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데뷔러’ 혹은 ‘빛채경’
  • 랜디 서 (대중음악 평론가)
  • 호수 588
  • 승인 2018.12.28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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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양한모
그룹 에이프릴의 채경에게는 ‘프로 데뷔러’라는 별명이 있다. 남들은 보통 한 번 하는 데뷔를 여러 차례 했기 때문이다. 길지 않은 시간에 그는 해체, 텔레비전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과 탈락, 극적인 그룹 합류 등을 경험했다.

2012년이 첫 데뷔였다. 당시 나이는 열여섯 살. DSP 엔터테인먼트(이하 DSP)에서는 카라의 동생 그룹이라는 이름으로 채경이 포함된 퓨리티를 론칭했다. 일본까지 갔지만 별 소득 없이 해체했다. 연습생으로 돌아온 그는 2년 뒤 카라의 신멤버 선발 오디션 <베이비 카라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결과는 탈락. DSP에서 새로이 론칭한 걸그룹 에이프릴의 후보에도 올랐으나 멤버에 들지 못했다.

이름을 가장 크게 알리는 기회가 된 것은 Mnet의 <프로듀스 101>이었다. 아쉽게도 중간에 탈락했지만, 그는 본명 윤채경으로 출연해 훌륭한 보컬과 댄스, 그리고 몰래카메라에 속아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 등 다양한 캐릭터를 보여주며 인기 멤버가 되었다. 프로그램이 끝난 뒤 탈락자 몇몇이 모인 단발성 그룹 I.B.I로 절반의 데뷔를 했고, 모큐멘터리 <음악의 신 2>에 출연하며 싱글을 발매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6년, 에이프릴에 다시 도전해 새 멤버로 합류했다.

그는 데뷔를 준비하며 청소년기 전부를 보냈다. 기약 없는 연습 기간, 그리고 중간중간 구체화된 기회가 실패로 끝났을 때 겪은 심적 고통이 적지 않았다. 약력의 행간에는 비극도 들어 있다. <베이비 카라 프로젝트>에서 함께한 연습생 중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활동 종료 후 뿔뿔이 흩어진 I.B.I 멤버들은 솔로 데뷔한 김소희를 제외하고 저마다의 이유로 데뷔가 무산되거나 더 이상 소식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채경의 약력은 현재 절정을 지나 ‘양산형 체계’에 돌입한 한국 아이돌 산업의 집약과도 같다.

그리고 텔레비전은 그 데뷔 자체를 콘텐츠 삼아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돌린다. 우리는 방송을 통해 채경 같은 연습생을 알게 되며, 그를 응원함과 동시에 좁은 문을 향해 달리게 만드는 그 시스템에 일조한다. 본래 데뷔는 커리어의 시작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금 방송가를 중심으로 구축된 시스템은 데뷔를 둘러싼 스트레스와 그럼에도 무대 위에선 웃어야 하는 그들을 송출하고, 소비하게 만든다.

그나마 그룹에 안착한 채경은 운이 좋은 편이다. 에이프릴은 그의 합류 후 ‘봄의 나라 이야기’ ‘파랑새’ 같은 우수에 찬 노래를 발표하며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다. 가수 오지은이 그를 지지하며 썼던 ‘망한 왕국의 공주 같은 처연한 아름다움’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음악이다.

그는 농담처럼 에이프릴로 ‘드디어 정규직이 되었다’고 말하지만, 엄밀히 말해 에이프릴의 멤버 자리도 정규직은 아니다. 오늘도 팀의 최연장자로 열심히 살고 있는 그에게는 데뷔 이후의 시간도 만만찮은 고단함의 연속일 것이다. <프로듀스 101> 시절의 별명 ‘빚채경’을 ‘빛채경’으로 바꾸어 말하는 그. 어릴 적부터 가수 말고 다른 꿈은 꿔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그. 우직하게 자기를 다잡으며 도전에 도전을 거듭한 그가 미련한 게 아니다. 그를 ‘프로 데뷔러’가 되게 만든 시스템이 미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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