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도 누군가 ‘죽음의 라인’을 탄다
  • 전혜원·나경희 기자
  • 호수 588
  • 승인 2018.12.18 13: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화력발전소에서 하청업체 계약직으로 일하던 스물네 살 청년이 숨졌다. 안전한 설비로 바꿔달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고 이후에도 동료들은 컨베이어벨트에 투입됐다.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하청업체 계약직으로 일하던 스물네 살 청년 김용균씨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입사한 지 3개월 된 신입사원은, 밤중에 석탄을 옮기는 컨베이어벨트를 홀로 살피는 업무를 하다 연락이 끊겼다. 5시간여 지난 12월11일 새벽 3시23분 청년은 벨트 사이에 끼어 숨진 채 발견되었다. 홀로 일하다 숨진 외주업체 청년의 이야기에 사람들은 2016년 숨진 ‘구의역 김군’을 떠올렸다.

“서울에 와서 지하철 사고(구의역 사고) 이야기를 들었다. 안전은 균열 일터의 큰 문제다.” 오바마 정부 2기 노동정책을 총괄한 경제학자 데이비드 와일은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구의역 사고를 언급했다. 한때 대규모 인원을 직접고용하던 기업들이 고용을 밖으로 털어버리면서, 오늘날의 일터가 바위틈처럼 균열되었다고 와일 교수는 지적한다.

ⓒ시사IN 신선영

한전은 한때 대규모 인원을 직접고용했다. 2001년 한국서부발전 등 6개 공기업이 한전에서 분사했다. 한국서부발전은, 한국남동발전의 자회사였다가 2014년 사모펀드에 매각되면서 민영화된 한국발전기술에 발전기를 운영하고 유지·보수하는 업무를 하청 주었다. 3년짜리 입찰 계약이다. 김용균씨는 ‘한전 정규직’을 꿈꾸며 한국발전기술에 계약직으로 입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의 동료는 설비를 안전하게 바꿔달라는 요구를 회사에 수차례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현장 노동자가 작업환경 개선을 요구하자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이 ‘3억원 들어서 안 된다’고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태성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간사는 “원청은 공식적인 문서로는 지시하지 않지만 카카오톡으로는 하청에게 다 지시한다. 지금 한국서부발전은 3개 업체에게 하청을 줬다(한전산업개발, 한국발전기술, 금화PSC). 이 업체들의 재하청은 훨씬 많다”라고 말했다.

사고 이후 한국서부발전은, 자신들은 위탁을 주기 때문에 직원들을 어떻게 투입하는지까지 간섭하지 않는다고 언론에 설명했다. “보건안전에 관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거나 그러한 의무가 별로 없는 쪽에 일이 넘겨질 경우, 사고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데이비드 와일, <균열 일터>).”

모든 노동자를 직접고용하면 사고가 사라질까?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익과 책임의 균형을 어떻게 되찾을지에 대한 논의를 더는 미룰 수 없다는 것이다. ‘균열’을 만들어낸 사회가 스물네 살 청년에게서 받아든 숙제다.

태안·나경희 기자 didi@sisain.co.kr

ⓒ시사IN 이명익한국서부발전 태안 발전본부 석탄 운송 설비 컨베이어벨트 (가운데 ‘ᄂ’자로 꺾이는 지점)에서 김용균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9월17일 김용균씨(24)는 첫 출근을 했다. 군대를 제대한 뒤 6개월 동안 이곳저곳 서류를 낸 끝에 붙은 곳이었다. 한국발전기술(KEPS)은 충남 태안에 위치한 한국서부발전의 하청업체였다. 석탄을 나르는 컨베이어벨트를 감독하는 게 주 업무였다.

한국발전기술은 본사가 서울 여의도에 있고 직원이 750명인 ‘중견기업’이지만, 적어도 이곳 태안사업소에 입사하는 데 별다른 절차는 없었다. “연봉 협상을 하는데, 사실 협상이라기보다 통보에 가까웠죠. 이만큼 줄 수 있으니까, 금액을 확인했으면 출근하라는 식이었어요.” 김용균씨와 함께 일했던 이원태씨(28·가명)가 말했다(용균씨의 동료들은 실명 취재에 응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원청 업체인 한국서부발전 측이 사고 이후 직원의 입단속을 시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경북 구미에 살던 김용균씨는 회사에서 월세를 보조해주는 사택에 들어갔다. 회사 동료 한 명과 함께 원룸에서 살았다. 본가에 자주 가기엔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이원태씨는 “용균이가 내내 구미에 못 가다가 11월쯤에 예비군 훈련을 받으면서 집에 다녀왔다고 했다”라고 기억했다.

김용균씨는 매일 회사 셔틀버스를 타고 출퇴근했다. 그가 속했던 연료운영팀은 발전기 9~10호기를 담당했다. 4과(보통 ‘조’로 부르기도 한다) 2교대로 24시간 돌아갔다. 4개 과가 ‘주간-야간-휴무-휴무’ 체계에 따라 움직였다. 김씨는 ‘1과’에서 가장 어린 막내였다. 입사 당일, 회사는 발전소에서 전기가 만들어지는 이론적인 과정을 칠판에 그려 설명했다. 교육은 그게 전부였다.


ⓒ고 김용균씨 동료 제공컨베이어벨트에서 떨어진 ‘낙탄’이 쌓인모습.
화재가날위험이있기때문에낙탄을퍼내야한다.
김용균씨보다 2개월 먼저 들어온 이원태씨도 어깨너머로 자신의 업무를 ‘짐작’한 건 마찬가지였다. “입사 3일 후에 바로 현장으로 투입됐어요. 저보다 일찍 입사한 친구가 가르쳐준 길 하나만 외우고 들어갔어요. 모르는 건 그때마다 친구에게 전화해서 물어보고요.”

친구가 가르쳐준 ‘길’은 길었다. 항구로 들어온 석탄을 발전소까지 실어 나르는 컨베이어벨트 3~4㎞를 운전원 6명이 나누어 확인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는 누구’ ‘거기서부터 저기까지는 누구’ 이런 식으로 구역을 나눠서 맡은 구역을 혼자 책임진다. 김용균씨 구역은 컨베이어벨트의 방향이 90°로 꺾어지는 지점인 ‘트랜스퍼 타워’와 그 주변이었다.

업무는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연료운영팀의 주 업무는 컨베이어벨트를 비롯한 설비가 잘 돌아가고 있는지 순찰하는 것이지만, 온전히 점검에만 집중할 수 없었다. 컨베이어벨트에서 바닥으로 떨어진 ‘낙탄’이 쌓여 벨트에 닿지 않도록 삽으로 퍼내야 했다. 삽으로 퍼낸 낙탄은 많으면 가슴께 높이까지 쌓였다. 낙탄이 손이 닿지 않는 위치에 있으면 팔을 더 길게 뻗어야 했다. 몸이 점점 앞으로 숙여졌다. 이원태씨는 “그러다 컨베이어벨트에 삽이 빨려 들어갈 뻔한 적이 종종 있다”라고 말했다.

사실 낙탄을 처리하는 팀은 따로 있다. 연료운영팀보다 더 힘든 육체노동을 하는 낙탄처리팀은 한국발전기술의 하청을 받는 재하청 업체다. 하지만 늘 인력이 부족하다. 12월12일 오후 태안군 보건의료원 장례식장에서 유가족을 대신해 조문객을 맞았던 김용균씨의 동료 박준훈씨(38·가명)는 이전에 낙탄 처리원으로 1년 동안 일한 경력으로 한국발전기술에 입사했다. 바뀐 건 회사 이름뿐이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사람들과 일했다. 낙탄 처리원에서 운전원이 됐지만, 여전히 삽으로 석탄을 퍼내야 했다. 박씨를 비롯한 동료 운전원의 손바닥에는 늘 굳은살이 박여 있다.


12월10일 저녁 6시30분, 주간조였던 박준훈씨는 야간조인 김용균씨에게 업무 인계를 하고 퇴근했다. 평소처럼 ‘쉴 새 없이’ 일하던 김용균씨는 강만희씨(62·가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발전소에서 30년간 일하다 정년퇴직한 강씨는 4년 전 한국발전기술에 경력직으로 입사했다. 사전 교육 없이 투입돼 알음알음 업무를 익혀나가던, 입사 3개월차 신입인 용균씨는 “드레인(소방 라인)을 다룰 줄 모르니 좀 알려주세요”라고 강씨에게 전화를 했다. 하지만 이날 밤 10시40분, 강씨와 만나기로 했던 용균씨가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강씨가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용균씨는 응답하지 않았다. 현장에 이상이 생겼다는 보고를 받은 파트장 최 아무개씨(45)는 팀원 전체를 내보내 김용균씨를 찾았다.

12월11일 새벽 2시40분, 김용균씨를 찾지 못한 최 파트장은 상급자에게 보고했다.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한겨울에 이 시간이면 무슨 일이 난 게 틀림없습니다.” 40여 분이 흐른 새벽 3시23분, 김용균씨는 자신의 구역이었던 트랜스퍼 타워의 아이들러(벨트를 회전시키는 롤러) 아래에서 발견됐다.

박준훈씨는 용균씨가 아이들러를 점검하려다 벨트 사이에 끼인 것으로 추측했다. “비정상적인 소리를 내는 아이들러를 확인하고 정비하려다 사고를 당한 것 같아요. 순찰 업무 때문에 벨트 아래로 들어갈 이유는 없잖아요.”

ⓒ시사IN 이명익김용균씨의 빈소가 마련된 태안의료원 장례식장에서 조문객들이 문상을 하고 있다.

순찰이 주 업무인 운전원은 낙탄 처리에 정비 업무까지 떠안아야 한다. 웬만큼 큰 고장이 아니면 정비를 위해서 컨베이어벨트를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라인(컨베이어벨트)을 멈추면 우리가 그 시간만큼 할당량을 채울 수가 없어요. 우리가 하지 못한 몫은 고스란히 다음 교대조로 넘어가기 때문에 조끼리 감정이 상할 때가 있죠.” 앞선 조는 ‘이 악물고 했는데도 못한 거니까 어쩔 수 없지 않으냐’는 마음이고, 교대조는 ‘당신들이 못한 걸 왜 우리가 해야 하느냐’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멈출 수 없는 컨베이어벨트만이 문제는 아니다. 강만희씨는 용균씨가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 아래에 고개를 넣고 살펴봐야 했던 이유를 ‘설비의 부적합한 설계’ 때문이라고 말했다. “안전거리를 유지하면서 설비를 확인할 수가 없어요. 가까이 다가가서 고개를 들이밀어야만 문제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죠. 밤에는 조명이 약해서 어둡기도 하고요.”

30년간 발전소에서 일한 ‘베테랑’ 강씨는 올해에만 10차례 이상 회사 측에 안전한 설계로 개선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위에서 와서 보고 사진을 찍어가도 변한 건 없다. 본사(한국서부발전)에서도 한 달에 한 번씩 안전교육은 하는데, 교육한다고 해서 안전사고가 안 일어나는 게 아니다. 시설을 바꿔야지. 무관심 속에 묻혀버렸다. 사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번에는 용균이가 당한 거다. 설계가 바뀌지 않으면 다시 똑같은 일이 일어날 거다.”

몰랐어요, 현장이 그렇게 위험한지···


같은 한국발전기술 소속으로 제어실에서 현장을 총괄하는 최정우씨(28·가명)는 이번 사고가 나고 나서야 현장이 그렇게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친구들이 움직이는 벨트 아래 고개를 들이밀어야 하는 줄은 몰랐어요. 제가 친구한테 ‘멈추고 하지’ 그러니까 멈출 수가 없대요. 저는 점검 업무를 해본 적도 없고 배운 적도 없으니까 현장을 전혀 몰랐던 거죠. 사실 업무를 총괄하려면 전체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우고 제어실에 올라왔어야 하는데, 입사하자마자 바로 투입됐거든요.”

ⓒ시사IN 이명익12월12일 ‘고 김용균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처벌 시민대책위원회(가칭)’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용균씨는 1년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인력이 부족하면 유동적으로 채용한다. 1년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게 조건이다.” 동료 이원태씨는 말했다. 정규직이 된다고 해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규직은 아니다. 한 한국발전기술 노동자는 “우리는 말이 KEPS(한국발전기술)라는 회사의 정규직으로 있을 뿐이지 한국서부발전(원청)이 우리 회사랑 계약 안 하면 다 날아가는 비정규직이나 다름없다. 입찰을 3년씩 하고, 다른 회사가 최저 입찰하면 직원들은 그 회사로 바꾸거나 나간다. 정규직, 비정규직 간의 개념이 없다. 다 비정규직이지. 힘들고 어려운 건 다 외주화한다. 자기네들(한국서부발전)이 직접 하는 건 없다. 다치는 건 협력 직원이다”라고 말했다.

12월12일 밤늦게까지 빈소를 지키던 동료 박준훈씨는 다음 날 오전 근무를 위해 자리를 떴다. 현재 9·10호기는 발전이 중단된 상태이지만, 직원들은 평소대로 출근한다. 용균씨보다 직급이 높은 한국발전기술의 한 노동자는 “이런 사고를 당했는데 회사에서는 ‘힘들겠다, 상담을 받거나 며칠 쉬어라’는 말 한마디 없습니다. 우리는 내일 똑같이 출근해서 똑같은 라인을 또 돌아야 해요. 계속 반복입니다. 6개월 후면 관심도 잠잠해지겠죠. 바뀌는 게 없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넘어지면 사람이 본능적으로 땅을 짚으려고 두 팔을 펼치잖습니까. 현장에서는 석탄 조각을 밟거나 눈이 와서 미끄러져도 팔을 펼치면 안 돼요. 컨베이어벨트에 닿을 수가 있거든요.” 빈소에서 이런 말을 했던, 김용균씨의 동료 박준훈씨가 출근한 12월13일 아침, 태안에는 눈이 내렸다.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