김 수사관을 고발한 사건 등을 수사하면서 밝혀질 예정이다. 김 수사관이 ‘윗선의 지시’를 입증하기는 녹록지 않아 보인다. 12월24일 김 전 수사관의 법률대리인인 석동현 변호사는 첫 기자회견 자리에서 “문서나 통화 형태의 증거를 제시하기 어렵다. 소위 동향 파악, 첩보 작성에 함께 사용한 메신저 프로그램이 있는데 주고받은 내용을 특별감찰반이 모두 삭제했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향후 형사 절차에서 민간인 사찰이 김태우 수사관 개인 일탈로 입증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제도상 특별감찰반의 민간인 사찰을 막을 뾰족한 수가 없다. 정부는 ‘대통령비서실 직제 일부 개정령’을 12월24일 공포했다. 특별감찰반이란 명칭은 ‘감찰반’으로 바뀌고, 공무상 비밀 엄수, 직권남용 금지, 부당이득 획득 금지 등이 적혔다. 그러나 가장 논쟁이 될 만한 부분은 명시되지 않았다. 가령 ‘감찰반의 감찰 행위’란 무엇인지, ‘정책 수립을 위한 기초 자료 수집’과 어떻게 다른지 개정령은 논하지 않는다. 감찰반원들이 민정수석실 산하 다른 부서의 업무를 수행하는지도 불분명하다. 법령 소관부서인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감찰의 정의는 감사원 규칙에 적혀 있는데, 대통령비서실 직제에도 준용할 수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감찰반원의 업무 범위는 대통령비서실장이 정하며 공개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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