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뒤흔든 ‘국경의 남쪽’ 사정
  • 이종태 기자
  • 호수 590
  • 승인 2019.01.09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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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국경이 브렉시트 최대 난제로 떠올랐다. 두 지역의 ‘보이지 않는 국경’이 ‘하드 보더’로 전환되면 영국은 심각한 경기침체를 맞게 된다. 세계 금융시장이 흔들릴 수도 있다.

아일랜드 섬은 영국 본토(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지역으로 이뤄진 ‘그레이트브리튼 섬’) 서쪽에 있다. 섬의 북부는 영국의 일부인 북아일랜드다. 그 남쪽으로 펼쳐진 지역은 독립국인 ‘아일랜드공화국(이하 아일랜드)’.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의 국경이 2019년 3월29일로 예정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에서 최대 난제로 떠올랐다.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는 국제법상 다른 나라이지만 그 국경에는 세관도 보안검문소도 없다. <이코노미스트> 자료에 따르면, 연간 1억여 명과 차량 7200만 대가 어떤 통과 절차도 없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든다. 상품도 마찬가지다. 국가는 다른 나라의 상품을 수입하는 경우, 해당 상품을 이중적 차원에서 ‘체크(check)’한다. 하나는, 관세 부과다. 다른 하나는, 자국과 규제 시스템이 다른 나라의 수입품에 대해 ‘제조 표준’을 확인하는 절차다. 예컨대 유전자조작 식품(GMO) 규제가 강한 나라는, 해당 규제가 느슨한 국가에서 제조된 농산물이 자국의 제조 표준과 다르면 수입을 차단할 수 있다.

ⓒEPA2018년 11월29일 런던 국회의사당 앞에서 브렉시트 반대파들이 ‘우리에겐 EU가 필요하다’라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가 속한 영국)는 둘 다 유럽연합 회원국이다. 관세동맹인 유럽연합의 회원국들은 상품 수출입에 서로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제조 표준의 경우, 유럽연합 차원에서 제정한 규제 조항이 모든 회원국에 적용된다. 즉, 회원국의 규제 시스템이 동일하다.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는 관세 및 규제 측면에서 상대측의 상품을 체크할 필요 자체가 없다. 두 지역은 마치 한 나라인 것처럼 경제적으로 통합되어 있다.

그런데 영국 본토와 북아일랜드가 공식적으로 유럽연합을 떠나는 날이 결정되어버렸다. 2016년 6월의 국민투표로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한 이후, 영국은 유럽연합 측과 ‘이혼 조건’을 협상해왔다. 지루하고 아슬아슬한 협상이 마무리된 2018년 11월25일 발표된 ‘브렉시트 협정문’ 초안에 따르면, 영국의 탈퇴일은 2019년 3월29일로 결정되었다. 아일랜드는 이후에도 여전히 유럽연합 회원국이지만 북아일랜드는 비회원 상태가 된다. 원칙적으로 양측은 각각 국경에 세관, 검문소 등을 설치해서 인력과 상품의 이동을 통제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국경(invisible border)’이 ‘하드 보더(Hard Border:통행과 통관을 엄격히 규제)’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아일랜드 섬의 경제적 통합성이 해체되면 매우 심각한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탈퇴하자마자 당장 재앙이 아일랜드 섬을 덮치지는 않을 것이다. 영국과 유럽연합 양측이 협정문에 2020년 마지막 날까지 1년9개월의 ‘이행 기간’을 설정해놓은 덕분이다. 영국은 유럽연합과 ‘새로운 무역협정’을 체결하면서 이에 자국 내 기업을 적응시키는 데 필요한 시간이다. 이행 기간에 영국은 유럽연합과 탈퇴 이전의 관계(관세동맹, 유럽연합 규제 준수)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 즉, 협정문이 영국 의회에서 비준되어 효력을 얻으면, 브렉시트 이후에도 2020년 12월31일까지 실질적인 변화는 발생하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는 이행 기간에 양측이 새로운 무역협정을 성공적으로 체결할 수 있느냐이다. 협정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인 ‘아일랜드 섬 국경선’ 문제의 해결이 지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유럽연합 회원국인 아일랜드는 ‘하드 보더’가 현실화하면 최악의 경제 충격이 발생할 것을 우려한다. 유럽연합은 북아일랜드가 ‘보이지 않는 국경’을 이후에도 계속 유지할 것을 영국 측에 요구해왔다. 영국 본토가 어떻게 되든 북아일랜드만은 유럽연합의 관세동맹 및 규제 체계하에 그대로 두라는 것이다. 영국 정부로서는 수락할 수 없는 조건이다. 북아일랜드가 사실상 유럽연합의 경제권역으로 남으면, 관세 및 규제 측면에서 영국 본토와의 사이에 새로운 국경선이 그어진다. 영국으로서는 헌정 질서(‘북아일랜드는 영국의 고유 영토’)와 국가경제적 통합성을 위협받는 사태다. 그렇게 되면 영국은 유럽연합과 새로운 무역협정을 체결하지 못한 상태로 국제시장에 내팽개쳐진다. 경제적으로 분단된 아일랜드 섬은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된다.

브렉시트 지지파에게는 기가 막힌 상황

영국 테레사 메이 정부와 유럽연합 측은 이 같은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백스톱(backstop)’이라 불리는 일종의 안전장치를 브렉시트 협정문에 삽입했다. 이 방안의 핵심은, 새로운 무역협정이 2020년 말까지 합의되지 않으면 북아일랜드는 물론 영국 본토 역시 유럽연합 관세동맹에 계속 머무른다는 것이다. 메이 총리로서는 유럽연합의 압박에 못 이겨 북아일랜드만 관세동맹에 남기기보다는 영국 전체가 관세동맹을 유지하는 쪽이 국가적 통일성을 지키는 선택으로 보였을 것이다. 다만 제조 표준 부문에서는, 북아일랜드만 유럽연합의 규제 체계를 따르도록 허용하기로 했다. 영국 본토에서 북아일랜드로 수출되는 상품이 사실상 유럽연합의 규제 체계에 따라 체크된다는 이야기다. 예컨대 영국이 브렉시트 이후 자체적 규제 체계를 새로 만들면서 ‘특정 성분이 든 의약품’을 허용했다고 가정하자. 만약 그 성분이 유럽연합 규제에서 허용되지 않는다면, 영국 본토에서 북아일랜드로 해당 의약품을 이동시키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영국의 브렉시트 지지파에게는 기가 막힌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은 관세 부과 및 규제 설정 권한을 유럽연합으로부터 되찾기 위해 싸워왔다. 그런데 백스톱 규정에 따르면, 2020년 말 이후에도 영국의 관세 부과 권한이 유럽연합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영국 본토와 엄연한 자국 영토인 북아일랜드 사이에 ‘규제 장벽’이 세워지는 사태까지 발생할 수 있다. 비회원국으로 전환된 영국으로서는 유럽연합 규범을 정하는 데 어떤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하지만 유럽연합의 통제는 받게 된다. 더욱이 백스톱은 영국과 유럽연합이 새로운 무역협정에 합의해야 해제 가능하다. 무역협정을 타결하려면 ‘아일랜드 섬 국경선’부터 모든 협상 주체가 만족하는 수준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그렇게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브렉시트 지지파 의원들이 메이 총리에게 “영국을 유럽연합의 제후국(vassalage)으로 만들 작정이냐”라며 따지는 이유다.

테레사 메이 총리가 지난 12월11일로 예정됐던 ‘협정문 비준을 위한 의회 표결’을 연기한 것은 이런 반발 때문이다. 협정문이 의회에서 부결되면 영국은 유럽연합과의 이혼 조건을 다시 협상해야 한다. 더욱이 2020년 말까지라는 이행 기간도 사라진다. 이미 유럽연합 측은 ‘재협상은 없다’라는 초강경 방침이다. 예정된 탈퇴일까지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영국은 자칫 어떤 합의나 보장도 없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하는 ‘노딜(No Deal) 브렉시트’로 내몰릴 수 있다. 이 경우, 다른 개별 국가들과 일일이 무역협정을 새로 체결해야 한다. 외국 기업 철수로 인한 대량 실업은 물론 증권 및 부동산 시장 폭락 같은 사태가 전개될 수 있다고, 영국 중앙은행은 경고한다.


운명의 날은 2019년 1월 중순이 될 전망이다. 메이 총리는 1월14일로 시작되는 주간에 협정문에 대한 의회 표결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지 언론 분위기에 따르면 부결될 가능성이 높다. 노동당 등 야당이 협정문 초안에 비판적일 뿐 아니라 보수당 내에서도 반대 기류가 만만치 않다. 2019년 초, 브렉시트 협정문 부결 사태가 세계 금융시장을 강타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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