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성적 발표를 기다리는 수험생 심정이라 말했다. 이달 초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밀실 예산안 심의에 들어가자 복지 시민단체 간부가 건넨 말이다. 예산안이 이처럼 비밀리에 논의되는 게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바라는 대로 예산만 책정된다면 만세를 부를 심정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줬다 빼앗는 기초연금’ 이야기다. 결국 반영되지 못했다. 정치인들의 지역 사업 챙기기를 이겨내지 못했다.
이 문제를 처음 알게 된 건 2014년 여름이다. 박근혜 정부가 기초연금을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인상하며 여러 논란을 벌이는 중에 기초생활수급 노인의 한탄을 알게 되었다. “우린 기초연금이 올라도 아무런 소용이 없어….”
당시 하위 70%에 속하는 약 400만명의 노인이 기초연금 10만원을 받고 있었다. 여기에는 약 40만명의 기초생활수급 노인들도 포함된다. 그런데 이들은 생계급여에서 기초연금만큼 금액이 공제당하고 있었다. 20만원으로 올라도, 생계급여에서 20만원이 삭감될 것이기에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탄식하신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문의하니 ‘보충성’ 원리 때문이란다. 국가가 최저생계기준을 정하고 소득이 여기에 미치지 못하면 부족분만큼을 ‘보충’해주는 제도가 생계급여다. 기초연금 인상으로 소득이 늘었으므로 그만큼 보충 금액(생계급여)을 줄이는 게 당연하다는 논리다. 이후 매달 기초연금 20만원이 통장에 입금되면 같은 금액이 생계급여에서 삭감되었고, 지난 9월부터 기초연금이 25만원으로 오른 후에는 역시 25만원이 공제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 노인의 처지에서는 억울하다. 기초연금 인상으로 자신보다 형편이 나은 노인들은 기초연금만큼 가처분소득이 늘어나는데 자신은 늘 제자리이다. 기초연금으로 인해 일반 노인과 기초생활수급 노인 사이에 가처분소득에서 역진적 격차가 초래된다.
보충성 대 형평성, 여기서 논점은 기초연금을 소득에 포함할 것인가 여부이다. 보충성 원리는 기초연금을 소득에 포함해 생계급여를 그만큼 삭감한다. 형평성 원리는 역진적 격차를 방지하기 위해 생계급여와 별도로 기초연금을 인정하자고 제안한다. 두 원리가 충돌할 때 우리는 어느 것을 존중해야 할까? 우리 사회 가장 가난한 노인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기고 계층 간 역진적 격차까지 초래하는 상황을 방치해도 되는 것일까? 더불어민주당은 야당 시절 박근혜 정부의 ‘줬다 빼앗는 기초연금’을 비판했다. 2016년 총선에서 이 문제를 완전 해결하겠다고 공약까지 내걸었다. 이제 집권했으니 문제가 풀릴 줄 알았다. 그런데 새로운 반대 논리가 등장했다. 정책의 우선순위다.
아동수당·양육수당 등은 생계급여와 별도로 지급
문재인 정부는 빈곤 노인 대책에서 비수급 빈곤층이 우선 지원 대상이라고 강조한다. 그나마 기초생활수급 노인들은 생계급여라도 받지만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려 생계급여도 못 받는 ‘비수급 빈곤 노인’에 정책을 집중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당황스럽다. ‘줬다 빼앗는 기초연금’의 형평성은 기초생활수급 노인과 일반 노인 사이 문제이다. 비수급 빈곤층이 복지 사각지대에 빠진 이유는 부양의무자라는 독소 조항 때문인데 왜 수급 빈곤 노인과 비교하는 걸까? 모두 어려운 처지에 있는 수급, 비수급 빈곤 노인을 두고 양자택일을 요구하다니.
최근 이 문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보건복지부는 예산 제약을 이야기한다. 복지부 장관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기초연금을 전액 혹은 절반이라도 보장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재정 당국의 벽을 넘지 못했다고 호소했다. 도움이 절박한 두 노인 집단을 두고 우선순위를 따지는 궁색한 변명이다. 가장 가난한 노인들도 기초연금을 누려야 한다. 지금도 아동수당, 양육수당, 장애인연금 등은 생계급여와 별도로 지급된다. 기초연금도 노인 예우, 형평성 등을 근거로 지급하면 된다. 내년 4월에 기초연금이 30만원으로 오르기 전에 해결하자.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을 바꾸면 되기에 행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된다. 문재인 정부가 진정 ‘다 함께 잘사는 포용국가’를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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