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은 작가는 아주 세련된 솜씨로 글과 그림의 하모니를 완성했습니다. 마치 뮤지컬에서 사랑하는 두 주인공이 노래하며 대사를 주고받듯, 글과 그림이 노래를 주고받는 것 같습니다. 이지은 작가의 글은 쉽고 간결하면서도 그림을 불러옵니다. 글을 읽으면 그림이 궁금해지고 그림을 보면 글이 궁금해집니다. 무엇보다 군더더기 없는 글은 그림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합니다.

흑백의 그림을 바탕으로 빨간색을 하이라이트 컬러로 이용한 것도 그림책 〈빨간 열매〉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기 곰이지만 아기 곰이 몰두하고 있는 대상은 바로 빨간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그림책 작가에게 이야기의 주인공과 그림책의 주인공을 구별하고 강조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능력입니다.

〈빨간 열매〉 이지은 지음, 사계절 펴냄

아기 곰이 혼자 일찍 일어났습니다. 숲속을 이리저리 걷다 보니 배가 고픕니다. 아기 곰은 너무 힘들어서 어느 나무에 기대앉습니다. 그런데 톡! 머리 위로 빨간 열매 하나가 떨어집니다. 아기 곰은 빨간 열매를 입안에 넣고 오물오물 씹어봅니다. 와! 참 맛있습니다. 아기 곰은 빨간 열매를 또 먹고 싶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가 기대앉았던 나무를 올려다봅니다. 나무는 얼마나 키가 큰지 하늘 끝까지 닿을 것 같습니다. 어리고 작은 아기 곰에게 나무는 너무 높습니다. 하지만 아기 곰은 이미 빨간 열매의 맛을 보았습니다. 맛있는 열매를 먹고 싶은 마음과 끝도 보이지 않는 나무 사이에서 아기 곰은 얼마나 망설였을까요?

다행히 아기 곰은 씩씩하고 용감합니다. 아기 곰은 거침없이 나무 위로 올라갑니다. 이 기세라면 나무에 달린 모든 열매를 먹어치울 것 같습니다. 과연 아기 곰은 빨간 열매를 원 없이 먹게 될까요?

“이 그림책, 정말 맛있어요”

저는 서른 살 가을에 그림책이라는 열매를 처음 맛보았습니다. 아기 곰 머리 위로 빨간 열매가 쿵 떨어졌듯이 그림책이라는 열매가 제 마음에 쿵 하고 떨어졌습니다. 아기 곰이 나무에 기대앉았다가 열매를 맛본 것처럼 저 역시 서점에 갔다가 그림책을 처음 맛보았습니다. 처음 맛본 그림책 열매는 존 버닝엄 작가의 〈지각대장 존〉이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

저는 아기 곰이 나무를 기어오르듯이 서점에 가서 그림책을 맛보고 사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금세 제 서가는 그림책으로 가득 찼습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맛있는 그림책을 실컷 보고 맘껏 사들이는 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그 부족한 느낌은 점점 더 커졌습니다. 저는 곧 그 느낌이 뭔지 알아차렸습니다.

그 느낌은 맛있는 그림책의 행복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저는 온 세상에 이렇게 외치고 싶었습니다. ‘이 그림책 정말 맛있어요! 여러분도 한번 드셔보세요!’ 그래서 저는 그림책 서평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그림책 서평을 쓰고, 그림책 번역을 하고, 그림책 편집을 하고, 그림책 이야기를 쓰고, 그림책 강의를 하고, 그림책을 만들며 살고 있습니다.

아기 곰은 우연히 빨간 열매를 맛보고 그 열매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 높이 솟은 나무를 아무런 두려움 없이 올라갑니다. 물론 아기 곰이 열매를 따러 올라가는 동안 많은 일이 벌어집니다. 새로운 친구들도 만나게 됩니다. 아기 곰은 그렇게 성장해갑니다. 아기 곰이 좋아하는 것을 발견한 것처럼 우리는 모두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누구나 아기 곰처럼 좋아하는 것을 찾아 모험을 떠나지는 않습니다.

저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모험을 떠나면 좋겠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나의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나의 행복을 찾아 모험을 즐기고 성장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발견한 행복을 세상 사람들과 나누며 살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스스로 행복해지는 방법이며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방법입니다.

기자명 이루리 (작가∙북극곰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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