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 틀림없이 도서관처럼 생겼을 것이다.’ 이 말을 남긴 보르헤스는 작가이기 이전에 시립도서관 사서였다. 그는 지하 서고에서 혼자 책을 읽으며 문학적 상상력을 키웠고, 위대한 소설을 남겼다. 나를 비롯해 보르헤스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이 말에는 동의할 것이다. 한 번쯤은 책에 대한 동경으로, 천국의 직업 같다는 로망을 담아, 도서관 사서라는 직업을 부러워해본 적이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환상은 A를 만나 깨졌다. 시립도서관 사서로 근무했던 A는 조곤조곤 자신의 지난 10년을 말해주었다. 전국의 공공도서관은 2013년 865곳에서 2017년 1042곳으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정규직 정원과 예산은 한정되어 있었고, 시는 필요한 사람들을 기간제, 단시간 고용, 자원봉사로 충원했다. 그녀는 11년 동안 같은 시의 여러 도서관에서 근무했지만, 매번 10개월짜리 계약서를 썼다. 월급을 제대로 받은 기간은 11년 중 고작 4년이었다. 나머지 기간은 하루 4시간 무급으로 자원봉사를 하고 차비와 밥값 1만원을 받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우원식

암암리에 정해진 룰이 있었다고 한다. 일하는 기간이 1년에 10개월, 3년에 23개월을 넘기면 안 되는 ‘근로총량제’가 있다고 했다. 그렇게 겨우 10개월을 일하고 나면 10개월 쉬어야 하는 강제 공백 기간이 있다고도 했다. 설마요, 믿기 어렵다고 했더니 그녀가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겉봉에 ‘도서관’이라고 쓰인 익명의 투서 봉투에는 인사 담당자들이 주고받은 메일이 들어 있었다. 채용 면접 결과 1, 2, 3순위라도 최근 10개월 내에 근무한 사람은 합격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하는 수 없이 공백 기간에는 무료 봉사라도 해야 했다. 그래야 재채용 때 가산점이 붙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녀는 10개월 근무와 공백 기간(무급 자원봉사), 재채용 응시를 반복하다가, 결국은 2017년 7월20일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 발표 당시 근무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전환 대상에서 제외되어 도서관을 떠났다. 그녀와 같은 처지의 사람이 수십명이었지만, 1년이 넘는 과정에서 뿔뿔이 흩어졌다. 끝까지 다툰 사람들은 왜 가이드라인이 발표될 시점에 근무하지 않았느냐, 왜 이렇게 띄엄띄엄 근무했느냐는 소리만 듣고 구제되지 못했다.

천국은 A에게 참으로 잔인한 곳이었다. 기간제 및 단시간 노동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2년 이상 근무한 노동자는 정직원으로 전환시켜야 하기 때문에, 시는 일하는 기간의 상한을 1년에 10개월로 정했을 것이다. 10개월의 근로계약도 반복되면 갱신기대권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시는 고용 단절을 위해 강제 공백 기간을 넣고 3년에 23개월이라는 상한을 넣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잔인한 점은 책에 대한 마음을 자원봉사라는 이름으로 이용한 것이었다. 보르헤스가 쓴 〈바벨의 도서관〉에는 나머지 모든 책의 암호임과 동시에 그것들에 대한 완전한 해석인 책을 찾기 위해 도서관의 모든 곳을 뒤지느라 인생의 시간을 소진한 사람이 나온다. A를 찾기 위해 B를 참조하고, B를 찾기 위해 C를 참조하는…. 그녀가 도서관에서 꿈꾸었던 시간은 그런 것이었을 터이지만, 그녀는 다른 방식으로 ‘돌려막기’ 되었고, 그녀의 인생은 다른 의미로 소진되었다.

서울대에서는 29년6개월째 일한 기간제 노동자도 있어

나는 몇 가지 말로 그녀의 시간을 위로해보려 애썼으나, 법적으로 A를 구제할 방법은 없었다. 그것은 애초에 2007년 제정된 기간제법이 사용사유제한 방식(필요한 사유가 있을 때만 기간제 사용 허용)이 아니라 기간제한 방식(2년까지는 기간제 사용 허용)을 택할 때부터 ‘예정된 편법’이었기 때문이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는 서울대학교에서 무려 29년6개월째 기간제로 일해온 장기근속 기간제 노동자의 해고 문제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기자명 우지연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변호사·민변 노동위원회)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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