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씩씩거려도 무소의 뿔처럼 간다
  •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 호수 587
  • 승인 2018.12.20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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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금리 인상을 계속해온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이 최근 ‘일단 멈춤’ 할 듯한 발언을 했다. 그러나 경제 전문가들은 파월 의장이 굴복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정말이지 그를 선택한 게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미국 경제사령탑이자 세계경제를 쥐락펴락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제롬 파월 의장을 겨냥해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 말이다. 파월 의장과 연준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이 위험수위를 넘나들면서 미국 월가에는 오랜 세월 정치적 외압을 견뎌온 연준의 독립성이 훼손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

연준은 1913년 창립된 이후 역대 행정부로부터 통화정책과 관련해 이런저런 정치적 외압을 받은 적이 적지 않다. 이런 외압에 연준 의장이 그대로 따른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1963년 취임한 린든 존슨 전 대통령은 윌리엄 맥체스니 연준 의장을 자신의 별장으로 몰래 불러 금리 인상에 불만을 표시했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1972년 대선 직전 아서 번스 당시 연준 의장에게 저금리를 유지하라고 비공개적으로 압력을 가했다. 번스 의장은 실제로 금리를 낮게 유지했으나 그 결과 인플레가 가속화되는 등 부작용을 낳았다. 1980년대 들어 레이건 행정부 때는 고위 경제 관리들이 당시 폴 볼커 의장의 고금리 정책에 불만을 드러냈다. 1990년대 초반 부시 행정부 때 니컬러스 브래디 재무장관은 앨런 그린스펀 의장의 고금리 정책에 대한 불만 표시로 정례 조찬 회동을 중단했다.
ⓒEPA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아래)은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을 꿋꿋하게 이겨내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연준에 대한 노골적인 압력의 강도는 트럼프 행정부가 가장 세다. 그 정점에는 사업가 출신 대통령인 트럼프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재닛 옐런 연준 의장 후임으로 변호사 겸 사업가 출신인 파월을 택한 주된 이유도 유화파인 파월 의장이 자신의 바람대로 금리 인상을 가급적 늦추리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실업률이 50년 만에 최저인 3.7%에 달할 정도로 호황을 구가하는 미국 경제가 자칫 과열될 것을 우려한 연준은 올해 들어 세 차례나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금리 인상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자 트럼프 대통령은 파월 의장에 대한 섭섭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최근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이 중국보다 훨씬 더 큰 문제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연준은 계속 실수만 한다”라고 비난했다. 여기서 그가 언급한 ‘실수’란 금리 인상을 말한다.

트럼프, ‘금리 인상=재선 걸림돌’로 여겨

2018년 12월 초 현재, 연준의 기준금리는 2~2.5%다. 미국 역사상 가장 낮은 수준이다. 미국 금융위기가 터지기 직전인 2006년 기준금리는 5%를 웃돌았다. 1980년대에는 연준이 인플레이션과 싸우기 위해 금리를 20%까지 올린 적도 있다. 2008년 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들자 연준은 기준금리를 0%로 유지하다 경기가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던 2015년 12월 0.25% 포인트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이 같은 금리 인상 행진은 최근까지 계속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의 금리 인상 행진에 불만을 품은 데는 정치적 이유가 크다. 지금의 경제 호황을 주무기로 2020년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그는 금리 인상을 최악의 적으로 본다. 그는 지난해 1월 취임한 이후 사상 최저의 실업률, 주식시장 호황, 높은 경제성장률 등을 모두 자신의 경제 치적으로 홍보해왔다. 하지만 경기 과열과 인플레이션을 우려한 연준이 금리를 인상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재선의 적신호로 간주하고 총력전에 나섰다. 그는 각종 인터뷰와 자기 트위터 계정을 통해 연준의 금리 인상이 경제성장을 가로막고 있으며, 추가 인상은 경제를 위협할 것이라면서 계속 불만을 표시해왔다.
ⓒEPA파월 연준 의장이 “현행 금리가 중립적인 추정치 턱밑까지 와 있다”라고 말한 11월28일 미국 주식시장이 폭등했다(위).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불만은 10월3일 파월 의장이 추가 금리 인상을 시사한 이후 폭발했다. 파월 의장은 당시 금리 문제와 관련해 “연준이 중립금리(neutral rate)까지 가려면 아직 멀었다”라고 말해, 지속적 금리 인상을 시사했다. 중립금리란, 물가가 안정된 가운데 경제가 실질 성장할 수 있는 금리를 말한다. 현재 연준은 중립금리를 2.5~3.5%로 보고 평균치인 3%를 기준치로 잡고 있다. 현재 연준 기준율이 2~2.25%임을 감안할 때 파월 의장의 발언은 내년에도 금리 인상 행진이 계속되리라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외압 이겨내고 주가 끌어올린 ‘신의 한 수’

그러던 파월 의장이 11월28일 다소 상반된 언급을 했다. 그는 뉴욕의 경제클럽 연설에서 “현행 금리가 중립적인 추정치 턱밑까지 와 있다”라고 말했다. 투자자들은 파월 의장의 발언에 대해 ‘연준이 목표로 하는 중립금리에 거의 도달했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며 즉각 반응했다. 그의 발언이 알려진 직후 다우 지수는 600포인트 이상 폭등했다. 시장 참여자들이 그의 발언을 너무 낙관적으로 해석한 게 아니냐는 경제 분석가들의 지적이 이어졌으나 투자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파월 의장의 발언 시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연준과 파월 의장을 맹공격한 이튿날이었다. 그래서 파월 의장의 발언이 트럼프 대통령을 의식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무성했다. 경제 분석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즉, 10월3일(‘한참 더 올려야 한다’)과 11월28일(‘거의 다 올렸다’) 발언 모두 경제적 현실에 근거한 것일 뿐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압력과 상관이 없다는 이야기다. 현행 연준 기준금리가 2~2.5%임을 감안할 때 연준이 중립금리 목표 선을 최대 3.5%로 본다면 파월 의장의 10월 발언은 일리가 있다. 목표치를 평균치인 3%로 보면 그의 11월 발언도 맞다. 결국 “중립금리가 턱밑까지 와 있다”라고 한 파월 의장의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의 외압에 굴복하지 않으면서도 주식시장까지 끌어올리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누렸다. 이를 두고 금융정보 회사 데이터트랙 리서치의 니컬러스 컬러스 사장은 그의 발언을 “신의 한 수”라고 말했다.

파월 의장은 지난 2월 연준 의장에 취임한 뒤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에 맞서 나름의 대응법을 터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11월29일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파월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에 맞서 네 가지 규칙을 나름의 신조로 삼고 있다. 즉,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언급하지 말고, 자극적 공격을 받아도 직접 대응을 삼가며, 백악관 바깥의 우군을 만들고, 정치가 아닌 경제만 언급하는 것이라고 한다. 단적인 예로 10월3일 그의 발언 직후 주가가 폭락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을 가리켜 “통제 불능이다. 파월 의장이 금리 인상을 즐기는 것 같다”라며 공격했다. 하지만 그는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파월 의장은 최근 CNBC와 인터뷰에서 “나를 포함한 연준 어느 누구도 정치적 간섭을 받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경제 분석가들은 파월 의장이 일단 트럼프 대통령과 정면충돌을 피했지만 향후 도전이 만만치 않다고 본다. 미국 경제가 지금처럼 호황을 지속해 연준이 중립금리 목표를 평균치인 3%가 아닌 최대치 3.5%로 간주할 경우 내년에도 최소 세 번 이상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 그 경우 파월 의장은 경제 논리를 무시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압력에 직면할 것이 확실하다. 더구나 2020년 11월 대선을 앞둔 내년은 트럼프 대통령이 경제 실적을 무기로 재선의 칼을 단단히 갈 태세여서 파월 의장은 가장 강한 정치적 압력을 감당해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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