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 위 위 아래’ 편견 깨버리기
  •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 호수 587
  • 승인 2018.12.21 10:5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사IN 양한모
하니가 웃는다. 웃는 거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하니의 웃음은 조금 특별하다. 입을 최대한 벌리고 목젖이 다 보이도록 껄껄 웃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딘가 와르르 무너져버릴 것만 같다. 어디 웃는 모습만 그런가. 편안하게 다리를 벌려 앉는 버릇이나, 자유로운 그러나 최소한의 매너를 지킨 생리 현상 표출로, 예능이라면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어본 유재석마저 당황시켰던 그다. 생각해보면 하니가 타고난 대부분의 것들은 한국이 아이돌, 나아가 여성에게 원하는 그 어떤 기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자신만의 속도와 색깔로 정상 차지

그런 하니가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가 자신이 몸담고 있는 그룹 EXID의 ‘위아래’ 직캠이었다는 점은 흥미롭다. 이제는 한국 대중음악 신의 교양 필수가 된 팬들이 직접 캠코더로 찍은 동영상을 뜻하는 ‘직캠’, 발매된 지 한참 지난 후 다시 차트를 거슬러 오르며 1위에 근접해가는 현상을 뜻하는 ‘차트 역주행’이란 단어는 모두 어느 정도 하니에게 빚을 지고 있다. 2014년 가요계의 가장 큰 이슈 가운데 하나였던 하니의 직캠 영상은 ‘위아래’를 발매 119일 만에 음원 차트 1위에 올렸다.

이토록 거리낌 없이 유쾌한 이의 시작에, 해당 장르를 소비하며 가장 쉽게 무력감을 느끼게 만드는 요소가 놓여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종종 위축시킨다. 동시에 시작점이 어쨌든 자신만의 속도와 색깔로 지금의 자리를 만들어온 하니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분명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성적 어필은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쉽게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치트키’이지만 그만큼 소모되기 쉬운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하니는 운명처럼 다가온 기회와 동시에 부여된 편견 어린 시선을 하나씩 우직하게 깨나갔다. 재즈와 R&B가 어울리는 중저음의 허스키한 보컬을, ‘위아래’의 아류작들이 아닌 리드미컬하고 우아한 팝 댄스곡 ‘낮보다는 밤’으로 과시했고, “(영원히 아이돌로 남기보다는) 어린 나이에 몰라도 될 걸 알아버리는 연예인 지망생 친구들을 위한 엔터테인먼트 심리 전문가가 되고 싶다”라는 소신을 거듭 밝혔다. ‘위아래’로 기적처럼 1위를 차지할 때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은 뒤이어 발표된 ‘AH YEAH’ 때에야 흘릴 수 있었다.

하니의 이러한 흔들림 없는 성정은 결국 그룹 EXID의 팀 컬러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지난밤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지독한 숙취를 뮤직비디오에 현실감 넘치고 유머러스하게 담아낼 수 있는 걸그룹은 지금까지 드물었고 앞으로도 쉽게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노련한 보컬리스트 솔지, 재능 있는 송라이터이자 래퍼 LE 등 능력이 출중한 멤버들의 든든한 호위 속, 하니는 젊고 아름다운 모습을 집요하게 쫓는 카메라 앞에서 늘 당당하고 건강하게 자신을 드러낸다. 그의 내일이 언제나 궁금하다.
Magazine
최신호 보기 호수별 보기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