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영리병원이 될 녹지국제병원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총 47개 병상에 진료 과목은 성형외과·피부과·내과·가정의학과 4개뿐이다. 채용 인력 134명 가운데 의사는 9명이다. 오랜 논란 끝에 12월5일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외국인으로 진료 대상을 제한해 녹지국제병원 개설을 허가했다. 제주도는 “국민건강보험법과 의료급여법도 (녹지병원에) 적용되지 않아 영리병원 설립이 국내 공공의료 체계에 미치는 영향은 없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보건의료 단체는 녹지국제병원을 일종의 ‘물꼬’로 보고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녹지국제병원을 시작으로 영리병원이 확대되고, 그동안 굳게 닫아놓았던 의료 영리화의 빗장까지 풀릴 거라는 예상이다. 제주도에 개설되는 중소 규모 병원 하나가 공공의료 시스템 약화로 이어질 수 있을까?

찬반 양쪽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기 위해 원 지사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원 지사는 일정상 이유로 인터뷰 요청을 고사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는 영리병원 반대 운동의 중심에 있는 단체다. 정형준 인의협 정책위원장(재활의학과 전문의)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았다.
 

ⓒ연합뉴스12월7일 의료 영리화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영리병원 허가 관련 정보공개 청구서를 제출하고 있다.

 


영리병원은 기존 병원과 무엇이 다른가?

현행법에 따르면 의료인·비영리법인·정부·지방자치단체만이 병원을 설립할 수 있다. 또 개인의원(병상 30개 미만)이 아니라면 병원에서 번 돈을 외부로 유출할 수 없다. 병원으로 돈이 들고 나는 앞문과 뒷문에 출입 요건을 정해둔 것이다. 반면 영리병원은 이런 요건을 모두 풀어주는 병원이다. 주식회사를 떠올리면 된다. 병원도 ‘이윤 극대화’를 목표로 하게 되는 것이다. 병원은 제조업이 아니기 때문에 돈을 버는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다. 과잉진료를 해서 수입을 늘리거나, 인건비를 줄여서 비용을 절감하거나. 환자들 처지에선 좋지 못한 결과다.

삼성의료원이나 현대아산병원은 뭔가?

삼성의료원은 삼성생명 공익재단이, 현대아산병원은 아산사회복지재단이 운영한다(비영리기관). 삼성그룹이나 현대중공업이 직접 소유한 게 아니다. 이 대형 병원들이 돈을 많이 벌지만 재단 밖으로 수익을 빼가지는 못한다. 서울아산병원이 2700병상으로 국내 최대 규모다. 재단 측의 투자 대상이 의료 분야로 제한돼 있기 때문에 땅을 사서 병원을 짓고 병상을 늘리는 데 한정해 돈을 쓸 수밖에 없다. 병원에서 함부로 돈을 빼가지도 못한다. 그러니 단기적 수익을 노리는 투기 자본이 병원에 들어오지 못한다.

그럼에도 한국 병원은 이미 영리를 추구하고 있지 않나?

맞다. 비영리병원으로 분류되지만 한국 병원들은 엄청나게 영리적이다. 의료 공급이 민간 주도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OECD 국가 중에서 한국처럼 공공병원(정부·지자체 설립)이 적은 나라도 없다. 공공의료 기관이 5% 수준밖에 안 된다(병상 기준 12%). 영국과 캐나다는 공공병원이 절대다수이고, 독일과 프랑스도 공공병원 비율이 50%가량 된다(30쪽 표 참조). 또 유럽은 공공병원 이외에 비영리병원을 주로 종교재단이 운영한다. 구호나 구휼이라는 개념이 강하다. 한국은 병원을 운영하는 주체의 구성이 완전히 다르다. 개인병원, 의료법인, 대학병원, 대기업이 만든 공익재단으로 나눌 수 있다. 개인병원이 몸집을 불려 의료법인으로 넘어간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가 인천의 길병원이다. 현재 가천길재단 회장인 이길여씨가 1960년대 인천에 개원한 산부인과가 시작이었다. 그 이후 성장해서 지금 길병원은 병상 수 기준 전국 5위 안에 드는 대형 종합병원이 되었다. 영리병원 연구의 권위자인 데이비드 히멜스타인 하버드 의대 교수가 2005년 한국에 온 적이 있다. 그때 히멜스타인 교수가 강연에서 “의료 공급 시스템만 보면 한국이 미국보다 더 영리적이다”라고 말했다. 미국도 공공병원이 20% 수준은 된다.

 

 

ⓒ시사IN 신선영정형준(원진녹색병원 재활의학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위원장.


미국에 비해 한국은 의료비 부담이 낮고 공공성도 높다고 평가받는데?

‘국민건강보험(건보) 당연지정제’ 덕분이다. 다른 나라에도 건보는 있지만 ‘당연지정제’는 한국에만 있다. 국내 병원이라면 건보 가입자의 진료를 거부할 수 없다. 건보는 의무 가입이니 전 국민이 대상이다. 건보로 인해 병원은 필수적인 진료 가격을 마음대로 정할 수 없다. 건강보험공단과 협상해 결정해야 한다(급여). 미국이나 한국이나 의료 공급이 시장에 맡겨져 있지만 한국에는 전 국민을 대변하는 보편적인 보험기관이 있어서 의료비를 적절하게 통제할 수 있다. 물론 건보 적용이 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 때문에 국민이 체감하는 의료비 부담이 크기는 하다.

녹지국제병원에 반대하는 보건의료 단체들은 이번 허가가 국민건강보험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건가?

그렇다. 녹지국제병원은 ‘건보 당연지정제’에서 예외가 허용되는 최초의 사례다. 이 병원이 잘된다면 다른 경제자유구역에도 영리병원이 생겨날 것이다. 예를 들어 인천 송도 경제자유구역에 큰 자본을 투자해 명의라고 소문난 의사들을 헤드헌팅하고, 대규모 병상을 보유한 영리병원을 만들 수 있다. 지금도 유명한 병원으로 환자들이 몰리지 않나. 그 병원은 건보 당연지정제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진료비 전액을 본인이 부담하거나 이 병원과 계약돼 있는 민간보험에 들어야 한다. 또 영리병원은 최고급 의료 서비스를 바탕으로 VIP 환자를 주 고객으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영리병원이 확대되고 최상류층이 이 병원을 이용하는 패턴이 공고해지면 이들을 중심으로 ‘건강보험료를 왜 내야 하나’라며 건보에서 이탈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 이어서 병원에 잘 가지 않는 건강한 사람들, 젊은이들까지 빠져나갈 수 있다. 저소득층이나 노인들만 남게 되면 국민건강보험은 유지할 수 없다.

 

 


녹지국제병원은 외국인 환자 전용이라는 조건으로 허가가 났다. 원희룡 지사도 내국인 진료를 금지하는 2중(조례 개정), 3중(법률 개정)의 장치가 있다고 말했다.

일단 현행법에 내국인 진료를 제한할 수 있는 조항이 없다. 그리고 2015년 보건복지부가 녹지국제병원을 승인할 때 내국인 진료를 금지하는 조건을 달지 않았다. 당장 녹지국제병원 측부터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나오지 않나(녹지병원은 12월9일 제주도에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며 극도의 유감을 표명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무엇보다도 내국인 환자를 받지 않으면 투자자들이 처음에 기대했을 수익성이 나오지 않는다. 외국인 환자만 진료하라는 건 영리병원을 하지 말라는 소리다.

그래도 지나치게 부정적인 예측 아닌가? 의료 공공성 악화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려면 거쳐야 할 단계가 많다. 일단 영리병원 수가 늘어나고, 실제로 부유층이 영리병원으로 쏠려야 한다. 이미 대형 병원에서 VIP용 특실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굳이 영리병원을 찾을 이유가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설사 부유층을 중심으로 국민건강보험 거부 움직임이 일어나더라도 정부가 건강보험 해지를 허용할지는 또 다른 문제다.

큰 그림을 봐야 한다. 영리병원 도입 논의는 2002년에 시작됐다. 16년이 걸렸지만 결국 영리병원 개설을 앞두고 있다.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이 한계에 봉착하면서 자본이 진출할 새로운 시장이 필요해졌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부터 서비스 산업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잡고 의료 산업화를 밀어붙였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그 기조는 더 강화됐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올해 6월 ‘혁신성장 규제 개혁 과제’라고 9개 사항을 건의했는데 그중에 첫 번째가 뭐였는지 아나. 은산 분리도, 5G 투자 지원 확대도 아니고 영리병원 설립이었다. 의료 시스템이 시장 원리에 따라 재편되면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수익 산업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의 전체 지출 규모만 해도 약 63조원이다. 고작 50병상 규모의 녹지국제병원 하나를 유치하자고 재계와 보수 언론에서 영리병원 도입을 주장해온 게 아니다.

긍정적인 효과는 없나? 찬성하는 이들은 영리병원이 생기면 의료 산업에 대한 투자가 확대돼 최첨단 의료 기술이 발전하고, 경쟁을 통해 의료 서비스 질도 향상될 거라고 주장한다.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미국에서도 첨단 의료 기술 수준이 높은 병원은 비영리병원이다. 유명한 MD앤더슨 암센터, 존스홉킨스 병원 모두 대학병원이다. 의료 시장에는 특수성이 있다. 첫 번째, 의료는 소비자가 아니라 공급자가 주도하는 시장이다. 의료 공급자가 유효수요를 창출한다는 건 너무 유명한 이야기다. 예를 들어 옛날에는 비만이 병이 아니었지만 요새는 병원에서 진료하니 질병으로 분류될 수 있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에겐 ADHD라는 명목으로 약을 처방할 수 있다. 두 번째, 의료 부문에서는 가격 상승과 품질이 비례하지 않는다. 비싸다고 무조건 더 빨리 치료되거나 낫는 게 아니다. 가격과 무관하게 적정한 서비스가 있다. 지금도 한국에는 과잉진료가 만연해 있다. 전문병원이 허리, 무릎, 목, 수술 안 해도 되는 사람들까지 수술을 권유해서 난리지 않나. 의료를 상품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한국 의료계가 키워야 하는 건 영리성이 아니라 공공성이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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