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의 영리병원 개설을 허용하면서 ‘의료 영리화’에 대한 해묵은 논란이 다시 시작됐다. 원희룡 지사가 지난 6월 도지사 선거 당시 ‘영리병원 허용’ 공약을 내걸었다면 당선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선거 이후 그의 태도 전환에 대해 ‘선거법 위반’이라는 시비가 제기된다. 더욱이 원 지사는 제주도민이 참여한 ‘숙의형 공론화위원회’의 결정(녹지병원 개설 불허 권고)까지 무시해버렸다.

이처럼 제주 지역 내의 반발도 적지 않다. 제주도민들이 녹지병원 개설에 비판적인 이유는, 국내 보건의료 산업 측면에서든 제주 지역경제 측면에서든 영리병원의 기여도가 높지 않으리라는 판단 때문이다.

보건의료 산업은 대충 의약품, 의료기기, 의료 소모품 생산 및 개발, 그리고 의료 서비스(의사의 진료 행위와 병원의 각종 서비스)로 나뉜다. 그 가운데 의약품 비중이 무려 80%를 차지하는 반면 의료 서비스의 비중은 매우 작다. 또한 의약품 등의 생산 및 개발은 ‘영리병원 허용’과 어떤 관계도 없다. 오히려 공공병원이나 비영리 연구중심 병원을 활성화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의료 서비스 산업 측면에서도 영리병원의 효과는 불분명하다. 미국을 제외하면 유럽의 의료 서비스·기술 선진국들은 대부분 비영리 공공의료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연합뉴스원희룡 제주도지사(가운데)가 12월5일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조건부 개설 허가 방침을 밝히고 있다.


제주도 지역경제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명박·박근혜 집권 당시에 나온 자료에 따르면, 제주도는 타이 등과 달리 영리병원을 개설한다 해도 이로 인해 관광객이 증가하지는 않는다. 영리병원이 없다고 관광객이 제주도를 덜 찾지도 않을 것이다. 영리병원 자체는 본인들의 노력에 따라 돈을 벌어가겠지만, 영리병원으로 인해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거나 관광산업이 발전한다는 보장은 없다.

‘사무장 병원’을 국가가 합법화해주는 격

반면 영리병원으로 초래될 문제는 명확하다. 가장 직접적인 문제는 제주도청의 발표와 달리, 실질적으로 내국인 진료를 막을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원희룡 지사는 조례 제정을 통해 영리병원 허가 조건으로 내국인 진료를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현행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과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엔 외국 의료기관의 내국인 진료 금지에 대한 조항이 없다. 설사 조례로 지정한다 할지라도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내국인 진료’ 관련 처벌이 어렵다. 이미 녹지병원 자체가 원희룡 지사의 ‘내국인 진료 금지 조건부 허가’에 반발하고 있다. 조례는 하위 법률로 상위 법률에 어긋나서는 안 된다. 녹지병원이 행정소송을 벌이면 해당 조례가 불법으로 몰릴 수 있다.

영리병원은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로 운영된다. 진료 가격이 인상되고, 병원 측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고용도 최소화하는 경향이 있다. 가장 위험한 부분은 의학적으로 필요하고 타당한 영역을 넘어서는 진료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에 따라 한국의 모든 의료기관에서 이뤄지는 ‘의학적으로 필요한 진료 행위’는 건강보험의 적용 대상이다. 의료기관이 진료의 내용이나 비용의 적정성 등에 대해 국가기관의 심사·평가를 받는 이유다. 최근 ‘생활 적폐’로 규정된 사무장 병원(비의료인이 의료인의 면허를 빌려 개설한 개인병원)이 불법 진료, 과잉 진료, 부당 청구 따위 말썽을 일으켜온 이유는, 이들이 노골적으로 수익의 극대화와 투자금 조기 회수를 노리기 때문이다. 사무장 병원을 국가가 합법화해준 것이 바로 영리병원이다.

또한 제주도에서 영리병원이 시작되면 동일한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설립된 인천, 부산·진해, 광양만권, 황해, 대구·경북, 새만금·군산, 충북, 동해안권 등 총 8개의 나머지 지역으로도 확산될 것이다. 이미 제주도에서 동일 법률로 허용된 사안을 다른 지역에 불허하는 것이 법치국가에서 과연 가능한가? 제주도를 제외한 이들 지역은 대도시 인근이어서 기존 국내 의료체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촌장 페이스북제주 숙의형 공론화위원회의 ‘녹지국제병원 공론화를 위한 도민참여형 조사 2차 숙의토론’ 모습.


또한 영리병원은 민간 보험사들에게 국민건강보험 체계를 무력화할 강력한 무기가 될 수도 있다. 한국에는 수많은 외국계 보험회사가 진출해 있다. 현행법상 한국 국적 보험사가 국내에 영리병원을 개설하는 길이 막혀 있지만, 이들이 외국 기업에 투자한 다음 그 회사가 영리병원을 설립하는 우회투자는 가능하다. 보험사가 병원을 운영하면 두 기관 간의 ‘견제 관계(진료에 대해 병원 측은 더 많은 보험급여를, 보험사는 적은 보험급여를 선호)’가 무너지면서 그 피해를 의료 소비자들이 짊어지게 된다. 자금이 필요한 제조업체가 은행을 소유하는 것과 비슷한 사태다. 예컨대 보험료를 많이 줘야 하는 진료를 기피하거나(과소 진료), 자사 보험 가입자에게만 특정 진료를 제공하는 상황(차별 진료) 등이다. 국가 GDP의 17%를 의료비로 지출하면서도 국민들의 건강 수준과 의료 만족도가 극히 낮은 미국이 대표적 사례다.

보건복지부, 녹지병원 엄격하게 ‘감시’해야

이 문제는 제주도를 넘어 전국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불필요한 논란을 유발할 것이다. 단순히 제주도의 문제로 방치할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와 국회가 나서서 적극 대응해야 한다. 먼저,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인 제주도 의회는 지방자치의 원리에 맞게 원희룡 지사의 독단적이고 합리적이지 않은 결정을 충분히 견제해야 한다. 도의회 차원의 조례로 ‘내국인을 진료하는 영리병원’ 설립 불허를 명기하거나, 아예 녹지병원을 매입해서 공공병원으로 운영하는 결의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

보건복지부도 법률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유보적인 자세를 바꾸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녹지병원 승인 조건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확인하고, 상당한 의혹이 발생하는 경우엔 승인 취소 권한 발동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그 외에도 감염 관리 이행, 위생 사항 준수 여부 등 환자의 안전을 위해 실제적으로 행정을 통해 견제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이미 화해치유재단에 일본 정부가 출연한 돈을 국민의 정서에 반하는 결정이었으므로 번복하고 국고를 활용해 돌려주기로 한 선례가 있다. 필요하다면 또한 제주도 영리병원 허용과 관련해서, 이전 정부 당시 시민들의 의사에 반해 이뤄진 결정이라면 제주도와 중앙정부가 투자자에게 적절하게 보상하더라도 시민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결국 국회가 나서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과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에 외국인 진료에 한정해서 허용한다는 조항을 넣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보건의료 및 건강보험 제도를 지키고,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확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내국인 진료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영리병원에 투자할 외국 자본은 없을 것이다.

기자명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운영위원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